먹는 건 좋은데 뜯는 건 싫어

by 김효주

여름이면 때때로 조바심이 난다.




20대 초반에 냉면 열풍이 한반도를 강타한 적이 있다. 그때 살던 고양시에 정말 맛있는 냉면집이 있었는데 그곳에 가서 냉면을 먹어 본 이후, 여름이면 매 끼를 냉면으로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찝지름하면서 깊은 맛이 나는 냉면 육수에 시큼하고 달달한 식초를 한 바퀴 반 쏟아주고, 겨자도 쪼로록 넣어주면 환상의 조합이 된다. 단짠에 알싸함까지! 게다가 면발도 쫄깃하면서 전체적으로 시원하기까지 하니 여름엔 늘 달고 살고 싶은 맛!


원래는 물냉면 위주로 먹었다. 그런데 또 다른 냉면집에 갔다가 명태를 고명으로 얹은 비빔냉면을 먹어보고 그 맛에 반해버렸다. 그래서 요새는 두 사람 이상 같이 냉면을 먹게 되면 물냉 하나 비냉 하나를 주문한다. 그 조합도 참 너무 좋다. 시원한 물, 달달하고 매콤한 비! 캬!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돈다.


하지만! 비싸서 매번 사서 먹을 순 없는 일이다. 삼시 세끼를 냉면으로 먹고 싶을 만큼 좋아해도 진짜로 사서 입에 넣어줄 순 없는 슬픈 현실. 그런 서민을 위해 비빔면이 있었다. 여름이면 라면 대신 쟁여놓고 애용하는 비빔면. 요새는 비빔면고추장까지 따로 나올 정도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둥지냉면이라는 녀석도 나왔는데 그 녀석은 좀 많이 밍밍해서 한 두 번 먹다가 내려놨다.


그 이후에 등장한 시판냉면! 처음엔 냉면 육수랑 면 정도만 넣은 상품이었는데 요새는 겨자, 김+깨, 참기름, 비빔냉면 장, 육수, 무절임까지 넣어주니 자주 애용하게 된다. 우리 부부가 주로 선택하는 것은 물냉과 비냉이 함께 들어있는 녀석이다. 냉면 전문점에 비할 맛은 아니지만 꽤 괜찮다. 면발도 쫀쫀하고 육수도 그만하면 깊고 진한 편이다. 비빔냉면에 넣어주는 장도 꽤 먹을 만하다. 그러나! 마의 구간이 남아있다. 시판냉면을 먹을 때 최대의 고비! 그건 바로 줄줄이 붙어있는 냉면을 한 줄기 한 줄기 떼어내는 일이다!


냉면을 너무나 좋아하기에 시중에 파는 제품까지 사서 먹을 정도지만 한 올 한 올 면을 분리하면서 너무나 조바심이 난다. 검색해 보면 물에 풀어서 휘리릭 푸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다 뜯어서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남편이 들어온 이후에 끓는 물에 바로 넣고 싶어서다. 남편이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니고 시킨 것도 아닌데 왜 나는 그걸 하나하나 뜯고 있는 건지, 왜 한 줄 한 줄 뜯으며 그렇게 조마조마한 걸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빨리 일을 해치우고 싶어서인 것 같다. 냉면을 분리해서 준비하는 일은 아주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은 아니다. 하지만 좀 걸리긴 한다. 근데 빨리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다음으로 작업하는 나의 자세 때문일 수도 있다. 거실에 와서 TV를 켜놓고 뜯고 있는데 테이블 위에 양푼을 얹어놓고 작업하면 어깨가 많이 올라가야 편하게 작업이 된다. 그래서 몸의 긴장을 빨리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아 양푼을 소파 위 내 다리 위에 얹어봤다. 그랬더니 조금 덜해졌다. 하지만 완벽하게 조급함이 사라지진 않았다.


마지막으로 누군가 옆에서 빨리 하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다. 아마도 엄마 그림자겠지. 뭐라도 시켜놓으면 기다리질 못하고 닦달하던 엄마. 같이 살지도 않는데, 우리 집에 두 번 밖에 온 적이 없는 엄마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를 하는 것 같다. 냉면 뜯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 그렇게 뜯으면 안 된다. 대충 해놓으면 뜨거운 물에 넣었을 때 안 풀어지니까 하나하나 제대로 해라.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다.


시판 냉면을 뜯어온 지 어언 15년이 넘은 것 같은데 올해 굳이 그 조마조마함을 마주하려 하는 건 왜일까? 남편은 시장하더라도 퇴근 후 식사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냉면도 같이 뜯고 물도 자기가 올려줄 사람인데 왜 나는 그걸 누리지 못하고 있는 거지?


남편 퇴근 전 식사 준비는 완벽하게 되어 있어야 하고,

냉면은 한 가닥 한 가닥 잘 뜯어져 있어야 하고,

집은 깨끗해야 하며,

남편이 신경쓰지 않게 살림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내 것이 아님이 분명하기에

다음번에 냉면을 준비할 땐

자유롭게 느릿하게 천천히 맘껏 뜯고 싶어서겠지.


나는 그냥 내 그대로가 좋다.

가끔 딴짓하다가 식사 준비를 놓치기도 하고

글 쓰다 속상해서 집정리 하기 싫어 미뤄놓기도 하고

아주 뛰어난 살림꾼은 아니어도

중간 이상은 될 것 같은

그냥 이대로 내가 더 사랑해 주고

받아들여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

못된 엄마 그림자를 떨쳐버리고 싶은 거겠지.


냉면 먹는 건 좋은데

뜯는 건 싫어


어디서 들어봄직한 우스운 제목이 완성되고 말았다.


다음번엔

냉면 먹는 것도 좋고 뜯는 것도 좋아!

이렇게 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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