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우울증이 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울증 오기 전 vs 우울증 끝난 후
자신을 돌보지 않고 달리기만 하면 가끔씩 맛보는 도파민에 중독된다. 업무적 성과, 즐거운 인간관계 같은 것은 매일 쉽게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 그것의 달콤함과 짜릿함은 너무 자극적이다. 나는 번아웃마저 도파민으로 해결해보려 했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맛난 음식을 자주 먹으면서 말이다. 할 수 있는지, 하고 싶은지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많은 업무를 도맡아 하려고 했다. 도파민을 독식하려 했던 것이다. 대체 왜 그랬을까?
돌아보니 그 시기엔 나에 대해서, 관계나 업무에 대해서 건강하지 못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은 나를 무조건 사랑해줘야 하고, 관리자들은 나를 인정하기 위해 존재해야 했다. 당시 나이 30대 중반. 이미 성인이었고, 직업도 매우 안정적이라 경제적으로도 충분히 독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어린 자아는 주변 모든 사람의 관심과 애정을 끌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열심히 일해도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원망했고, 실수했을 땐 지나치게 긴장하며 주변의 눈치를 보았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월급의 1/4을 외식비로 지출하였고, 미용실에 매우 자주 갔다. 2개월마다 취미생활을 끝내고 시작했다. 인라인 스케이트, 통기타, 우쿨렐레, 실내용 운동화 등 사놓고 쓰지 않는 물건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만족스럽지 않았고 계속 불행해지기만 했다.
요즈음 나는 평안하다. 철밥통 직장은 2번이나 그만뒀지만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남편의 월급은 내가 벌던 수입의 2/3 정도이다. 미용실에는 작년 5월에 간 후, 지난주에 첨으로 갔다. 음식은 대부분 집에서 해 먹고, 외식은 주 2회 정도이다. 경단녀가 되었다고 해서 조급하지 않고,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어도 답답하지 않았다. 우울증 기간 중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우울증이 내게 준 선물
1. 나를 많이 알게 되었다.
나는 감성적인 사람이자 매우 이성적인 인간이다. 여행할 땐 무조건 편안하고 안전해야 즐길 수 있는 예민한 타입이다.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한다. 겉보기에 비해 매우 내성적인 편이라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며, 사람을 많이 만날 수록 에너지가 뺏기는 편이다. 집순이에 덕후 기질이 있어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므로 아무 일이나 막 하면 금방 지친다. 열정적인 내 이상과 늘 스케줄 조정이 필요하다.
2. 나를 용납하게 되었다.
그동안 완벽주의에 빠져 내가 지닌 매력이나 강점을 보지 못하고 살았다. 그래서 나의 실수와 부족함을 혐오해왔다. 그러나 우울증 기간을 지나며 나는 무척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되게 고지식한 면이 있지만, 웃긴 이야기도 잘한다. 아이처럼 깔깔대기도 하지만, 무서운 잣대로 꾸짖을 줄도 안다. 그리고 가끔 그릇을 깨뜨리고 식칼에 손가락을 베이기도 한다. 가끔은 계단을 급히 오르다 꿍하고 정강이를 찧기도 한다. 그 모든 모습이 다 나였다. 완벽을 추구하고 싶었던 나는 그런 부족하고 연약한 나를 싫어하고 숨기고 싶어 했지만, 헛똑똑이 같은 나도 나였다. 모든 모습을 용납하자, 희한하게도 체대 입시생(후드티+트레이닝복 바지)처럼 입고 다니던 내가 화장법을 배우고 싶어 지고, 예쁜 옷을 사고 싶어 졌다.
3.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었다.
유별나게 잔소리가 심하신 엄마는 지금도 자신의 양육방식에 대해 사과하길 힘들어하신다. 엄마한테 감정적 공감을 무지막지하게 원했다. 전후 세대로 먹고사는 문제가 더 시급했던 세대를 여러 분 뵙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엄마는 공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걸, 어쩔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였다.
돌아가신 아빠에 대해 슬퍼해드리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서서히 받아들이고 놔드렸다. 이미 돌아가신 분을 붙들고 있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더 이상 나는 어린 아기가 아니다.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었음을 받아들인 후 부모님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길 수 있게 되었다.
4. 사랑받을 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온 우주가 나만을 위해 준비해준 선물세트 같은 사람이다. 나의 어렵고 험했던 인생을 모두 감싸 안을 만한 크고 넓은 사람이다. 그가 내게 와준 것만으로도 그간 있었던 모든 아픔과 슬픔이 사라질 만큼, 밝고 건강하고 아름답고 온유하며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그를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너무 감사해서. 세상에 이런 사람이 존재할까 싶을 정도의 감격이다. 그에게 사랑받는 것만으로 내게 있던 긴장감, 거절감들이 다 녹아내린다. 그가 내게 왔을 때, 우울증을 끝내고 예쁜 모습으로 나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이 너무 감사하다.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선이나 소개팅을 무척이나 기피했다. 선을 보려고 평소에 입지 않던 스타일의 옷을 입는 것도 싫고, 안 하던 화장을 하고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가는 모든 일이 너무 불편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도 무섭고 두려웠다. 그래서 누군가를 소개받는 그 자리에서 웃어본 일이 없는 것 같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주선한 측에서 항상 똑같은 말을 했으니까.
"여자분이 자기를 별로 맘에 안 들어하는 것 같다고 하던데...."
글쎄... 맘에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좀 많이 힘들었다. 안 신던 또각 구두 신고 있느라 발뒤축이 까지고 엄지발가락이 혹사당했다. 상대방은 알 수 없겠지만, 한 번도 애프터 신청을 못 받은 걸 보니 아마 웃지 않는 얼굴로 있었을 가능성이 100%다.
그러나 남편과 선을 보던 날, 나는 달랐다. 화장법을 배워 예뻐 보이게 꾸밀 줄 알고 있었다. 산뜻한 분위기를 내면서도 몸에 편한 옷을 고를 줄도 알았다. 더 이상 외적인 것으로 인해 괴롭지 않았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인데 두렵지 않았다. 무척 즐거웠다. 함께 있는 순간이 행복했고, 그가 베푸는 호의가 진심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에 바쁜 일이 있어 같이 있었던 시간은 단 1시간 20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둘은 서너 시간 동안 대화한 것처럼 마음이 잘 통했다는 느낌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편이 드디어 말해줬다!
"00 씨, 제가 오늘 많이 바빠서 이만 헤어져야 할 것 같은데, 다음에 저를 한 번 더 만나주시겠습니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애프터 신청을 받았다. 아.. 왜 눈물이 나지... 감사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하다. 아무래도 우울증이 내게 남편을 선물로 주려고 왔었나 보다. 남편 알아볼 눈을 키워주려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각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참 마음이 아프다. 우울증은 죽으라고 오는 병이 아니다. 삶은 우리에게 우울증이라는 핵폭탄을 던져, 더 이상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한다. 너 자신을 알아주고 새로운 방식으로 살면 더 행복할 거라고.
혹시 주변에 우울증이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 글을 읽으면서, 또는 우울증을 극복하신 분들을 찾아 서로의 애환을 나누면서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일을 계속해나가시길 간절히 권유드리고 싶다.
옆에서 눈물 흘리며 싸워준 엄마와 언니가 죽을까 봐 한 시도 떠나지 못하고 내 곁을 지켜준 동생이 없었다면 이 길을 끝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남편 덕분에 새로운 삶을 즐겁게 누리고 있음이 너무 감사하다.
제발 죽지 마시라. 당신에게도 태양이 솟아오르는 날이 올 것이다. 제발 내 말을 믿고 하루하루씩 버텨보시라. 내일도 해는 뜨고, 내일 당신은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kareni님의 이미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