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를 좋아하는 내가 좋아

by 김효주

당신은 스스로 얼마나 당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잘하며, 어떤 것에 열광하고, 무엇에 지루함을 느끼는지 말할 수 있는가?



동생은 내가 호불호가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상담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이런 질문을 받았다.

'00 씨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나요?'

참 어려운 질문이었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잘 모르겠어요. 먹는 건 좋아하고 스트레스받는 건 싫어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주변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볼래요?'
'제가 좋아하는 거랑 싫어하는 거요?'

'네. 그리고 다음 상담 시간에 이야기해주세요.'


동생에게 물었다.

'동생아, 나 뭘 좋아해?'

동생은 내가 좋아하는 걸 10개 넘게 줄줄 읊었다.

'아, 그래.. 그럼 내가 싫어하는 건 뭐야?'

동생은 더 신나서 싫어하는 걸 아주 많이 이야기해주더니 이렇게 말했다.

'언니는 호불호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내가 다 알지.'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주루루 흘러내렸다. 동생은 주책이라고 핀잔을 주고 하던 것을 하러 가버렸다. 충격이었다. 동생이 나에 대해 아는 것이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아주 더 많다니. 나를 잘 알아주는 동생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 미안해졌다.

다음 상담시간, 숙제한 내용을 다 말씀드리고 나서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도 했다. 상담 선생님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물으셨다.

'호불호가 그렇게 강한 사람인데 제가 스스로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할 정도로 이상했어요.'



순대를 좋아하는 내가 좋아


우리 가족은 좀 유별나다. 많이 예민하고 까칠하다. 나도 좀 그렇다. 그런데 아빠, 엄마, 나, 동생 넷 중에는 제일 덜 예민한 편이다. 어릴 때 친구네 집에 가면 순대와 떡볶이를 가끔 얻어먹었다. 그 메뉴를 좋아해서 친구 아빠가 자주 사 오신다고 했다. 내 부모님은 길거리 음식을 즐기지 않으셨고, 특별히 순대를 기피하셨다. 그래서 순대는 그 친구 집에 가야만 먹을 수 있었다.


순대는 따뜻할 때 무척 맛있었다. 야들야들한 당면이 탱탱한 껍질과 함께 쫄깃쫄깃 씹히는 맛은 과히 예술이었다. 식감 중 특히 입 안에서 눅눅하면서도 매끈거리는 느낌을 좋아하기에, 순대를 소금에 살짝 찍어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어 물렁해질 때까지 냠냠거리는 게 너무 즐거웠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위해 순대 1 접시도, 순대 국밥 1 뚝배기도 사주시지 않았다. 고깃국 냄새만 맡아도 질겁하시는 아빠한텐 감히 말도 못 꺼냈고, 동생은 순대의 ㅅ만 들어도 몸서리치며 도망갔다. 칫! 결국 순대는 지방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 후 자취하면서 처음으로 사 먹을 수 있었다. 룸메이트였던 친구와 나는 순대가 좋아 밤 12시에도 순대를 먹으러 가곤 했다. 순대국밥집으로 외식하러 가기도 하고. 암흑 같던 대학 생활 중에도 순대 먹는 날 만큼은 진짜 즐거웠다.


가족 4명 중 나 혼자만 순대를 좋아한다는 것, 그건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나도 순대를 먹지 않기로 했었다. 가족들이 다 싫어하는 것을 혼자 좋아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시절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가족과 비슷한 사람인 척 살기로 했었나 보다. 하지만 지금은 순대를 좋아하는 내가 좋다. 엄마, 아빠, 동생이랑 내가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들과 내가 경험한 것이 동일할 수 없고 식성 또한 그렇다. 그걸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우울증이 끝났다는 두 번째 증거는 '나를 많이 알게 된다'라는 것이다.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언제 즐거워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며, 누구를 사랑하고 왜 웃는지 어떻게 사는지를 알게 되면 그제야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달달한 것을 계속 들이키지 않아도 그냥 나 자신이 너무 좋아지고 나와 함께 있는 시간들이 참 평온해진다. 완벽하지 않아도, 잘하는 것 별로 없어도, 예쁘지 않아도 그냥 내가 좋아지고 이해돼서 그걸로 족하다.


나를 알게 된다는 말에는 '나를 수용한다'라는 뜻도 포함된다. 단순히 발견하고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나를 경험하고 겪으면서 있었던 모든 일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자신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에게 타인 이해란 있을 수 없다. 고통과 방황의 시간이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이 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고백인 것이다.


우울증은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람에게 발생한다. 그러나 절대 나를 상처 입히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세상과 자신을 더 누리며 살게 해 주려고 우리 삶이 보내는 최후통첩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 더 살면서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살펴보길 바란다. 그러면 내일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신은 작년보다 올해 더 많이 사랑하게 된 자신의 모습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Pixabay로부터 입수된 Woong Joh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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