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만 해
돼야만 해
뭐든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태어난 그대로 살지 못하고
하고 싶지만
되고 싶지만
남들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하고
나 아닌 다른 사람 되어야 하고
자아가 온전히 정립되지 못한 채 받게 되는 기대와 압박은 '나 아닌 나'로 살게 만든다. 부모나 교사들은 진정 아이들을 잘 되게 하려고 혼낸다고 믿고 있을 때가 많다. 그러나 약자 입장에서 이것을 사랑으로 느끼기 쉽지 않다. 오히려 비위를 맞추려고 자신을 숨기거나 억압하기도 하고, 반대로 반항을 하면서도 사랑받기 원한다.
자신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오직 남의 시선과 기분을 신경 쓰느라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모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들에 공감하지 못하며, 경험한 것 외에는 믿으려 하지 않는다.
우울증이 끝났다는 첫 번째 증거는 '소중한 것이 소중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돈? 명예? 권력? 아직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우울증이 다 낫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다르게 물어보자. 정말 당신을 행복하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린 시절엔 권력이나 명예, 높은 지위가 소중했다. 그래서 아주 부지런히 공부했다. 스스로를 관리하고 잠도 조절하면서. 하지만 IMF는 많은 이들의 인생의 방향을 틀어버렸다. 내 것도 그랬다. 인생이 끝난 것 같았다. 실패한 것 같아 암흑 속을 거닐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자, 그것은 인정 욕구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고 있는 일을 잘한다면, 내가 좀 더 나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 열심히 일한 결과는 더 많은 업무였다. 학교 생활에 재미가 떨어질 때쯤, 교회에서 여러 봉사를 시작했다. 학교 관리자들보다 많은 칭찬과 격려를 해주었으나, 원하는 만큼의 인정은 받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가정생활을 등한시했다. 가족 모임보다 동호회 활동에 많이 참여했다. 귀가 시간이 늦어져 가족들을 걱정시켰다. 어린 시절을 저당 잡혀 공부시켰으나,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 아버지와 멀어졌다. 규칙이 너무 많은 엄마도 싫었다. 집에만 있으면 지켜야 할 세세한 법칙 때문에 진절머리 났다.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느라 동생과 보내는 시간도 적었다. 그렇게 가족들과 멀어져 갔다.
'나는 우울증이니까 괜찮아.'라고 합리화하며 밤늦게까지 만화와 영화, 드라마를 폭식하듯 봐재꼈다. 한참을 보고 나면 눈이 건조하고 따가웠다. 환절기엔 비염과 알러지성 결막염이 심해져도 계속 봤다. 눈 다래끼가 날 정도로 보고 나야 속이 시원한 것 같았다. 스트레스는 패스트푸드나 달달한 간식거리를 먹어야 풀렸다. 낮에 자고, 운동을 하지 않고 먹고 누워있으니 살이 찌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나는 아프니까 이렇게 해도 괜찮아.'라는 마음에 계속 멋대로 굴었다.
아주 많이 심각해졌을 땐, 정말 세상에 아무것도 소중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살아있어 고통받는 나란 존재가 없어진다면 참 편안해질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괴로운 시절을 버텨준 가족들이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사랑스럽다. 관계란 서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주고받는 법. 혼자만이 피해자가 되진 않는다. 긴 방황을 겪는 딸로 인해 부모님이 겪는 고난, 아픈 언니를 돌보는 동생의 외로움을 이제는 읽어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안부를 묻는 일, 시시때때로 선물을 챙기고, 맛난 것들을 보내준다. 모두 함께 아팠기에 지금 더욱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는 예전 일들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내게 선물로 주신 남편을 너무나도 사랑하며, 그로부터 받는 사랑이 너무 좋아 절대 죽고 싶지 않다. 감사하게도 남편도 나처럼 여러 영상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함께 즐겁게 즐길 수 있고, 적당히 보고 쉴 수도 있어서 참 좋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식단을 계획하고, 1개월에 1개씩 건강을 위한 목표를 정하기도 한다.
우울증이 다 끝나고 나면 신기하게도 믿어지지 않던 것들이 희한하게 다 맞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 제일이지. 암암.'
'일 자체보다는 관계가 중요해.'
'무엇보다 건강이 제일이지.'
'살아있는 게 제일 하기 힘든 일이야.'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어쩌면 소중한 것을 잃어버려서 우울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았기 때문에 어두움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되었을지도.
당신에게 소중했던 것은 무엇이고,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Pixabay로부터 입수된 Jill Wellington님의 이미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