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1월쯤 되면...

by 김효주

<본 소설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학교, 사건 등은 모두 사실이 아님을 밝힙니다. >


나오미는 오랜 만에 연구실에 들어갔어요. 며칠 전부터 술렁이던 분위기가 궁금해서요. 선생님들은 모이기만 하면 어두워진 얼굴을 하고 수근거리셨어요. 차를 마시는 척하면서 귀동냥을 해보니, 내년 학년이랑 업무 때문에 그런 것 같더라고요. 나오미는 궁금했어요. 왜 벌써부터 내년을 걱정하는 걸까 하면서요.

"H 선생님, 그런데요~ 아직 11월 밖에 안 되었는데 내년 업무 분장이랑 학년을 알 수 있어요?"

"아, 나오미 선생님은 첨이라 잘 모르는구나. 보통 이때쯤부터 이야기가 나오고 그래."

그러자 옆에 있던 부장님이 말씀하셨어요.

"보통 이런 걸 비공식 인사라고 하지."

그러시더니 아줌마 선생님들이 하하호호 웃으셨어요.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런 식으로 미리 조정을 하는 거더라구요. 지금은 학생들의 수가 줄어서 학교들이 업무를 나눌 때 학년보다 업무 중심으로 선생님들을 모아서 조정하는 곳도 많이 늘었지만, 당시만 해도 학년을 우선으로 선택한 후에 업무를 배정하는 경우가 많았대요. 그래서 선생님들끼리 내년에 어떤 학년 갈지 의사를 알아보는 거래요. H 선생님은 내년에 다른 학년에 학년 부장으로 가고 싶은가봐요. 그래서 평소에는 잘 챙기지 않던 나오미에게 물었어요.

"나오미 선생님, 내년에 몇 학년 하고 싶어?"

"글쎄요. 아직 생각을 안해봤어요."

"나 내년에 3학년 갈 건데 같이 갈래?"

"3학년이라... 제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4학년 아이들도 버거워서요..."

"그렇구나. 생각해봐. 아직 시간 많으니까."


사실 나오미가 망설인 이유는 따로 있어요. 아이들 문제도 있지만 나오미는 H 선생님과 같은 학년에 가도 괜찮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맞아요, 모멘텀 파괴자 1에 등장한 2번 H 선생님이 바로 이 분이예요! 웃는 얼굴로 늘 이야기 하시지만 뒤에 뭔가 있는 이상한 느낌적인 느낌? 뒷골이 쎄~한 느낌!


하루는 나오미가 학급 환경을 꾸미기 위해 친구를 불렀어요. 미술학원 강사인 친구가 쉬는 날이어서 도와주러 왔어요.

"어서 와. 여기가 내 첫번째 교실이야."

"오~ 나오미가 선생님이 되다니, 하하. 축하한다."

"그러게. 오느라 고생 많았지?"

"뭘. 학교 앞까지 버스가 데려다 주던데. 얼른 말해봐. 어떻게 하고 싶어?"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벌이 주제야. 꽃밭에 벌이 날아다니는 거야. 그래서 생일판을 벌집으로 만들고 싶고, 그 아래쪽에는 영화 필름을 깔고 그 위에 아이들의 작품을 얹어놓고 싶어."

"하이고.. 지금 네가 말하는 건 3D잖아. 이해는 되는데 뒷판은 2D잖아. 연습장 같은 거 있어?"

친구는 나오미의 말도 안 되는 학급 환경 계획을 듣더니 현실감 있게 수정해주었어요. 둘은 재미나게 자르고 붙이고 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요. 그런데 H 선생님이 교실 앞을 지나가시다가 잠깐 들어오셨어요.

"어머나, 나오미 선생님. 손님이 계셨네. 누구?"

"제 친구예요. 미술 학원 강사인데 제가 특별히 초청했어요."

"친구분이구나.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을까?"

"제가 머리 속에 있는 걸 어떻게 만들어야될지 모르겠어서 도움을 좀 구하려고요."

"아, 그랬구나. 그럼 즐겁게 해요."

"네."


그렇게 H 선생님은 연구실로 들어가셨어요. 아참, 그 이야기를 안 했군요. 나오미네 학급은 4층에 있었는데 4학년 교사 연구실이 바로 앞에 있어서 많은 선생님들이 그렇게 자꾸 들여다 보고 가셔요. 좀 귀찮더라고요. 암튼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어요. 며칠 후에 미술하는 친구가 만들어 놓고 간 벌 몇 마리를 들고 연구실에 앉아서 조립하고 있는데 H 선생님이 들어오셨어요.

"나오미 선생님, 그게 뭐야?"

"아, 저희 반 뒷판에 붙일 벌이예요."

"엄청 잘 만들었네. 그 때 온 친구가 만들어 준 거?"

"아, 맞아요."

"그렇게 이쁜 건 선생님 반에만 붙이지 말고 4학년 모든 학급 수만큼 만들어서 나눠야지."

"네?"

"호호호호호호"


원래 사회 생활이란 게 이런 걸까요? 왜 H 선생님은 저렇게 이해가 안 되는 말만 자꾸 하실까요? 지난 번에는 꽃을 떼라 마라 하시더니 말이예요. 나오미는 벌을 5마리씩 5개반 만큼 만들어서 다른 학급에 달아드려야하는 걸까요? 다른 층을 돌아봐도 그렇게 똑같은 동물이나 꽃이 같이 붙어있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요?


이런 식으로 H 선생님이 나오미를 당황시킨 건 한 두번이 아니랍니다. 한번은 나오미가 학교에서 쓸 수첩이 필요해서 아주 큰 스프링으로 감겨있는 꽃모양 표지로 된 노트를 사게 되었어요. 회의가 있어서 그걸 들고 연구실에 갔답니다. H 선생님은 그걸 보더니 말했어요.

"어머, 나오미 선생님. 이게 뭐야? 엄청 예쁘네."

"아, 학교에서 쓰려고 샀어요."

"그랬구나. 어디서 샀어요?"

"지하철 역 앞에 있는 문구 센터에서요."

"이런 게 있으면 내 꺼도 사와야지. 호호호호"

"네?"

"호호호호"

"진짜로 사 드려요?"

"호호호호"

그 때 나오미는 정말 며칠을 고민했답니다. 평소에 나쁘게 하시지는 않는 H 선생님 댁에서 문구 센터가 머니까 하나 사드리자고 맘 먹었어요. 분명 좋아하시겠지 하면서 방과후에 H 선생님 학급으로 갔어요.

"선생님, 여기요. 지난 번에 말씀하신 수첩이예요."

"어머나, 이걸 진짜 사왔어?"

"네?"

"농담이지 설마 내가 사달라고 했겠어?"

"네? 그럼 다시 가져갈까요?"

"뭘~ 그냥 둬."

"아..."

"호호호호 잘 쓸게."


나오미가 왜 H 선생님을 따라 흔쾌히 3학년으로 따라가겠다고 말을 못했는지 아시겠죠? 암튼 11월이 되어 선생님들이 내년 준비를 벌써 시작하시니 나오미도 덩달아 마음이 심란해지기 시작했어요. 초임 교사라고 학급 운영이나 잘 해보라고 업무를 주시지 않아 내년에 하게 될 업무도 부담이 되었고요. 아직 학교에 아는 선생님도 별로 없는데 아예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 곳으로 가도 될지 무척 걱정이 되었어요. 아직 2학기는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지금 맡은 학급의 아이들에게 집중도 잘 되지 않았어요. 나오미는 자신의 상태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학교 전체에 흐르는 비공식 인사가 매번 선생님들이 모일 때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바뀌는 걸 들을 때마다 마음이 술렁이는 것을 멈추기 쉽지 않았대요.


과연 나오미는 내년에 몇 학년에 배정될까요? 그리고 H 선생님과 같은 학년에 가게 될까요, 아님 아예 모르는 사람들과 새롭게 시작할까요? 어떤 업무가 나오미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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