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 기간이 되었다. 서로 바빴던 우리 부부는 드디어 휴가 계획을 시작했다.
"가고 싶은 곳 있어?"
"응. 나 별 보고 싶어!"
"한국에는 별이 많이 보이는 곳이 얼마 없을 건데..."
"하지만 은하수가 보이는 곳이 아직 있대요!"
"그래? 그럼 별 보러 갈까?"
국내 별보기 좋은 곳으로 소개된 곳들 중 당일치기로 다녀올 만한 곳을 물색했다. 밤에 활동할 예정이므로 낮잠을 미리 잔 후 저녁 먹기 전에 출발하기로 했다. 별이 많은 땅에 누워서 별을 한참 바라보려고 돗자리와 침낭을 필수로 챙겼다. 혹시나 별 사진을 찍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삼각대도 준비했다. 밤에는 추울지도 모르니 긴팔 후드 집업도 넣고, 시원하게 음료를 보관할 수 있게 보냉 가방+아이스팩도 꼼꼼히 챙겼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별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 주 내내 흐릴 거라는 예보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 오늘(8/11 수요일)만 그나마 덜 흐릴 것이라는 정보를 믿고 일단 도전하기로 했다. 그래서 목적지를 2곳으로 잡았다. 국내 별보기 맛집 중에서 경남 산청과 합천에 걸쳐 있는 황매산성과 경남 거창 감악산을 고른 것이다. 일단 황매산으로 갔다가 흐리면 조금 더 맑을 것이라는 감악산으로 가기로 했다.
중간중간 하늘을 계속 확인했다. 대구 근처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는 중에 비가 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좀 더 남쪽으로 이동해보니 구름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황매산을 올라가기 전에는 속눈썹처럼 가는 달과 반짝이는 별도 보였다. 산 위가 흐리지 않으면 별이 보일 것 같은 기분에 들떴다.
오토캠핑장 근처에 주차한 후 살펴보니 산성까지 차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어 따라 올라갔다. 산 위에서 내려오는 구름이 시야를 가릴 정도로 황매산의 일기는 매우 흐렸다. 스산한 기운이 드는 억새밭 옆에 차를 대고 하늘을 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올라오는 길에 보았던 달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바로 내려왔다.
합천을 지나 경남 거창 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내리막이 연속되는 구간에 바닥에 빨간색으로 페인트가 많이 칠해진 구간이 연속되었다. 왜 그렇게 칠해져 있을까?
"오빠, 여기 빨... 어어어!!!"
"응? 어어!!!"
물어보려던 찰나, 도로 중간에서 차를 보고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멈춰선 고라니가 보였다! 어버버 하는 소리를 듣고 남편이 그제야 고라니를 발견했다! 속도를 재빨리 줄여 고라니가 피하도록 했지만 너무나 놀라버렸다. 위장이 1자로 서는 것 같고 소화가 갑자기 멈춘 것 같고 심장은 벌렁거리면서 속이 울렁대기 시작했다. 꼬불꼬불한 산길도 힘들었지만 고라니로 인해 놀란 것 같다고 남편이 위로해주었다. (다행히 고라니는 제 길을 갈 수 있었다.. 휴..)
어두운 밤을 헤치며 중간에 입구도 몇 번 놓치고 겨우겨우 거창 감악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 정상에 차를 대고 돗자리를 펴고 그 위에 침낭을 폈다. 삼각대를 꺼내놓고, 캠핑 의자도 설치했다. 눈에 보이는 별들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그 별들 뒤로 은하수가 있을 듯 말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그만 있으면 짠! 하고 나타날 것 같았다.
더운 여름 서늘한 산 위에 자리를 펴고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누워있는 일은 정말 낭만적인 경험이었다. 아내에게 별 사진을 선물하고 싶어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남편의 실루엣이 사춘기 소년 같아 더욱 설렜다.
별이 보이지 않을 것이 100% 확실했던 황매산에 손을 꼭 잡고 오르던 커플들도 이런 맛에 산을 오르고 있었겠지? 어두운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우주에서 단둘이 남겨진 그 기분을 느끼러 밤에 길을 나선 거겠지?
그러나 침낭 속에서 1시간 정도 대기를 했음에도 별은 조금씩 밝아지고 땅으로 가까워지는 느낌만 줄 뿐 은하수가 나타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은하수는 아주 맑은 날 저녁때부터 보이고, 9시 반에서 10시 사이에 가장 잘 보인대."
밤을 새우면 은하수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들뜬 나를 남편이 다독거렸다. 감악산은 황매산보다는 덜 했지만 역시 초큼 흐렸고 밝은 몇십 개의 별들이 하늘을 채우는 걸 보는 것에서 만족하고 짐을 쌌다.
하지만! 날씨 좋은 밤, 다시 한번 은하수 보기에 도전해보자고 말해주는 남편 덕분에 별 보러 갈 일이 또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