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멘텀 파괴자들 1

by 김효주

<본 소설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학교, 사건 등은 모두 사실이 아님을 밝힙니다. >


여러분은 혹시 모멘텀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모멘텀은 원래 물리학 용어로 탄력, 가속도, 운동량 등을 뜻하는 단어인데요, 요즘에는 주식시장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주가의 오름세나 내림세에 얼마나 가속이 붙을 것인지 나타내는 지표로요. 갑자기 학교 이야기하다 무슨 생뚱맞은 이야기냐고요? 인생에도 모멘텀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젊은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열정의 모멘텀 말이에요. 오늘은 나오미의 모멘텀을 철저히 파괴한 몇 명의 선배들을 만나보시겠습니다.



1. 일 잘하셔서 매일 칼퇴하시는 부장님


신입교사 나오미는 늘 뭔가 생각이 많아서 통 칼퇴를 해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퇴근 시간이 다 되서 시계를 보며 동동거리고 있는데 부장님이 지나가시면서 열린 교실 앞문으로 슬쩍 보십니다. 그러고 이렇게 말씀하시죠.

"어머나, 나오미 선생~ 아직도 일해? 원래 일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오래 하는 거야. 나처럼 얼른 하고 퇴근해야지."

나오미는 되게 황당했어요. 잘 못하면 좀 알려주던가 맨날 칼퇴한다고 자랑하시는 엄마 나이 되시는 부장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요? 그 후로도 부장님은 자신이 퇴근할 때마다 교실에 앉아서 일을 하는 나오미에게 늘 같은 말을 하셨죠. 일 못하는 사람이 오래 한다고.



2. 아군이야, 적군이야? H 선생님


혹시 그 선생님 기억나세요? '나오미 선생님, 지금 우리가 우리 애들 이야기하잖아.' 하셨던 분요. 이번엔 그분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해요. 이제 그분을 H 선생님으로 부르겠습니다.

나오미는 방송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요~ 젊고 열정 넘치는 나오미는 아주 신나게 열심히 일을 했어요. 그러면서 연구실에서 업무 이야기를 즐겁게 늘어놓았죠. 그런데 H 선생님이 이러시는 거예요.

"나오미 선생님,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맡은 업무 1년 동안 하는 거잖아. 에너지 분배 잘해서 해. 너무 달리면 지쳐서 끝까지 못해."

나오미는 일단 그 말에 기분이 상했어요. 기쁘게 떠들고 있는 나오미는 '그래, 잘하고 있구나. 열심히 해봐.'라는 말이 듣고 싶었거든요. 그러면서 이상하게 그 말이 계속 맴도는 거예요. 1년 동안 해야 하니 에너지 분배를 해두면 좋긴 한 것 같은데 뭔가 뒤가 구린 그런 느낌 아세요? 저를 위해선 해주신 이야기인듯 하지만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빠지는...


어느 날, 나오미가 학급 환경 꾸미기를 하고 있었는데 H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어머나, 나오미 선생님, 이게 꽃이야? 되게 이쁘네~!"

"감사합니다. 하하"

"감사하긴, 떼라고 하는 이야긴데 "

"네?"

"4학년에서 선생님 반만 이렇게 해놓으면 학부모들 민원 들어온다고."

"네? 그.. 그럼 떼요?"

"아니. 농담. 호호호. 떼긴 뭘 떼. 그냥 선생님이 4학년 전체 학급 거 다 만들어 주면 되지."

"네...?"

"호호호호호호"

나오미는 그날 결정했어요. 기분 나빠하기로. 농담인지 진담인지 나오미를 위해서 하는 말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H 선생님의 언행은 분명히 이상하니까요.


3. 세상은 나를 위해 존재해! M 선생님


M 선생님은 명예욕이 심하고 혼자 일하고 혼자 상을 휩쓸어 가는 걸 즐기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학교에 행사가 있을 때 승진을 위한 개인적 업무나 교육청 지원을 위해 늘 잘 빠지셨어요. 그러다 보니 같은 학년이나 같은 부서의 선생님들에게 무척이나 피해를 많이 주었지요. 한 번은 나오미가 선배와 함께 영어 연수를 가려고 신청했어요. 평택에 있는 외국어연수원에서 하는 120시간 연수인데요, 방학을 이용하여 합숙하는 연수라 무척 기대가 되었어요. 게다가 이 연수를 가기 위해 선배와 나오미는 하위 연수들을 모두 듣느라 아주 힘들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오미, 나오미. 잠깐 시간 있어?"

"네? 왜 그러세요. 선배님?"

"아, 진짜. 정말 화가 난다, 진짜."

"선배님, 무슨 일인데요? 말씀해 보세요."

"글쎄 M 선생님이 우리가 가려고 하는 연수, 자기한테 양보하래."

"네? 그분은 2년 전에 다녀오셨잖아요."

"응, 그런데 꼭 가고 싶다면서 나한테 포기하라고 왔잖아."

"어머어머, 3년 동안 그 연수는 다시 갈 수 없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 그런데 같은 학교에 신청자가 없으면 갈 수 있다나 봐."

"아, 진짜 너무 하네요. 영어 연수란 연수는 자기가 젤 먼저 신청해버려서 어렵게 돌아온 기회인데 그것도 뺏으려고 한 거네요."

"그러니까 말이야. 포기하지 마, 연락 오더라도. 알았지?"

"네, 우리 같이 가기로 해서 신청한 건데 같이 가야죠."

"그래, 그럼 일단 그렇게 알고 있어."

학교에 동일한 연수 신청자가 있을 경우 미경험자가 우선이므로 선배와 나오미는 무사히 연수를 다녀왔지만, 그 이후로도 M 선생님은 이기적인 언행으로 많은 사람을 힘들게 했다고 합니다.


꼰대라는 말이 그때도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뒤에서 꼰대라고 욕하는 시대가 아니라서 나오미는 무척 아쉽대요. 지금과 같은 시대였다면 라테 운운하시는 그분들께 겨울에 아아를 선물해드렸을 텐데 말입니다!


젊은 선생님들만이 지닌 열정, 새로움, 기운 같은 것들이 있어요. 그런데 결혼하면서 힘 빠지고, 나이 들어서 체력 달리는 선생님들은 그걸 어린 후배들의 치기로 보는 경향이 있나 봐요. 혼자 좌충우돌하면서 배워가도록 옆에서 응원만 해줘도 될 텐데 왜 그건 못하시면서, 간섭은 왜 그리도 쉽게 하시는지... 지금도 학교 현장에 그런 분들이 남아계실까요? 오늘도 나오미는 젊은 교사들이 교실에 혼자 남아 자신을 탓하며 훌쩍이고 있을까 생각에 잠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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