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글쓰기 6기] 8일 차: 지금 나를 지배하는 감정
몇 년 된 아빠의 회색 트레이닝 복이 아직도 새 것인 양 나를 유혹한다. 작은 보풀들이 여기저기 일어나 있지만 상관없다. 얼른 자라서 입고 나가고 싶다. 얼마 전부터 키가 많이 큰 나를 위해 엄마와 아빠는 옷을 내어주기 시작하셨다. 장롱 속 부모님의 옷을 슬쩍 꺼내 동생이랑 패션쇼도 해보았다.
부모님의 옷을 입어보는 건 어른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 같은 황홀함을 주었다. 뭔가 대단해진 느낌, 뭐라도 할 수 있을 거 같은 흥분감. 품이 남는 데서 오는 여유로움에 동생과 나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아빠로부터 허락이 떨어졌다. 회색 트레이닝 상의인 후드티를 입고도 좋다고. 새 옷은 아니지만 처음 입는 옷이라 무척 신이 났다. 얼른 학교에 갔다. 친구들에게 아빠 옷이라고 자랑을 하며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하루가 끝날 무렵이었다. 교실 뒤편 사물함 앞에 서 있었는데 평소에 나랑 친하지 않은 남자아이 하나가 갑자기 곁으로 걸어오더니
"야, 나오미! 너 왜 이렇게 덩치가 커?"
라고 말했다. 심지어 고개를 쳐들고서!
잔칫날 덕담을 주고받아야 할 자리에 똥물을 들고 와 내 앞에 퍼붓는 것 같았다. 매우 언짢았다. 길 가다 모르는 사람한테 따귀를 얻어맞은 듯 마음이 상해 친하지도 않던 그놈에게 정 떨어지는 걸 느꼈다.
그 충격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멍하니 멈춰 서 있었고, 그 녀석은 자리를 떠났다. 그때 내 나이 13살, 국민학교 6학년. 한참 외모에 관심이 많아져 새로운 옷을 입고 학교에 갔던 소녀는 심각한 콤플렉스 탑을 쌓으며 스스로를 '덩치 큰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실 더 어릴 때부터 어깨가 또래에 비해 조금 넓어 태권도, 수영 등을 했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던 터라 부정적인 자기 인식이 더 강화된 면도 있을 것이다.
그 이후 아름다운 소녀, 예쁜 여성의 길을 포기하고 어두컴컴한 잠바와 펄렁한 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덩치가 커서 여성스럽지 못할 것이라는 못된 고집을 부리며 스스로를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별하기 힘든 상태로 위장했다.
물론 내 성 정체성은 흔들린 적이 없다. 아름다운 여성으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속마음을 숨긴 채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참 비참했다. 게다가 나의 보디 라인은 성장할수록 더욱 여자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었기에 아무리 큰 옷을 사서 입어도 감출 수 없어 실망스러웠다.
한 사람으로서, 또한 여성으로서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 외면을 꾸미는 일에 대해 거부감을 느껴졌다. 간혹 꽁꽁 숨겨둔 내 미모에 대해 누군가 아름답다, 예쁘다는 형용사를 사용할 때면 더욱 거북스러웠다.
그렇게 30대 후반이 되도록 스스로에 대한 거절감으로 가득 차 외모 콤플렉스로 치장한 채로 살았다. 그러나 우울증이라는 고마운 친구가 다가와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준 덕분에 나를 근본부터 새롭게 볼 수 있었다.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는 것이 별 문제도 아니란 걸 받아들인 후, 메이크업도 배우러 가고, 내 몸에 잘 맞고 나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옷을 찾는 걸 부끄럽지 않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외모 콤플렉스가 완전히 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작년 가을 이후 확찐자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 전보다 5kg 정도 체중이 늘었는데 그게 너무 싫다. 사실 먹는 걸 좋아해 항상 표준체중의 한계까지 찍고 있었으므로 늘 불만족스러웠다. 남편은 결혼 전보다 통통해진 지금 내 모습이 더 좋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맘에 들지 않는다.
이 글을 쓰기까지 여러 번 [글쓰기] 버튼을 새로 누르고 새로 쓰고, 편집하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내 안에 숨은 콤플렉스를 드러내기 싫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게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건 더 괴로웠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다시 쓰기를 하고 있는 이유는 스스로 나의 감정을 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장벽을 돌파하고 싶었기 때문이고, 삶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상당 부분 외모에 대한 불만에서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이다.
여러 차례 새로 쓰기를 하면서 내 안에 자리 잡은 콤플렉스의 시작이 '다른 사람의 평가'에서 유래했음을 알게 되어 놀랐다. 그들이 말하기 전에 내 외모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사이다를 한 방 날려줄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한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평가를 내가 선택했다는 것도 깨달았다. 왜냐면 나를 예쁘다고 한 사람도 꽤 많았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버려졌기 때문이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주는 남편의 평가가 마음을 좀 더 가볍게 해 주긴 했으나, 결국 내가 나 자신을 만족해하지 않으면 외모 콤플렉스라는 불치병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핑 돌던 눈물도 멈추고 마음도 무척 가볍다. 살을 빼고 안 빼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느냐, 어디까지 용납하느냐'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어 후련하다.
사진출처 : Pixabay (by mcmurryjul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