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A Minor

슬픔과 좌절의 속의 나를 읽어내리다

by 김효주

아주 짧게 기타를 배웠다. 큰 목적은 없었다. 기타 치는 사람이 많은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한번 쯤은 배워보고 싶었고, 한 곡 쯤은 직접 노래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연주하고 싶었다. 그래서 교회 청년부 우리 셀에 기타리스트가 새롭게 들어왔을 때, 아주 신기하고 기뻤다.


그는 나보다 7살 어린 기타리스트이면서 작곡가였다. 성가대 오케스트라를 위한 성가곡을 편집하고 직접 바이올린 파트를 맡아 섬기고 있었다. 자그마한 기타 교습소를 운영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기타를 취미로 매우 좋아했으나 기타와는 관련이 없는 학과로 진학을 했다. 전공관련 직종으로 취업을 하였으나, 잘 맞지 않아 그만 두었다고 했다. 자기 세계가 확실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그의 삶이 매우 좋아보였다. 게다가 독학으로 작곡도 공부하여 유투브에 채널을 열어 자작곡을 연주하는 영상을 업로드하기도 하고, 멜론에 자신의 앨범을 내기도 한 것이 참 신기했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그러면서 그 일로 직업을 삼기란 정말 어렵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이 무척 부러웠다.


그래서 결정했다. 기타를 배우기로. 그의 교습소에 가서.


교습소에는 다양한 악기들이 있었다. 관심이 있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서슴없이 하던 그 기타리스트는 바이올린과 첼로를 레슨받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딱 맞게 특별제작한 클래식 기타도 있었다. 그리고 작곡을 위한 신디도 있었다. 그곳은 재미있는 것들이 잔뜩 있는 신기한 공간이었다.


그는 평소에도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인 것 같았다. 하루는 여러 가지 코드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었는데 내 마음이 녹아서 흘러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음악이 이렇게 나를 읽어내리지?'라는 기분은 평생 처음 느꼈다. 단순히 기타로 Am코드를 짚고 윙 소리가 나게 했을 뿐인데 놀랍도록 신기한 체험을 한 것이다. 그래서 천천히 들려주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한 음씩 뜯어가면서 들려주었다. Am 변형 코드였는데, 시간이 오래 지나서 정확히 무슨 코드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이 코드가 나를 읽어내고 있다.'고 했더니, A Minor로 된 바이올린 곡을 하나 들려주었다.


음악이 연주되는 내내 나는 감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제껏 여러 가지 음악을 들어보았지만, 딱 지금의 마음의 상태를 너무나 잘 노래하던 그 바이올린 소리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번아웃으로 극심히 요동하는 감정의 기복을 느껴 매우 힘들었다. 지쳐버려 열정을 낼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라거나,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해대는 주변 사람들로 인한 괴로움, 가라앉지 않을 것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 들이 있었다. 선율이 흘러나옴에 따라 내 마음의 딱딱히 굳은 것들이 부서져 내리고 차가운 것들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음악 속에도 나의 방황과 곤란함, 복잡함이 담겨있었기에.


그것이 너무 신기하여서 다른 코드도 연주해달라고 부탁했다. 특히 Dm나 Gm같은 것도 들려달라고 했다. 음악 자체가 좋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A minor의 특별함인지가 알고 싶었다. 그러나 숨겨둔 나를, 아무도 모르게 꽁꽁 묶어둔 내 마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내리듯 읽어내는 코드는 Am밖에 없었다. 뭔가 다른 코드들을 말해주지 않는 무언가를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때가 '음악과 처음 만난'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피아노든 기타든, 바이올린이든 플룻이든 어떤 악기든 멋지게 연주하는 것만이 부럽고 훌륭해 보이기만 했지, 연주된 곡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동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며칠 전에 이 스토리가 생각나서 다른 코드들도 다시 들어보았다. 각 코드들은 minor일 때 기본적으로 약간 우울감을 가지고 있지만 조금씩 다른 느낌이었ㄷ. Dm에서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Em에서는 뭔가 떨치고 일어나고픈 느낌이 들었다. Gm코드는 뭔가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의 긴박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고, Bm는 서서히 끝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정말...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어떤 장르를, 왜 좋아하는지 모른채 아무거나 들리는대로 듣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글을 쓰거나 일을 할 때에는 조용한 기타연주나 피아노곡을 듣고, 요리를 하거나 청소를 할 때에는 신나는 빠르고 조금 큰 소리가 나는 노래를 들었다고만 단순히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다시 바이올린 곡들 중에서 A Mimor로 유명한 곡들을 들어보았다. Pananini의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24개의 카프리치오 24번 가단조 작품번호 1라던가 Vivaldi의 바이올린 협주곡 6번 가단조 작품번호 3'조화의 영감'-1악장과 같은 곡들이 있었다. 다시 들어보니 요사이 느끼지 못했던 2013년의 아픔이 음악을 통해 살아났다. 갑자기 혼란스러워지고 생각이 뒤죽박죽이 되기도 했다. 쓰고 있는 글에 집중할 수 없는 터질 것 같은 마음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내 다시 괜찮아졌다. 왜냐하면 A minor 바이올린 연주곡들이 끝나자 글을 쓰려고 듣고 있던 기타 연주곡이 조용히 흘러나왔으므로. 그리고 그게 지금의 나와 잘 맞기에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곡조는 무엇일까? 요새의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평안하고 즐겁지만 때론 괴롭고, 가끔 아프다. 기쁘고 신나지만 간혹 답답하고. 대부분의 시간 자유롭지만 때때로 얽매인 것 같은 기분. 평범하게 큰 일이 없는 상태라서 그런 거 같다. 그래도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감정을 떠올려보면 평온함인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아도 되니까, 의지할 구석도 있고 사랑받을 곳도 있는 상태라서. 이 글을 발행하고 나서는 지금의 나를 읽어내릴 코드를 한 번 찾아봐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치유 글쓰기 찾고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