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음미하는 것

by 김효주

특강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뱅글뱅글 메아리친다.

지난 일이니 잊을까 애써 눌러버리려는데

가슴에서 들려오는 소리.

'지금부터가 진짜로 강의를 음미하는 시간이야!'




온전히 버리지 못한 완벽주의는 강의 날 아침까지도 강의 준비를 다 끝내지 못했다는 불안감을 자아냈다.

낮엔 선글라스 없이 절대 운전을 하지 못할 만큼 예민한 눈도, 1시간 이상은 운전하기 싫어 휴게소를 찾는 마음도 강의장으로 달려가는 2시간 내내 무시당했다. 강의용 슬라이드를 한 장씩 상기해가며 목차 안내부터 시작해서 전체 내용에 대해 2번이나 큰 소리로 연습했지만 진정이 되지 않았다. 달려가는 것과 강의 준비하는 것에 쏠린 마음 때문인지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이 휙휙 소리 내며 좌우로 사라져 갔다.


대구를 출발해 밀양을 지나 창원까지 열심히 달렸다. 드디어 목적지에 다 왔는데, 이게 웬일! 미리 안내받은 공영 주차장은 어느 곳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당연히 지상에 있겠거니 하고 지도를 찾아보지 않고 왔는데... 아뿔싸 오늘은 토요일! 000 컨벤션이라는 웨딩업체 근처에 강의장이 자리 잡은 고로 수많은 인파와 자동차 파도에 휩쓸려 일단 들어갈 수 있는 빌딩에 일단 주차를 했다. 정확히 안내받은 곳에 주차하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강의 시간에 맞추기 힘들 것 같아서였다.


정신없이 강의장소로 향했다. 창원 교보문고가 있는 건물 2층에 자리한, 경남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운영하는 '청년 마음 단디'라는 곳이다. 그곳에서 [마음 건강 서포터스 세미콜론 7기]를 위한 역량강화 프로그램이 열리는데 강사로 초빙받아서이다. 팀라이트 멤버로서 글쓰기 강의를 제안받기도 처음이고, 교직을 그만둔 후 대면 강의를 하는 것도 너무 오랜만이라 엄청 설렜다. 새벽에 잠이 안 와서 뻘겋게 충혈된 눈이 몸과 마음의 긴장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가장 신경 쓰인 부분은 준비한 분량을 다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준비를 하다 보니 '글쓰기 기술'자체를 연습할 시간이 아무래도 모자랄 것 같아서였다. 2시간으로 처음 만나는 학생들과 마음으로 부딪쳐 만나고 깊이 있는 글을 써내는 것도 힘든데, 서포터스 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까지 다 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준비는 최대한 철저히 했고 시간이 부족한 것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 같았다.


강의실에 도착했다. 한방에 달려오느라 목이 말랐고 땀이 나고 있었다. 헉헉 거리는 나를 위해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선생님께서 물을 가져다주셨다. 너무나 감사했다. 잠시 후, 강의가 시작되었고 드디어 마이크를 통해 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2019년 11월, 초등교사를 그만두었다. 팀라이트 덕분에 인사이트 나이트에 2번 강사로 초청된 적이 있고, 각종 온라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해본 적이 있지만 그동안 대면으로 강의한 경험이 없어 목소리가 떨리면서 말이 빨라지고 있었다. 예전엔 이럴 때 '어떡하지?' 하며 걱정하다가 더 빠른 속도로 말하게 된 경험이 많았다. 하지만 요새는 그런 상태와 마음을 스스로 꺼내어 수강생들에게 보여준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가라앉고 듣는 사람들도 나를 기다려준다는 걸 알게 되어서다.


서서히 마이크를 잡는 손,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내 목소리에 적응될 때쯤, 대학생 서포터스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강의는 전체적으로 마음열기, 글 쓰는 것, 서포터스 활동을 위한 글쓰기 기술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진행하였는데 가장 중점을 둔 곳은 첫 번째 마음열기 부분이었다. '공감|용기'라는 주제로 서포터스 지원동기, 힘든 점, 마음건강을 위한 서포터스 활동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두 번째인 '글 쓰는 것'에 대해서는 '잘 쓴 글의 특징,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고 연습도 해보았다. 마지막 부분은 서포터스 글쓰기는 기사문, 카드 뉴스에 집중하여 알아보고 실습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다르다고 했던가?

강의 들어가기 전 마음과 끝나고 돌아가는 마음도 그와 같았다.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길은 느긋했다. 빨리 달릴 필요도, 정해진 약속 시간도 없으니 급히 달려오느라 지나쳐버린 산들의 구불텅한 각선미도 음미할 수 있었고, 삼각형 모양의 가로수가 10분이나 늘어서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집으로 가는 나를 오래오래 배웅하는 느낌이 들어 고마웠다. 끝나고 나니 즐거웠던 대화, 조금 아쉬운 점들,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첨엔 잊어버릴까 했는데, 산과 나무들 사이로 달리며 흥얼거리는 나는 하나하나 복기하는 걸 원하고 있었다.


주차대란이 일어난 웨딩홀 주변 토요일 11시 풍경,

횡단보도가 없어 살의를 느끼며 횡단하던 사람들,

강의실에서 만난 학생들과 선생님들,

강의 내내 드르륵 거리며 우리를 방해했던 공사 소음,

오랜만에 말하는 게 너무 좋아 목이 자꾸 말라왔던 것,

라포가 이미 형성된 학생들과의 수업과 처음 만나는 대학생들과의 케미는 다른 면이 있구나,

나는 정말 사람들과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강의를 돌아보기 시작하자 내용에만 집중했던 관심이 강의 장소와 시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로 확장되었다. 그러자 차 안에 있는 내가 어제의 나와 달라졌음을알 수 있었다. 생각과 감정이 팽창하고 잠재력이 폭발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가진 것들, 내게 주어진 것들은 사실 굉장히 대단한 것들인데 너무 눌려 있었다는 생각도 일어났다. 존재의 확장을 느끼자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을 인식하고 누리는 느낌. 아무것도 나를 방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충만함.



황홀한 지적 경험 덕분에 돌아오는 2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눈은 여전히 충혈되어 있고 몸엔 피로감이 더해졌지만 마음 만은 생기가 돌았다.


지나간 시간을 온전히 복기함을 통해 얻는

자유, 휴식, 여유가 내 안에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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