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중기 증상

by 김효주
우울증은 소설의 플롯을 따른다.


마치 소설처럼 우울증도 스토리 라인을 가진다.

인물 및 배경이 소개된 후, 사건이 시작되는 시기가 우울증 초기라 할 수 있는데, 인생에서는 이 부분을 인식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스스로 우울증을 의심하는 시점이 이야기 전개상 '위기' 직전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 중기에 돌입한 것이다. '위기'의 단계에서 발생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중증의 우울성 에피소드가 어떻게 발현되는지 살펴보자.


엄마는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아! 나는 여기가 너무 싫어!


2014년 6월, 집에 있던 자전거 2대(1번과 2번)를 끌고 친구와 함께 근처 중학교로 향했다. 그곳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서 카페로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갈 때 친구가 자전거(1번)를 탔는데, 집에 돌아가려고 보니 자전거가 2대(1번과 2번)라 어떡하지 싶었다. 자전거를 빌려 탄 친구가 집까지 같이 가려고 했으나 부담스러워 그냥 두라고 했다. 한 대(2번)에 탄 채 다른 한 대(1번)를 끌고 가려고 생각했던 거다. 운동 신경이 없는 내가 감히 욕심을 부렸다가 몇 m 못 가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자전거 바퀴에 걸려 발가락이 부러진 것이다. 하필 그날따라 조리(flip-flops)를 신고 있던 게 화근이었다. 그 일로 병가를 내야 했고, 약 2주간 목발 신세를 져야 했다.


2014년 8월 초, 발가락이 다치기 6개월 전부터 준비해 온 단기선교를 가게 되었다. 깁스를 풀고 출발할 수 있으므로 가는 것으로 진행했다. 그런데... 꿰매 둔 발가락이 식탁 다리에 부딪쳐 2차 수술을 하게 되었다. 깁스 푸는 것, 걷는 것 모두 부담스러워 선교팀에서 빠지고자 했다. 그러나 팀원들의 완고(?)한 권유로 인해 단기선교를 가야만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떠난 선교에서 나는 별로 할 수 있는 것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어 외롭고 괴로웠다. 밤엔 절뚝거리는 다리가 원망스러워 울고, 낮에는 선글라스를 낀 채 눈물을 흘렸다. 돌아와서 절친(?)이라고 생각했던 자매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 선교를 간 네가 잘못한 거라고 나를 나무랐다.


그해 8월 중순. 1년 전부터 준비해 온 가족여행 날짜가 다가왔다. 단기 선교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여행을 갈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엄마와 동생과 함께 하는 첫 여행을 포기할 수 없어 끝까지 고민하다 같이 가기로 했다. 하지만 공항에서부터 여행은 삐걱대기 시작했다. 향수를 하나 새로 사고 싶어 면세점에서 이런저런 제품들을 보고 있었다. 샤넬에서 새로 나온 제품이 너무 맘에 들었다. 그걸 사고 싶다고 하자 엄마는 비싼 걸 사서 뭘 하냐며 핀잔을 주셨다. 갑자기 화가 벌컥 나면서 엄마와 함께 있는 게 너무 싫어졌다. 지금 내가 어떤 발로 어떤 맘을 먹고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 건데, 어차피 내 돈으로 내가 사는데 왜 말리고 핀잔을 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그대로 가게를 나와버렸다. 아직 근육이 다 돌아오지 않은 종아리가 아파 화장실에 앉아 울다가 다시 면세점에 가서 그 향수를 쳐다보았다. 집으로 돌아가버릴까 했으나 그래도 가족여행이니까 가보자고 마음먹고 비행기를 찾아 이동했다. 동생과 엄마는 나를 찾아다니다가 비행시간이 다 되어 비행기를 타는 곳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찾았지만 걱정스러운 표정을 했다.


다음 날, 푸껫에서 날이 밝기 시작했다. 걱정이 시작됐다. 특별히 여행 2일 차에는 시장 구경,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그걸 생각하니 다리가 갑자기 막 아픈 것 같고, 너무 나가기 싫어졌다. 그대로 계속 뒤척이다 억지로 일어나 아침을 먹으러 갔다. 날씨가 무척 좋았고, 호텔도 너무나 예뻤다. 그러나 내 마음은 오히려 짜증으로 가득 차기만 했다. 엄마와 동생은 호텔과 날씨에 감사하며 즐거워했지만, 그 모습을 보기가 너무 화가 났다. 아름답게 장식된 뷔페식당에서 골라온 것들을 먹으면서도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느라 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러다 튀어나온 말!

"엄마는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아! 나는 여기가 너무 싫어!"


사실 그냥 '오늘은 내가 피곤하니 쉬고 싶어요.'라고 말하려던 거였다. 근데 왜 말이 제대로 안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엄마와 동생은 일정을 따라 호텔을 떠났고, 나는 숙소에 남기로 했다. 끼니때가 되어 호텔 근처 식당에 가서 점심으로 '볶음국수'를, 저녁으로 '똠얌꿍'도 시켜먹었다. 그리고 휴식시간에는 호텔 안 풀에서 놀기도 하고, 근처에 있던 바닷가를 산책했다. 그리고 입이 궁금해서 유명한 감자칩 '레이스'를 사 먹으러 세븐일레븐에도 다녀왔다. 엄마와 동생은 과일은 잔뜩 사서 들어왔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같이 나눠먹고 다음 날에는 같이 여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행 내내 크게 즐겁지는 않았다. 멋진 것을 보고 맛난 것을 먹어도 엄마와 동생이 즐거워하면 자꾸만 심술이 났다. 여행 내내 가족들은 환자를 모시고 다녀야 해서 무척 피곤해했다.


아픈 곳이 한 군데라도 있으면 좋겠어!!
입원하고 싶어!!


2013년 여름, 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가 저려오고, 손 마디마디가 시큰거렸다. 새벽마다 통증으로 잠을 깼다. 신경과에 가서 피검사도 하고 감각이상 검사도 했다. 감각이상 검사는 긴 바늘 같은 것을 팔다리에 꽂아서 신경이 제대로 흘러가는지 확인하는 검사다. 검사 결과, 팔다리 저림은 신경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통증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MRI 촬영을 해보기로 했다. 목과 허리를 연속으로 2번을 찍었는데 없던 폐소 공포증이 생길 것 같았다. MRI상으로도 별로 나오는 게 없었다. 손마디가 아픈 것 같아서 류머티즘 내과에도 갔었다. 검사 결과, 류머티즘 소견이 전혀 없다고 했다. 너무너무 쉬고 싶었던 마음에 종아리 뒤에 튀어나온 핏줄이 정맥류가 아닐까 의심하면서 심장 흉부외과에도 갔다. 여러 촬영을 한 후 담당 의사는 정맥류가 아니니 걱정 말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몸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매일 허리가 아팠으며, 새벽 5~6시만 되면 갑자기 팔다리가 저려와서 깨는 일이 반복되었다. 병원에서 아무리 건강하다고 말해줘도 병은 낫지 않았다. 동네 정형외과에 매주 2회 방문했다. 도수치료라도 받으면 살 것 같았다. 근근이 버텨오던 어느 여름, 대학원 과제를 위해 읽게 된 심리상담학 책에서 이런 내용을 발견했다.

어떤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몸에 여러 가지 통증으로 질병을 의심하며 여러 병원을 전전한다. 그러나 병원에서 신체적 질병을 끝끝내 찾아내지 못했다면, 그는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정신과적 약물치료와 심리상담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혹시나 해서 우울증 진단 테스트를 해보았다. 높은 수치가 나왔다. 우울 정도가 높으니 병원에 가거나 상담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적혀 있었다. 엄마는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못 쉬어서 그래. 푹 쉬면 나을 거야.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어떻게 사니. 다들 그렇게 힘들게 사는 거야."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나의 우울감, 무력감, 세상에서 떠나고 싶은 상태를 전혀 공감해주지 못했다.



위기 단계, 즉 우울증 중기에는 이런 모습을 보인다.


<신체적 특징>

수면의 질이 떨어진다.

병이 아닌 통증으로 새벽에 자주 깬다.

몸에 이상 증상이나 병이 발생할 수 있다.


<심리적 특징>

매일 아침 새 날이 시작되는 것이 싫다.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너무 심각해진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확대해석을 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다.

세상의 어떤 것에도 의미가 없다.

세상에서 없어지고 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자살을 생각하거나 계획하기도 한다.

감정 기복이 심해져 조증, 울증 상태를 매우 짧은 시간 동안에 경험한다.

가족이나 친한 사람들과 말도 안 되는 다툼이 잦아져 괴롭다.

분노 등의 매우 강한 감정에 눌려 우울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이상 반응>

내 말이 진심인가 의심할 정도로 이상한 소리를 한다.

스스로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겨 자기혐오와 자기 비하가 심각해진다.

공동체 생활이나 외부 모임에서 도태되어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체중의 변화로 인해 외모에 자신감을 잃고 외출을 꺼리게 된다.




2014년 가을, 가족여행으로 인해 위기감을 느끼신 엄마는 힘들다는 내 넋두리를 그제야 받아들이셨다.

"네가 그렇게 힘들면 가보자, 정신과. 휴직을 하던지 하자."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시작한 지 2년 만이었다. 무슨 일이든 엄마한테 허락을 받아야 실행할 수 있는 36살짜리 어린아이에게 반항기가 주어지려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오미입니다^^


이 글은 앞선 '얼마나 우울하신가요?[1]'과 연결된 내용입니다. [1] 탄을 읽고 많은 분들께서 어려운 시기를 잘 넘겼다고 위로도 해주시고 격려도 해주셔서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우울증 끝내기>라는 매거진은 제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작성된 글이므로 혹시 내용들 중 잘못된 정보가 있거나 개선되어야 할 내용을 발견하시게 되었을 때 꼭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저와 다른 분들께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Free-Photos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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