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시간과 감정을 감당하는 것

나이가 들고 나니 알게 된 것

by soft breezes

나이가 들어도 아직 고쳐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면, 반대로 나이가 들고 나니 편안해진 것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조금은 이기적이려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편이다.

오래전부터 혼밥(혼자 밥 먹기), 혼여(혼자 여행하기), 혼영(혼자 영화 보기), 혼콘(혼자 콘서트 가기) 등이 익숙해졌다.

스무 살이 되면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고시원 생활을 하고, 자취 생활을 하면서 이 같은 생활은 시작되었고 어느 순간 나의 성향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혼자가 좋으냐고 물으면 사실 딱히 그런 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변한 환경에 적응하느라 그랬던 거겠지.


어른이 된 것이 정말 좋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다.

자취를 시작하고 혼자 세탁물을 맡기고 비닐을 부시럭거리며 세탁물을 찾아올 때나, 돈을 벌기 전에는 눈으로만 보았던 것들을 직접 손에 넣을 수 있었을 때나,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위해 장을 보고 요리를 할 때,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되었구나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둥지를 떠나서 나는 꽤 많은 고시원과 원룸을 거쳐왔다. 그래봤자 이십 대였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멋모르고 덤볐던 그때가 새삼스럽기도 하다.


예산 안에서 원룸을 구하느라 부동산을 전전하는 마음을 안다. 햇빛이 들지 않는 방에서 주말을 보내는 마음을 안다. 아파도 내 손으로 죽을 사 먹고 약을 타오는 마음을 기억한다. 먹고사는 게, 이렇게 쉽지 않다니.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창을 갖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니. 집주인에게 매월 월세를 꼬박꼬박 내고, 조금 깎아줄 수는 없겠냐고 말하는 것도. 한 푼 두 푼이 아까워서 인터넷 쇼핑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해보는 것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시원에서 지내본 것은, 나의 이십 대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창문 하나 없는 곳, 옆방의 티비 소리가 들리던 곳, 어설픈 잠금시설을 믿고 낡은 에어컨 하나도 감사했던 곳.


이제는 세월이 꽤 지났지만 선명한 기억들이 있다. 혼자서 나름 씩씩하게 지냈던 것 같다. 다들 이렇게 어른이 되는구나 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이만 든다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많은 경험의 레이어가 쌓여서 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른이 되기 싫어도 어른이 된다. 시간은 멈출 수가 없기 때문에. 여고 시절 지는 해를 보며 나는 결혼을 하기는 할까, 아이는, 이런 망상을 하던 순간도 어느새 현실이 되고, 영원할 것 같았던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막연히 마음속에 숨겨두었던 글쓰기가 어느새 나의 삶의 일부가 된 것도 다 시간이 한 일이기 때문에.


걱정도 많고, 여전히 긴장도 잘하는 나이지만 이제는 좋아하는 것 앞에서 망설이지 않고, 일단 그냥 해보려는 마음을 먹으려고 한다. 걱정은 길게 끌고 가봤자, 나아지는 것이 없으므로. 어제 보았던 영화 ‘작은 아씨들’의 엄마가 했던 말처럼, ‘해가 지기 전에는 마음을 푸는 것’을 인생의 모토로 삼아보려고 한다. 미워하는 마음도, 염려하는 마음도, 화나는 마음도 해가 지기 전에는 자기 전에는 마음을 풀고서. 어차피 하게 될 것이라면, 어쨌든 하게 될 것이므로.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고, 잘 다루는 것은 아직 내가 터득하지 못한 것이지만. 그러려고 한다. 내가 왜 불안한지, 내가 왜 슬픈지,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고 적절히 끊어낼 수 있는 것이 어른의 가장 큰 능력이 아닐까. (아아 그런데 저는 멀었습니다. 오늘도 어제도 아이에게 소리친 나 자신아.. 이렇게 또 다짐문이 되려 한다) 글을 쓰면서 좋은 점은 나를 조금 거리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하는 것이다. 여전히 부족해도 잠시라도 나를 돌아볼 수 있으니까. 이렇게 말하고서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겠지만. 아무리 상황이 그지 같아도(!)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는 것을 한다. 그것이 나이가 들고 보니 가장 현명하다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의 감정을 타인에게 쏟아내고 의지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부디 나의 생활이 무너지지 않게, 나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내가 나를 지켜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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