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신호등을 건너시는 할머니

이 세상의 모든 할머니의 사랑스러움에 대해서

by soft breezes

어렸을 적 나는 여름 방학 때마다 부평에 있는 외할머니댁에 머물렀다. 2주에서 한 달가량 되는 여름 방학이, 끈적끈적 습한 여름 장마철이 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기억 조각들이 있다. 그때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에너지가 넘치는 분들이셨다. 배드민턴 치기를 좋아하셔서 주기적으로 대회에 나가셨고, 누구보다 몸치인 나에게 배드민턴을 알려주신 분들이다. 남편은 처음 나와 배드민턴을 칠 때 탁구를 칠 때 흠칫 놀라 물었다. “아니, 생각보다 잘 치는데?” 마치 JYP의 ‘어머님이 누구니’의 가사처럼 너에게 배드민턴을 가르쳐주신 분이 누구니...


배드민턴을 가르친다는 건 배려가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엄청난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제멋대로인 초등학생에게 말도 지지리도 안 듣는 무려 초.등.학.생에게 배드민턴을 가르친다는 것은. 아무래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에 나는 배울 수 있었다.

일단 셔틀콕을 띄우는 것. 서브를 한다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비스듬히 서서 셔틀콕의 깃털 부분을 왼손으로 살포시 잡은 다음 동물적인 감각으로 오른손에 든 채를 휘둘러서 서브를 넣는 것. 거기까지 가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서브를 넣고 난 후에는 뭐, 모든 것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공(功)이다. 아니 굴러가는 셔틀콕도 살리는 솜씨라니. 굳이 나뭇가지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는 야속한 공을 공중에서 낚아채서 손녀가 잘 받을 수 있도록 친히 올려주시는 노력이라니. 아 지금 생각해도 그 무더운 여름날 짜증짜증을 제대로 부리고 있는 손녀딸에게 배드민턴을 알려준다는 것은... 게다가 나 혼자가 아니라 남동생인 손자에게 두 번 알려줘야 하는 고통이라니.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분들은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이보다 더한 것도 흔쾌히 해주셨다. 한낮의 더위에 뻘뻘 흘린 땀을 씻어내고 소파에 몸을 뉘인 채 멍하니 TV를 보고 있었다. 그 사이 할머니는 저녁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 나이 또래가 다 그렇듯이 까딱하면 ‘심심해’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시절이었다. 할머니가 차려주신 저녁을 기다리는데, TV에서 미니 다큐였던가 아프리카 부족들이 격렬한 춤 한바탕을 벌이고 있었다. 손녀의 ‘심심해’라는 말에 할머니는 쿵쿵 아프리카 부족장이 되어 뜀박질하고 있었다. 자, 이렇게 해봐 흔들어 흔들어 재껴. 까르르 까르르 나는 그날 할머니와 이름 모를 춤을 아주 열정적으로 추었다.


할머니는 더운 여름날 밥하기도 귀찮은 더위에 삼시 세 끼는 물론이고, 매번 장을 보고 간식까지 챙겨주셨다. 부평역 근처의 큰 시장에 가기 위해 마을버스에 오른다. 시장 구경은 원래 좋아했지만, 어쩐지 길어지는 장보기에 더운 날씨에 지쳐 또(!!) 오만 짜증을 내는 손녀딸을 살살 구슬리고 짐 하나 제대로 안 들어주는 미운 손녀딸을 위해 서점을 향하는 일 같은 것. 장보기의 마지막 코스는 서점이었다. 할아버지는 이 서점에서 네가 사고 싶은 책 얼마든지 사, 책 사는 돈은 안 아까워하시며 그 시절 (지금은 나의 최애 책이 된) ‘어린 왕자’와 ‘아기 참새 찌꾸’ 책을 사주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열심히 장 본 꾸러미 꾸러미들을 줄을 이용해 작은 수레에 싣고 달린다.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깜빡이는 걸 그냥 못 지나치는 할머니는 빨리 뛰어! 하고 혼자 먼저 달린다. 수레를 탈탈 끌고 양손 무겁게. 신호등이 깜빡이는 걸 기다리는 할머니는 좀처럼 본 적이 없다. 내가 기억하는 이 세상의 모든 할머니들은 양손 무겁게 들고, 점멸하는 초록등이 재촉하듯이, 손녀딸을 재촉하여 길을 건넌다.


나는 이따금씩 횡단보도를 건너는 할머니들을 본다. 약간은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예전만큼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재촉하고, 무릎을 짚고 할머니들은 부지런히 길을 건넌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세요라고 묻고 싶을 만큼. 이 세상이 모든 할머니들은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다. 손녀딸이 기다리든지, 노인정에 가서 화투를 치셔야 한다든지, 끓고 있는 된장찌개의 불을 끄러 가야 한다는 듯이.


몇 해 전 겨울 눈이 많이 와 얼음길이었을 때 할머니가 넘어지셔서 팔이 부러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할머니는 끝까지 나에게 병원을 알려주시지 않고, 전화도 길게 받지 않으셨다. 다 자식들에게 피해 줄까 봐 그러신다는 걸 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는 매년 할머니댁에 가서 몇 날 며칠을 지냈는데, 할머니는 항상 우리 집에 오셨을 때 하루 이틀만 있다 금세 가버리시곤 했다. 화초에 물 줘야 돼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뻔한 말을 하시면서. 그리고 언젠가 아주 옛날, 한 번은 낮에 엄마와 내가 잘 때 (그렇게 가시지 말라고 했는데도) 조용히 짐을 챙겨서 집으로 가버리셨던 그때의 일은 난 평생 못 잊을 거다. 엄마, 할머니 가셨어! 이러면서 허탈하게 현관 입구를 보던 그날.


이상하게도 할머니의 팔이 부러지셨단 소식을 듣고 눈물이 많이 났다. 사실 수술하시고 깁스하는 어찌 보면 작은 일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그날처럼 할머니가 갑자기 그렇게 사라질 것 같아서 겁이 났었나 보다.


2023. 04. 21. (금) 20:26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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