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
할아버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것도 하루에 두세 번씩 안부 카톡을 보내주신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네요. 세상은 변하고 계절은 바퀴고 나이는 먹어도 마음속에 젊음은 간직하고 삽시다. 오늘도 건강 잘 챙기시고 힘찬 하루 보네세요.'
때로는 남산 팔각정 앞에서 찍은 본인의 사진만 보내실 때도 있고, 몸에 좋은 음식에 대한 기사 링크, 소크라테스의 사과 이야기를 보내주실 때도 있다. 사실 고백하자면 지금 이 글을 쓸 때 이 이야기를 처음 읽어봤다. (읽어보니 생각보다 좋은 걸)
'오늘, 지금의 선택과 결정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좋은글'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 할아버지의 즐거움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한 번도 언급한 적은 없지만. 초반에 보내주신 영상의 트로트 음악이 너무 강렬하여 그 이후로는 특히 동영상은 실수로라도 누를까 봐 조심하는 편이다. 용량은 어찌나 큰지. 어디서 이런 영상을 사진을 가져오시는 건지. 가끔 무안하실까 봐 몇 달에 한 번씩 답장을 하는데, 대부분은 답이 없으시다. 아마 하루의 루틴처럼 보내시는 메시지가 아닐까 짐작만 할 뿐이다.
할머니는 다리 수술하신 지 두어 달이 지나고 김장철이 다가오자 김치를 담갔다고 한다. 그 연세에 큰 수술을 하시고 회복하시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할머니는 본인 의지대로 수술을 하셨고, 한동안 다리를 제대로 못 쓸 것 같다고 하셨는데. 김장이라니. 할머니, 큰딸은 환갑이 지났고요, 손녀딸은 그 딸을 낳아 기를 만큼 시간이 지났다고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이에 비해 정정하신 편이다. 지금도 우렁찬 목소리에, 의식주 생활하시는 데 문제가 없고, 매일 노인정에 가서 화투를 치신다. 다리가 불편하다 하시면서도 명절 때 몇 시간씩 고! 스톱!을 외치시는 모습을 보면, 몇 십 년의 세월이 무색하다. 그래서 그런 걸까. 나는 종종 할머니, 할아버지의 나이를 잊는다. 하긴, 본인께서도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하고 계신 것 같다.
아니 그래도, 김장은 너무한 것 아닙니까. 아마 할아버지와 함께 시장에 가서 절인 배추와 무와 이것저것을 주문하셨을 것이다. 자식들은 내가 챙겨야 한다면서 큰 다라이에 양념소부터 만드셨을 것이다. 서로 입에 넣어주며 간이 맞니 안 맞니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두 분이서 하루 종일 배추 속을 넣고, 김장통에 차곡차곡 넣어두셨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다. 김장 아니어도, 카톡 아니어도 괜찮다고. 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계속할 것이다. 본인의 몫이라고, 이게 내 재미라고 하실 것이다. 다음 주에 할머니댁에 간다. 김장했으니 맛보고 가져가라고 하신다. 결국, 우리를 부르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아주 오래된 동네의, 오래된 아파트의, 가로수들을 지난다. 그 동네는 내가 8살 때에도 그전에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곳에서 수십 년이 지난 모습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마주한다. 내 눈은 아직도 8살 때 보던 정정한 할머니와 할머니의 모습을 찾으려 한다. 어서 할머니의 김장 김치를 맛보고, 어머 뭐야 너무 맛있어! 호들갑스럽게 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