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것의 부작용
이제 휴직이 한 달가량 남았다.
그동안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들을 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수영과 글쓰기였던 것 같다.
내가 나를 규정짓는 것이 정말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 나는 걷잡을 수 없이 폭주했다.
수영장에서 나는 그 누구보다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열린 마음으로 강습을 들었다.
여기서만큼은 나도 마음을 활짝 열고 할머니(라고 부르면 큰일 난다. 왕언니가 맞다.)들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고 그들의 오지랖도 웃으며 넘긴다.
실력이 미비하게 늘었지만, 그럼 어때, 출석률은 자신 있지 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아직도 수영장 뺑뺑이를 돌지 못하지만 주 3회 강습이 6개월 차에 접어들었고, 그동안 옆레인에서 부러워만 하던 오리발도 해봤잖아!
곧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들어 어느 때보다 더 열정적으로 수영에 임하고 있다.
나만의 책을 만들고 싶다고 글을 썼고, 브런치 작가에 신청했고, 방송작가교육원에 지원했다.
나비효과라고 해야 하나. 뭔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나는 글 쓰는 게 좋았다.
마음이 정돈되고 가지런해졌다.
글 쓰기 전에는 항상 주변을 청소했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을 내려서, 비록 창밖의 다른 아파트 뷰일지라도, 허공을 응시하며 글을 쓰는 순간이 좋았다.
나름 내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나 보다 하며 내가 나를 토닥여주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나열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국회의사당 옆의 방송작가교육원은, 미지의 세계였다.
어릴 적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 혹은 방송국의 기자나 작가, 피디가 되고 싶다고 잠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재능의 영역,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은 범접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생각하고 곱게 접어 넣었다.
이제는 멋모르고 덤빌 나이도 아닌데… 무작정 교육원에 지원했다.
그렇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폭주했다. 얼마 남지 않은 휴직의 부작용.
평일 밤에 교육원에 다니려면, 남편과 아이의 도움이 절실하다.
집안일은 팽개치고 근심 어린 얼굴로 타자를 치고 있는 아내를 눈감아 주거나, 갑자기 심야 영화를 보겠다고 집을 나서는 아내를 이해해 주어야 한다.
아이는 매주 1회 저녁은 엄마가 늦게 온다는 걸 알고, 차려둔 저녁을 먹고 숙제를 하고 ‘엄마, 공부 잘하고 와.’(공부하는 줄 안다. 공부가 맞긴 하지…)라고 말해준다.
나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9호선을 타기 위해 강의실을 빠져나와, 9호선의 종점을 향해 달려, 아이가 잠든 집에 돌아온다.
나름 설레고 재미있었다.
나의 시놉시스를 제출하기 전까지는.
세상에, 호락호락한 건 없지.
그럼, 그렇지.
역시, 내가 갈 곳은 아니었나 봐.
시놉시스 합평을 마치고 수정해야 하는데, 다음 주에 발표인데, 나는 단 한 줄도 고치지 못했다.
길어진 고민에 좌절하는 것, 이거 꽤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수영? 못 해도 그냥 즐기면 되었는데.
책 쓰기? 그냥 자기만족으로 만들고 가끔 들춰보면 되었는데.
이건 그런 영역이 아니다.
하루 종일 시놉시스 생각만 한다.
어디서 좋은 아이디어 하나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오락가락한다.
안 되는 것을 붙드는 것이 나의 아집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는 것이 끈기인지.
일단 지금으로서는 마음을 비우니 선명해지긴 했다.
‘수료’를 목표로, 못 하겠으면 못 하겠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수용할 건 수용하고,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다 해보자고.
쓴소리를 듣기 싫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포기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못 해도, 하기 싫은 건 아니니까.
어찌 되었든 내가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살짝 맛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있었다.
…라고 자기 합리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