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것의 효과
아니 벌써 6월이라고요.
아니 벌써, 여름이라고요?
2024년이 반틈 정도 지났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야 나는 이곳을 기억해 냈다.
내가 내 마음이 내켜서 뭐라도 끄적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언제였더라.
일전에 나는 내 마음먹은 대로 한 것의 부작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글이 너무 좋아서, 글이 쓰고 싶어서, 하고 싶은 말이 아직 남은 것 같아서, 하고 싶은 일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서 지원했던 방송작가교육원은 말 그대로 4개월 ‘수료’하였다. 그러고 나서 호기롭게(!) 다음 진급반에 낙방하였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뜨겁게 안녕을 고하겠노라고, 어떤 결과가 와도 수용할 수 있겠노라고 몇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렸던 나였다. 내가 나를 실험하기로 했다고 생각했다. 잊고 있겠노라고 생각했지만 뒤늦게 열어본 메일함은 텅 비어있었고.
그래도 다행인 건, 마지막 날 선생님께 건강하시라고 악수하고, 넉 달 동안에도 아직은 낯선 동기(!) 동생들과 웃으며 헤어졌다는 사실이다. 낯선 상황을 두려워하는 나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나니 피할 수 있는 건 어느 정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나이가 든 것의 장점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적절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 말이다. 좋게 포장하자면. 내가 원하는 것은 집중하여 열중하면 되는 것이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적당히 스킵하고 흘려보내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선택과 집중은 가능했지만 어떠한 새로운 상황에 노출되거나 내던져지는 것에는 소극적인 자세가 되었다. 가뜩이나 잘 긴장하고 얼어붙는 나에게는, 돌발 상황이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
내가 선택한 것. 그에 따른 결과도 내가 책임지는 것.
휴직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방송작가교육원에 지원해서 수요일마다 여의도로 향하는 것. 난생처음 써 보는 시나리오와 대본을 합평받는 것. 작법을 공부하고 하루종일 대본 생각만 해 보는 것. 어색하지만 회식에도 참여하고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새로운 돌발 상황이었다. 그리고 다음 진급반에 지원하여 낙방하는 것까지 모두. 나의 뜨거운 진심을 내색하지 못했지만, 나름 나의 상황 안에서 열정적이었고, 동기들과 선생님에게 내적 친밀감을 느끼며, 모두의 안녕을 빌고 헤어지는 것도. 동기들의 대본을 보며 그들의 세계를 잠깐 빌려 볼 수 있는 건, 지금 생각해도 짜릿한 경험이었다. 각자의 인생과 현업이 바쁜 와중에도 글을 쓰며 그들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분들에 대한 경외심이 들었다. 사람을 보는 따뜻한 시선이, 뜨거운 진심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느껴졌던 정현민 작가님까지.
그리하여 나의 마지막 인사는 진심이었다.
나는 그들의 순수한 진심을 보았기 때문에, 앞으로 그들이 어디에서든 건강하게,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랜만에 본 ‘불합격’의 세 글자.
그렇고 그런 평범한 일상에 돌멩이 하나 톡 떨어져 파동을 만들어낸 듯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신기루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같기도, 길고 긴 꿈을 꾼 것 같기도. 마음 한 켠에 접어 넣어두고 또다시 어떤 기회가 온다면 다시 꺼내 볼 수도 있겠지.
때로는 삶에 예상치 못한 불합격이 톡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마음먹은 대로 해서 마냥 괴로워하다가, 마음 가는 대로 한 것의 의미를 찾아보기도 한다.
어찌 되었건 이것이든 저것이든, 나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뿐이니까.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내 손으로 키보드를 두들기고, 무슨 문장이라도 쓰고 싶어 했으니까. 그것이면 되었다고 내가 나를 위로해 본다.
중요한 건 정말, 내가 내 마음대로, 마음먹은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해본 것만이 의미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