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킹,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나의 엉렁뚱땅 베이킹 일지

by soft breezes

베이킹을 배워본 적이 없다.

베이킹을 해본 적도 없으면서 그간 이케아나 다이소에 가면 오븐용 트레이, 큰 보울, 알뜰 주걱, 쿠키 커터 같은 것들을 사 모았다.

‘언젠가는’ 나도 베이킹을 할 수 있겠지.


요즘 이 세상엔 편리한 밀키트가 가득하다.

베이킹의 세상에도 키트가 있었다.

아이와 함께 조물락 거려서 점토처럼 빚은 쿠키, 일본 포켓몬센터에서 사 온 포켓몬 쿠키, 각종 초코펜을 녹여 장식하고 만족했다.

나는 최근 얼마 남지 않은 휴직 기간을 알차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었는지, 무료한 주말을 아이와 좀 더 알차게 보내고 싶어서였는지 몇 차례의 베이킹을 했다.

애플파이, 바나나브레드, 초코 쿠키, 플레인 스콘, 초코 스콘, 우유 식빵, 휘낭시에.


그중 버터에 대하여-


버터 혹은 버러.

버터는 어쩜 발음도 버터인지.

포장지를 살포시 벗겨서 바라보니 육면체의 반듯한 모양도

하얗지도 노랗지도 않은 그 사이 청순한 아이보리 색깔도

꽁꽁 언 버터를 칼로 작은 깍두기처럼 또각또각 썰어도 보고

살짝 녹은 버터를 지그시 눌러서 으깨 보기도 하고

버터를 녹여 헤이즐넛 향이 나게 태워보기도 하고


온 집에 가득 차는 버터, 설탕이 녹는 냄새

고소하고 구수해

추운 겨울 버터가 녹듯 마음이 녹듯

버터는 어쩜 발음도 식감도 맛도 포근해


처음엔 그냥 대충 얼렁뚱땅 베이킹을 해보면 되겠지 싶었다.

나는 그냥 한 번 해보는 거는 거지, 있는 걸로 어찌어찌해 보면 되겠지.


그런데 베이킹을 해보니 ‘대충 얼렁뚱땅 베이킹’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비슷하달까. 재료가 달라지면, 계량이 달라지면, 온도가 달라지면, 시간이 달라지면 베이킹은 불가능했다. 푸근한 영국의 할머니가 오븐에서 막 꺼낸 스콘, 애플파이 같은 것들을 기대했다. 마음씨 좋은 삼순이가 흰 조리복을 입고 조리모를 쓰고 굽던 쿠키와 케이크 같은 것들.


그런데 베이킹 이거, 1g조차 계량해야 하는 것이었다니. 어쩌면 베이킹은 공대생들이 해야 하는 분야가 아닐까. 여러 변수를 조절하고, 인과관계를 도출해 내고, 숫자 감각을 발휘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다분히 문과적인 나는 그저 ‘대충 얼렁뚱땅 베이킹’을 하려고 했던 건데, 베이킹을 시작하자마자 아주 ‘본격적인 마음’이 되었다.


그러나 나같이 어설픈 사람도, 전자저울과 유튜브 선생님들이 있다면 정밀한 베이킹을 할 수 있다. 전자저울에 0점 조정하고, 계량컵이란 걸 꺼내서 1g마저 조심스럽게 저울의 숫자가 변하는 찰나를 포착한다. 오, 새로운 감각이다. 조심스럽게 모든 재료의 무게를 재서 조리대 위에 올려다 놓는다. 체에 가루를 담고 눈이 내리는 걸 보며 탈탈탈 털어 넣는다. 계란을 흰자와 노른자로 살살 분리하거나 거품기로 쉑쉑 섞는다. 모두 합치고 유리 보울에 알뜰주걱을 긁어대며 반죽한다. 때로는 사과를 얇게 저미고, 바나나를 으깨고, 초코칩을 다져 넣고, 버터 코팅을 한다.


다분히 감각적인 과정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빵집 가서 식빵을 3분 내에 살 수 있는데, 나는 오늘 발효만 2시간을 했다. 빨리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그냥 기다리고, 시간을 들이고, 지켜볼 뿐이다. 발효를 통해 빵이 부푸는 것을 지켜보고, 점점 말랑말랑 해지는 반죽의 공기를 빼고, 오븐 속에서 노릇해지는 모양에 감탄한다. 이게 과연 식빵이 될까, 쿠키가 될까 궁금해하며 오븐밖을 서성인다. 땡 하는 소리가 나자마자 트레이를 확인한다.


베이킹이 끝나자마자 드는 생각은, ‘어서 누군가에게 먹여보고 싶다’는 것.

정작 만든 사람은 한 입 먹고, 고마운 누군가를 떠올리거나 근처에 있는 누군가를 떠올린다.

그러나 초보 베이커는 아직 그 정도 실력이 되지 않으므로, 생각에 그친다.

누군가 먹고 기분 좋아하지는 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아이에게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를 선물해 주고 싶은데, 커서도 ‘엄마의 애플파이’가 먹고 싶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먹는 것에 관심이 없는 나의 딸은 빵과 쿠키를 한 입 먹고 돌아선다. 애석하지만 나 혼자 충분히 베이킹의 과정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운명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베이킹은 즐겁고 수고롭고 이타적인 일임을 깨달으며, 오늘의 결과물을 찬찬히 감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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