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영원히 산타가 되고 싶어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이맘때면 아이의 마음을 떠 보느라 애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산타할아버지께 뭘 부탁할 거야?”
아이는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음 엄마는 티니핑 안 사줄 것 같아서… 티니핑?”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데 티니핑이라니.
여기서 현명하게 대답했어야 하는데 본능대로 대답하고 만다.
“어… 티니핑은.. 아기들이 갖고 노는 거 아냐? 언니들한테도 주시려나..”
집 한구석에 쌓인 티니핑 피규어들과 각종 장난감들을 아직도 소곤거리며 갖고 노는 걸 아는데, 아니 알기 때문에 이제 졸업했으면 좋겠는데…
그러더니 이내 다시 말을 바꾼다.
“그럼, 난 마카펜 사달라고 해야겠다.”
마카펜…?
이 얼마나 교육적인 아이템인가.
나도 어릴 적에 끄적이는 걸 좋아해서 100색 크레파스, 수채화 색연필 이런 것들이 갖고 싶었다.
하지만 쉽게 가질 수는 없었다. 나도 금색 색연필, 은색 색연필 갖고 싶은데. 그 시대 부모님들은 뭐 하나를 호락호락 사주시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중고등학교 때까지 문구덕후가 되어 틈만 나면 문구점에 가서 펜 고르고 만지작거리다가 맥주 사탕 사서 돌아오곤 했다. 용돈 한도 내에서 그 시대 유행하는 하이테크펜과 플레이펜(혹은 저렴 버전으로 파인테크펜과 라이브펜을 더 많이 샀지만)을 조금씩 사 모았다. 아마 이 시기에 ‘made in japan’ 문구를 바라보며 일본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아니, 다시 정신 차려서 되묻는다.
“마카펜…? 왜? 그걸 받고 싶어?”
“학교에 마카펜 있잖아. 그거 색칠할 때 진짜 좋은데, 집에도 있었으면 좋겠어.”
이쯤 되면 아이가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엄마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고른 건 아니겠지… (제발 그러진 말아 줘)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냅다 대답한다.
“오 그래? 엄마도 마카펜 써봤는데, 그거 디게 좋더라.”
이쯤 되면 바로 네이버창을 열고 ‘가성비 마카펜’ 검색에 돌입한다.
내가 어릴 적 일본산을 사지 못해 국산을 산 것마냥, 이제는 국산과 중국산의 갈림길에 서 있다. 남편에게 묻는다.
“(대부분 답정너입니다) 오빠, 아무래도 미술도구는 비싼 값을 하지? 좀 비싸도 국산 살까?”
“(극현실주의자입니다) 하 아직 초등학생인데 무슨, 그냥 싸고 막 써도 되는 거 사. “
그렇다. 사실 초등학교 저학년이 입시미술하는 것도 아닌데 국산은 나의 욕심이었다. 가격도 두세 배나 차이가 났다.
어차피 펜촉도 상할 테고, 비싼 건지 싼 건지 아직 모를 테니 중국산으로 사야겠지.
아니 그런데 컬러 욕심은 버릴 수가 없는 걸. 256 색상이라니. 너무 황홀하잖아.
조금의 현실 타협을 해서 204 색상을 고른다. 이걸 어디다 둬. 그런데 어릴 적 자아가 튀어나와 외친다.
“가격 차이 얼마 없잖아, 만원 더 주고 200 색상!”
그렇게 주문한 마카펜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름답다…
하나하나 검수를 핑계로 끄적여보며 내가 행복해진다.
그러다가 또 조금 마음에 걸린다.
티니핑… 사줄 걸 그랬나.
아직도 아기처럼 피규어를 늘어놓고 소곤대는 모습도 올해가 마지막일 것 같은데.
아이는 요즘 친구들과 나눈 대화에 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엄마, 00이는 산타할아버지 없다고 그러더라?”
“아니 산타할아버지가 어떻게 하늘에서 썰매를 끌어?”
내가 해 준 대답이 영 시원치 않았는지, 요 며칠은 크리스마스 책만 들여다보고 있다.
아이가 학교 간 사이 늘어놓은 책들을 정리하다가 웃음이 나온다.
아 오늘도 산타할아버지 책 읽고 갔네…
나는 정말 영원히, 모른 척, 산타할아버지인척 할 수 있는데!
아이 몰래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고, 자기 전에 산타할아버지에게 소곤대는 소리를 듣고, 산타할아버지를 의심하는 모든 순간이 좋은데.
이제는 믿거나 말거나 전략으로 가야 하나.
음, 아무래도 이번 크리스마스엔 산타할아버지는 마카펜을, 엄마는 티니핑을 사줘야 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