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포드 감독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
고백하자면, 이전까지 서부영화를 본 적이 없다. 그다지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대신 그 빈자리를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이미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법과 질서가 없는 시골 마을, 호전적인 마을 남자들, 굴러다니는 회전초, 악인을 무찌르고 바람처럼 가버리는 카우보이의 뒷모습, 모래 냄새가 나는 거친 화면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존 포드의 <리버티 밸런스를 쏜 남자>에서 나는 환상과는 다른 서부를 만났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남자>에서 악당은 리버티 밸런스다. 그는 패거리들과 함께 역마차를 습격하고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등 행패를 부린다. 상상했던 대로다. 그렇다면 이제 바람을 가르고 외로운 총잡이가 마을로 와야 하는데, 감독은 역마차에 젊은 변호사 랜섬을 태워 보낸다. 리버티 밸런스가 찢어버린 법전으로 그를 감옥에 넣겠다는 이 남자, 정말 마을을 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마을에서 총을 가장 빠르게 쏜다는 톰 도니폰이 영웅에 더 가까워 보일 지경이다. 환상과 다른 랜섬의 등장 덕분에 일반적인 악당-영웅의 갈등보다 ‘영웅’으로 보이는 랜섬과 톰의 갈등이 더 눈에 들어온다. 힘과 총이 서부의 규칙이라는 톰과 법과 제도, 교육으로 각성한 시민들로 그 규칙이 바뀔 수 있다는 랜섬의 갈등은 폭력과 질서, 힘과 이성의 대결이다. 총에 총으로 맞서던 서부영화의 환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서부의 규칙에 맞서는 무언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관객인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화면을 보게 된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것은 랜섬의 법인가 톰의 총인가?
이 질문은 곧 예상치 못한 답을 얻었다. 랜섬이 리버티 밸런스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총으로 승리한 것이다. 이성적인 인물의 폭력적 승리! 이 승리에 힘입어 사람들은 랜섬을 주 승격을 위한 회의에 나갈 지역 대표로 추천한다. 질서는 폭력의 힘을 딛고 자신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총소리 이후 질서로 안정되는 서부의 모습이라니, 내 환상 속에 없는 장면 이었다. 거기다 랜섬 뒤에 있던 톰이 실제 리버티 밸러스를 쏜 사람이라니 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신본 마을 갈등의 두 축은 서로에게 기대어 신본과 서부에 새로운 날을 가져온 것이다.
그러니 나는 톰 도니폰의 마지막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찾는 사람 없이 쓸쓸했던 장례식, 총과 카우보이 부츠를 신지 않은 마지막 톰 도니폰의 모습은 갈 때를 알고 돌아선 총잡이의 뒷모습이 아닌가. 쓸쓸한 바람이 불지 않아도, 비루한 말 한 마리가 없어도 그는 충분히 멋있는 카우보이였다. 자신의 노예가 미국 헌법을 외우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새로운 서부가 그의 총에서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랜섬은 그가 정리한 대지 위에 풀을 심은 사람으로 함께 기억될 것이고.
<리버티 밸런스를 쏜 남자>는 존 포드가 감독한 후기 서부영화라고 한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하니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상상하게 된다. 초기 서부의 총잡이들은 어땠을까, 톰 도니폰과는 어떻게 다를까, 내 이미지와 비슷할까. 아마 곧 다른 작품을 마주하게 될 것 같다.
-17.02.18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1962)
감독: 존 포드
주연: 존 웨인, 제임스 스튜어트, 리 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