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의 두 번째 질문
눈을 감고, 햇살은
왜 이렇게 따뜻하고 보드라울까
은연중에 물으니,
웬일로 너는 단호히 답한다.
몸이 없잖아.
죽어서 차갑게 체온을 끌고 내려갈 몸이 없잖아.
오직 기억의 성분으로만 이루어져 있잖아.
햇살이라는 살갗은.
햇살을, 만지며
이곳의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우리처럼 무럭무럭 늙어간다.
김중일 시인의 <햇살> 중
자연물에 인격을 부여하는 학문은
아마 ‘문학’ 밖에 없을 겁니다.
‘햇살’은 왜 “기억의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이 기억들 아래서 우린 어떻게 살아왔을까요?
'시간'은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무형의 기준일 수도 있지만,
언제나 일정한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한 번 뿌려진 씨앗은 기어이 열매를 맺고,
한 번 태어난 존재는 시간과 함께 늙어갑니다.
각자의 목적과 모양에 맞게 시간은 멈추지 않고
또 다른 시대를 향해 나아갑니다.
하지만 가끔은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하는 때도 있습니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끊임없이 변화만 하다 보니,
'푯대'가 불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바라며 사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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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는 世(인간 세)와 代(대신할 대)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아이가 성장해서 부모의 일을 거치기까지의
기간을 뜻하기도,
같은 시대를 살면서
공통된 의식을 가진 연령층을 뜻하기도,
한 생명체가 태어나서 삶을 끝마치기까지의
여정을 뜻하기도 하죠.
신기하게도, 세대가 교체되는 시점은
'이미 존재하는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낳을 때'입니다.
먼저 태어난 자가 나중에 태어난 자에게
세상을 인도하고 전승하는 거죠.
옛 세대가 떠나고 새 세대가 등장하는 것은
마치 '기회'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한 생명 자체가 영원히 살 수는 없지만,
자신과 닮은 생명이 거듭날수록
생명의 공동체가 점차 팽창해집니다.
옛 세대가 남긴 나침반과 지도를 받은 새 세대는
이전의 과제를 들고 현재를 살아갑니다.
고쳐야 할 것은 명확하게 수정하고
지켜야 하는 것은 지혜롭게 간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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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의 이야기로 넘어옵시다.
우리는 왜 동시대를 살아갑니까?
우리는 어떤 운명적 관계를 맺었기에
이토록 동일한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겁니까?
같은 사회적 문제를 껴안고 고민하고 발버둥 친 끝에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은 결국
'함께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함께의 가치는 필연적입니다.
우리 세대 앞에 놓인 질문들은 복잡하고 무거워서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 사람을 위한 법과 구조를 만들지 못하는 건가요?"
"언제부터 서로에 대한 공감대가 사라진 건가요?"
"왜 죽음과 애도가 정치를 위한 도구가 된 건가요?"
"약한 자의 죽음은 왜 그만큼의 무게를 갖지 못하는 건가요?"
매 순간 크고 작은 '비상'의 순간 속에서
침묵과 확성의 비율은 교활합니다.
진실과 거짓이 한 끗 차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옛 구조에 녹아들고 있지는 않은가요?
세상을 움직이는 실력은
'지금을 살아가는 책임감'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세대가 이 땅을 밟으며 살다가 떠났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차례입니다.
우리가 아무 대가 없이 받은 자유의 시발점을 인식하고,
지금 우리 세대에게 맡겨진 몫을 행합시다.
의지를 잃은 자에게는 본질을 담은 목표를,
성공에 눈이 먼 자에게는 태초의 계획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