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주식투자
과거의 나는 오래도록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직장도 별로고, 외모도 별로고, 인간관계도 잘 못하고,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로 스스로를 수식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부정적인 언어에도 불구하고 뒤에 '10억이 있다'는 말을 붙이면 그럭저럭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직장은 별로지만 10억이 있다, 외모는 별로지만 10억이 있다, 인간관계는 잘 못하지만 10억이 있다.'. 이렇게 앞에 어떤 부정적인 단어가 있어도 바로 뒤따라서 '10억이 있다.'는 수식어가 붙으면 앞에 어떠한 부정적인 말이 와도 상쇄될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내 문제를 쉽고 빠르게 돈으로 해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를 짓누르는 고민거리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필요했고, 돈을 빨리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은 주식투자밖에 없어보였다. 그래서 주식투자를 시작하게 되었다.
주식투자는 부동산투자에 비해 필요한 자본이 적어서 바로 투자할 수 있고, 부동산 투자처럼 중개사나 매도인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하는 것이 두려웠는데,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주식투자가 유일해보였다. 인생이 막막하다고 여겨질 때, 매일같이 소액으로 주식을 샀다 팔았다하며 버는 치킨값은 굉장히 달콤했다. 회사에 다니기가 괴로워서 전업주식투자자가 되고 싶었고, 주식투자만이 회사에 다니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저축을 하지 않게 되었고, 만원이라도 여윳돈이 생기면 주식계좌로 이체했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주식투자인 것 같아서 전재산을 주식계좌에 넣었다. 주식투자는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얻어 낼 여지가 있을 것 같아보였고, 인생의 다른 분야를 개선하고 개척하는 것보다는 쉬워보였다.
주식투자에 인생을 걸고 나서는 일상의 상당부분을 주식투자에 할애했다. 경제뉴스를 보고, 주식투자 관련 유튜브나 주식투자 책을 계속 봤다. 회사일을 할 때는 제외하고는 나머지 시간을 모두 주식투자에 할애했다. 주식투자에 시간을 할애할수록 주식투자를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종일 주식생각을 했다. 주식투자 외에는 다 재미가 없었다. 주식거래를 하면서 얻는 소소한 수익금이 짜릿했고, 곧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주식투자를 시작한 것은 사회초년생 때부터였으니까 주식에 할애한 시간과 에너지를 보면 나는 돈을 더 벌어 마땅했는데, 주식투자를 한지 오래되었어도 주식투자로 의미있는 수익은 얻지 못했다. 나는 손실도 못견디지만 수익도 견디지 못했다. 작은 수익이라도 나면 바로 팔아버렸기 때문에 항상 소액의 수익만을 얻었다. 주식투자에 기울인 시간과 노력만큼 의미있는 수익을 얻지 못하자 답답해졌고, 단기간에 더 많은 수익을 얻고 싶었다.
주식투자로 돈을 벌기 위해 증권회사에서 제공하는 API를 활용하여 주식자동매매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어떻게 코딩을 공부해서 주식자동매매프로그램을 만들었느냐고 묻는다면, 돈에 눈이 뒤집힌 사람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눈앞에 돈이 왔다갔다하면, 사람은 힘을 낼 수 있다. 나는 그 당시에 돈이 목표였고, 돈에 대한 생각밖에 안했기 때문에, 서버와 DB, 파이썬을 공부하면서 주식자동매매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내가 만들려던 주식매매프로그램은 횡보장에서 소액을 털어먹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는데, 프로그램을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내가 만든 주식자동매매프로그램은 쓸모없게 되어버렸다.
그 후 주식의 갑작스런 폭락사태를 겪으며 그때부터는 평범한 투자로는 인생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에 레버리지 ETF에 투자했다. 레버리지 ETF란 특정 지수의 하루 수익률을 2배, 3배 등으로 확대해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인데, 선물이나 스왑 같은 파생상품을 활용해 수익을 증폭시키지만, 손실도 그만큼 커지는 고위험 상품이다. 이에 관련된 유명한 말로는 '레버리지 ETF는 원수에게 권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자본금이 적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3배라지 레버리지 ETF를 거래하면서 수익을 올렸다. 자본금을 3배 모아서 투자하는 것은 너무 오래 걸릴 것이므로, 3배짜리 레버리지를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갑작스럽게 주식의 가격이 폭락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전재산을 나스닥 3배 레버리지에 투자하였고, 이는 큰 수익으로 돌아왔다. 성과가 있자 나는 주식 외에 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돈을 많이 벌수록 나의 결핍과 단점이 가려질 것이었다. 인간관계를 잘 못하고, 업무적으로 능숙하지 못하더라도 돈이 많으면,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내가 그토록 바라던 나의 쓰임새와 필요성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내 스스로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할 수 없어서 주식투자로 돈을 잘 벌 수 있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주식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자 비로소 내 존재의 의미를 찾은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아닌 오로지 기계만 다루면 되는 주식투자가 편하게 느껴졌는데, 주식투자는 전세계 어디서든 할 수 있으니 해외로 여행을 다니면서 주식투자를 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했다. 남국의 어디에선가 여유있게 노트북으로 시황을 확인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면 그럴듯했다. 그렇게 살고 싶었다. 주식투자로 돈을 벌기 시작하니 내가 고민하던 것들이 돈 앞에서 시시해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주가 폭락 후 금리인하 및 유동성 증가로 인해 주식이 폭등하고, 나스닥 사상 최고가를 찍는 돈잔치를 벌인 후 그 다음해에는 혹독한 조정장이 찾아왔다. 그 때도 주식계좌에 전재산을 넣어놓은 터라, 혹독하게 조정을 맞이했다. 곧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잔고가 줄어들면서 지난해에 벌어들였던 수익이 사실 내 실력이 아니었다는 것을 돈을 잃으며 깨닫게 되었다. 지난해에 거둔 수익은 시장상황에 따라 우연히 발생한 것일 뿐 내 실력에 따른 결과가 아니었다. 나는 주식투자를 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전 해에 미국주식으로 많은 수익을 내서 많은 돈을 세금으로 내야 했다. 세금 낼 돈을 마련하지 못해서 매수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주식을 매도하면서 손실을 보았다. 그리고 주식을 매도한 돈으로 세금을 냈다. 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돈이 사라지면 돈에 대한 내 욕망도 사라져야 하는데,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점점 더 커져갔다. 더 위험한 투자를 하면서, 더 단기적인 시야를 갖고 투자를 하면서 내 손실을 만회하고 싶었다. 지난 해 가장 자산이 많았던 시기와 비교하면서 그 시기의 주식잔고만큼만 회복하기 위해 더욱 무리한 투자를 했다. 주식투자로 얻은 손실을 회복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지만, 결국 지난 해의 잔고를 회복하지 못했다.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포기할 수 없었다기보다는 주식투자가 주는 도파민에 단련된 내 뇌가 포기하지 못했다. 주식투자가 주는 즉각적인 보상과 내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는 희망이 현실감각을 무뎌지게 만들었다.
나는 내 일상의 너무 많은 부분을 주식투자에 할애하고 있었다. 미국주식을 하기 때문에 밤에 일찍 잠들지 않았고, 새벽 일찍 일어나려고 했다. 충분한 수면을 주식투자에 넘겨주었고, 매일의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내면에 쌓이는 단단함도 주식투자에 넘겨주었다. 매일 하는 산책을 통한 정서적인 안정과 나뭇잎에 반사되는 햇살을 볼 때의 즐거움도 주식투자에 넘겨주었다. 내 모든 우선순위를 주식투자에 주었다.
그런데 이것을 되돌리기가 어려웠다. 내 일상에서는 주식투자보다 더 자극적인 것이 없었고, 주식투자의 보상은 돈이었다. 이 보상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도 취미도 없는 나는 주식투자에 너무 많은 것을 넘겨주었고, 이미 넘겨준 것들을 되찾아오기에는 너무 무력했다. 처음부터 주식투자와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일상적인 소소한 즐거움을 누릴 줄 알던 내 자신으로 되돌아오기 위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주식투자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도움이 필요했고, 주식투자로부터 빠져나올 장치가 필요했다.
주식투자를 그만하기 위해서는 주식투자를 할 돈이 없어야 하는데, 돈을 묶어놓기 위해 적금을 들어도 금방 해지하고 주식에 투자할 것이고, 그 어떤 해지하기 어려운 금융상품에 가입하더라도 주식중독상태인 나는 그 어떤 방법을 들어서라도 해지할 수 있을 것이었다. 중독에 눈이 먼 사람은 어떻게든 기발하게 방법을 찾아낸다. 주식투자를 하지 않을 방법은 내가 수중에 가진 돈을 없애는 것인데, 힘들게 번 돈을 없앨 수는 없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부동산이었다. 주식계좌에 남아있는 돈을 추스린 후 영혼을 싹싹 끌어모아 은행에 맡긴 뒤 내가 받을 수 있는 최대치에 대출을 받아 주택을 매수했다. 영혼의 영혼까지 담보로 저당잡아 대출을 받은 덕분에 주택을 매수한 후 원리금을 정신없이 갚느라 한동안은 수중에 돈이 조금도 남지 않았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그제야 주식투자로부터 다른곳으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덕분에 주식투자에 완전히 거리를 두고 살 수 있었다. 수중에 주식투자를 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거리를 둘 수 밖에 없었다. 착실하게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2년 쯤 갚다보니 머릿 속에 다시 여유공간이 생기며 다시 일상적인 소소한 즐거움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원리금을 갚느라 돈이 없었기 때문에 주식투자가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 돈을 써가며 자극을 추구할 수 없게 되면서, 다시 느릿한 산책과 햇볕에 반짝이는 나뭇잎을 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주식투자할 돈이 없으니 경제뉴스와 주식시황으로부터 멀어졌고, 그 사이에 폭등과 폭락을 반복하는 주식시장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다. 이렇게 강제로 주식투자와 멀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나서 3년간 주식투자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과거 주식투자를 하면서 '아마도 나는 평생 주식투자를 하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주식투자를 안했으면 안했지,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말은 맞았다. 돈이 있는 한 나는 계속 주식투자를 탐닉하게 될 것이었다. 나는 주식투자를 자산을 유지하고 증식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 결핍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했었다. 결핍에 가격을 붙인다면 무한대인데, 그 결핍을 주식투자로 해결하려고 했으니 욕심에는 끝이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3년상을 치르듯 주식투자를 전혀 하지 않는 3년을 보낸 후에서야 다시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주식투자와 적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주식투자는 절약처럼 평생 해나가야 할 과업이지 단기간에 수익률을 최대한 끌어올려 내 고민을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니 주가의 등락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주식의 급등급락에 흔들려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뽑혀져 나갈 정도로 흔들려 본 후 알게 되었다.
30대에는 자본은 부족하고, 지출은 많고, 시간은 없고, 조급하기 때문에 주식으로 돈을 벌기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었었는데, 남의 얘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내 얘기였다. 30대를 돌아보면, 나는 결국 투자로 돈을 벌지 못했다. 아주 오랫동안 애쓰고 집착해왔지만, 결국 돈을 벌지는 못했다. 돈을 벌지 못한 이유는 아마 나의 탐욕때문이었을 것이고, 돈을 담을 수 있는 돈 그릇이 작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40대가 되니 투자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이제서야 주식투자를 내 인생의 보조수단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갑자기 투자에 대해 현명해진 것이 아니라 단기간에 고성과를 내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니 그 동안 왜 돈을 벌지 못했는지 알 것 같다. 이제 겨우 내가 주식투자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식투자가 나를 위해 일하도록 만들 수 있는 준비가 된 것같다. 과거에 주식투자로 얼마까지 벌어봤다던가, 주식투자로 몇프로까지 수익률까지 내봤다고 자랑할 생각은 전혀 들지않는다. 다만, 주식투자를 하고 나서 나를 되찾기 위해 3년간 주식투자를 아예 끊어본 적이 있다는 것은 자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