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동산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내 인생이 대박나길 바랬던 것은 아니었다. 집 한채로 내 인생이 바뀌기를 바랐던 적도 없다. 나는 언제나 내 스스로의 능력을 발휘하여 인생이 바뀌기를 바래왔었다. 물론 집이라는 공간 자체는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집이라는 공간에서 오는 안정감이나 그 반대의 상황에서 받을 수 있는 영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 집의 가격이 사람의 인생에 줄 수 있는 영향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주변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나 가치관이 달라지고, 마주하게 되는 기회의 종류도 달라진다고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나아지게 하는 것이 주택가격 상승만은 아닐 것이다.
서울에 사는 30대 직장인으로써 30대의 끝이 다가오고 있는데, 직장생활을 10년 넘게 해도 내 손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 언젠가부터 신세한탄의 끝은 '그래봤자 집값도 안되는데.' 거나, '그래봤자 집도 못사는데.' 였다. 아무리 힘들게 일을 해도, 수입이 늘어나도 그래봤자 '집'을 얻기에는 부족했다. 30대 직장생활을 잘 해내고, 30대를 다른 사람들 만큼 살아냈다는 증거물로 집이 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집 만큼 보편적으로 그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까지 최악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주는 것도 별로 없는 것 같다. 30대 후반이 될수록 집이 없으면 30대에 뭔가 이루지 못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는데, 결혼도 하지 못한 나로서는 내가 그렇게까지 이상하고 결점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주택을 구입하는 것 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집을 어디에 샀느냐가 곧 그 사람의 명함이 되고 그 사람의 배경을 나타내는 것을 수없이 봐왔다. 나는 과거에 부동산 가격상승의 파도를 탈 기회를 몇번이고 놓쳤고, 그 과정에서 내가 과감하게 부동산을 매수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게 되었다. 나는 집값이 떨어지면 집값이 떨어져서 집을 사지 못하고, 집값이 오르면 집값이 올라서 집을 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좋은 위치의 부동산을 좋은 가격으로 매수하는 것을 바라만 보았고, 다른 사람들이 매수한 부동산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을 몇번이고 지켜보면서 내가 놓친 기회들을 곱씹어봤다. 이제와서 부동산을 매수하여 부동산 가격 상승을 노리기에는 이미 늦었고, 이미 벌어진 자산격차는 쉽게 메워지지 않을 것이었다.
내가 산 주택의 가격이 올라서 내 인생이 한 계단 위로 성큼 올라가 앞으로의 인생이 좀 더 편안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한 적은 없지만, 내가 산 주택의 가격이 폭락해서 앞으로의 인생이 험난해 질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 영혼을 담보로 잡고 앞으로 남은 인생의 가용소득 전부를 끌어모아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주택을 샀을 때에는 그래도 내가 산 주택의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는 했다. 집값이 두배가 되지는 않더라도 그래도 서울에 주택이 있는데 손해는 안보겠지, 인생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주택을 사자마자 주택의 가격이 하락했다.
집값이 떨어진 상태에서 주택을 매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손해를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서울 평균 주택가격보다 한참 밑도는 가격의 집을 샀는데, 그 가격에서도 1억, 2억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거실이 떨어져 나가고, 안방이 떨어져나간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어쨌거나 내가 인생을 걸고 산 주택의 가격은 내가 매수한 가격보다 하락했고, 어쨌거나 나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열심히 대출을 갚고 있다. 주택을 매수한 뒤, 내가 구매한 주택보다 더 좋은 주택이 내가 구매한 주택의 가격에서 1억, 2억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을 보면서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긴 하지만, 어차피 대출이 너무 많이 남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원리금을 갚아가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살면서 주워들었던 좋은 부동산 기준에 따라 서울의 지하철역 가까운, 초등학교도 가까운, 공원도 가까운, 백화점과 마트가 가까운, 응급실이 있는 큰 병원과 가까운 그런 주택을 매수하기는 했다. 단지 문제는 가격이었는데, 너무 늦게 움직였고, 너무 늦게 결심했기 때문에 그 동네에서 가장 비싼 돈을 내고 집주인이 버리다시피 하여 관리하지 않은 노후화된 집을 샀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나는 주택을 구입하는 것이 목표였지, 집을 저렴한 가격에 잘 사서 비싼 값에 집을 팔 생각까지는 못했었다. 인생을 살면서 '집한채는 있어야지.' 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지만, 가성비 좋은 집을 저렴하게 사서 집값이 오르자마자 그 집을 매도하고 다른 곳으로 갈아타기를 할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었다. 나한테 집이라는 공간은 단기간에 가격이 오르면 손을 털고 나올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동네에서 가장 낡고 노후화되고 비선호되는 집을 그 동네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샀는데, 나의 주택매수 거래는 꽤나 여러사람에게 회자되어서 나는 그 동네 주민들에게 꽤나 큰 기쁨과 행복을 주었다. '이 동네에서 제일 선호되지 않는 그 집이 그 가격에 거래되었다.'의 매수자가 되어 그 동네 사람들에게 전설이 되었다. 나한테 온갖 갑질을 시전하며 그런 집을 매도한 매도인이 승자였고, 그 가격에 그런 집을 산 나는 그 동네 주민들에게 '그 집을 그 가격에 샀다고?' 하는 놀람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집을 그 가격에 매수하는 과정은 굉장히 껄끄러웠고 순탄치 않았는데 어쨌거나 그런 집을 그 가격에 매수한 후, 인생이 망하지는 않았다. 우선 무리하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대출을 해준 후 집을 사서 망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볼 만큼 대출을 많이 해주지 않는다. 소득수준을 고려해서 갚을 수 있다고 판단되는 만큼만 대출을 해준다.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이 휘청일정도로 큰 빚을 질 만큼 비싼 가격의 집을 매수한 것도 아니었다. 서울의 주택평균가격에 비해 한참 낮은 그런 집을 매수했다. 대출로 인해 생활비의 여유는 없어졌지만, 가계경제가 크게 휘청일 만큼의 영향은 주지 않았다. 대출을 못갚게 되면 집을 정리하면 된다.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대출 이자나 집값 하락분만큼 개인이 손해를 볼 수는 있겠지만, 대출 받아 산 집이 더 이상 내 집이 아니게 되더라도 자산이 사라질 뿐, 폭싹 망하지는 않는다. 금융기관은 폭싹 망할만큼 대출을 해주지 않고, 적당히 어려워질 만큼만 대출을 해준다. 대출을 받아 주택을 매수했는데,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집값상승으로 인한 시세차익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지 폭싹 망해서 재기가 어려워질 정도는 아니다. 반대로 집값이 올라서 집안을 일으켜세울 수 있을 정도의 기회도 평범한 사람들에게 흔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누가 강남에 집을 샀는데, 그 집이 20억이 되었더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과거에도 그 집의 가격은 당시에 굉장히 비싼 가격의 집이었을 것이고, 그 집을 매수할 때 매수자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그 당시에도 돈이 있었기 때문에 매수할 수 있었을 것이기에 그런 얘기는 과거에 돈이 있었던 사람이 자산 가치 하락의 위험을 무릅쓰고 주택을 매수한 결과 인플레이션 및 주택가격 상승으로 돈을 더 벌었다 라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동네에서 가장 선호되지 않는 가장 노후한 집을 그 동네에서 가장 비싼 가격을 주고 산 후 처음 1년간은 원리금을 갚느라 수중에 돈이 너무 없어서 난감한 순간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아무래도 원리금을 갚다보니 원금상환에 대한 부담이 매월 10원씩이라도 줄어들고 있고, 사정이 생기면서 그 집을 나오게 되면서 세입자에게 세를 주게 되었다. 세입자에게 받는 월세는 내가 내고 있는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월세를 받기에 원리금 상환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다. 원리금을 갚아나갈수록, 인플레이션이 심해져서 돈의 가치가 떨어질수록, 내 소득이 증가할수록 어쨌거나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 상환에 대한 부담은 줄어들게 될 테니, 시간이 흐를수록 대출을 갖고 있는 내 상황이 점점 더 유리해질 것이다.
지금은 집값이 크게 하락하여 어차피 집을 매도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오래 갖고 있다보면 시간이 도와주겠지 하면서 해탈하는 수밖에는 없다. 그렇게 노후화된 주택을 그렇게 높은 가격에 샀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는데, 그리 높지도 않았던 집의 가격이 1억이나 2억 정도 떨어졌어도, 앞으로 내가 산 주택의 가격을 회복하지 못하더라도, 지금보다 금리가 더 오르더라도, 그 모든 것에 불구하고 주택매수를 하기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그런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결코 분위기에 휩쓸려 주택매수를 하지 못했을 것이고, 주택매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생각할 것이 많은 30대에 주택을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을 것이다. 비록 조롱받을만큼 비싸게 사서 나도 부동산이 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주택구매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했다고 생각한다. 집값 상승을 단기간에 노릴 수 있는 그런 주택을 매수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 당시의 내 지식과 안목이 그정도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나에게는 집을 사야하나 말아야 하는 고민보다는 대출을 어떻게 갚아나갈 것인가 혹은 이제 어디로 갈아타기를 할 것이냐를 고민하는 것이 덜 괴롭다. 남들보다 뒤늦고 손해를 보면서 내린 결정이었더라도 나다운 선택을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주택매수를 하고 나서 나는 이 세상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에 대해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부동산 시장에 참여해야만 알게 되는 것들을 알게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집은 모두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는데, 부동산 시장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첫번째 부동산 매수가 실패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첫번째 부동산을 매수했기 때문에 알게 된 것들이 있기 때문에 두번째 부동산 거래를 하게 된다면 첫번째 부동산 매수보다는 훨씬 더 좋은 거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족한 점이 많았던 첫번째 부동산 구매의 아쉬움을 두번째 부동산 거래로 해소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생애 최초의 주택 구매를 바보같이 치뤄버렸지만, 주택구매를 하기 전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가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한, 나는 아마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주택을 구입한 후 지난 4년간 내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해왔다. 무작정 퇴사하고 싶었을 때, 가까스로 정신줄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내 주택담보대출을 책임져야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두달간 원리금을 내지 않으면 주택담보대출을 한 집이 경매로 넘어가기 때문에 나는 집을 지키기 위해 퇴사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나를 몇번이고 버티게 해주고 힘을 내게 만들어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망한 주택구매 때문인데, 그 주택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 선택에 책임을 지는 태도야말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어른스러운 태도라고 생각한다.
주택을 구매하기 망설이는 사람들의 고민 속에는 '주택을 매수했다가 주택값이 떨어지면 어떻하나.'라는 고민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로 일반화할 수도 없을 것이고, 지금까지 인생 살면서 했던 최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전혀 자랑스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래도 영혼까지 갖다주고 담보잡혀 산 주택의 가격이 내가 산 가격보다 한참 하락해도 생각보다는 괜찮다. 어떻게든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대출까지 끌어다 매수한 주택의 가격이 떨어져서 인생이 망한 것 같다가도 어떤 순간에는 이 망한 주택구매가 또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준다.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하면서 경제활동을 계속 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35년짜리 주택담보대출을 꼭 전액상환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 31년 남았다.
부동산 구매를 해도 망하고 안해도 망한다는 극단적인 말을 동시에 듣는 시대를 살면서, 내가 한 선택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마음으로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열심히 갚고 있다. 살면서 마주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나와 같은 상황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해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내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도달하기를 바라면서 구매한 주택의 집값이 폭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폭락 전의 가격으로 열심히 주택담보대출을 갚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여기도 사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