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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사정이 있어서요

어떤 배려

by 서윤재

기차를 타고 장거리를 이동해야 할 일이 있었다. 기차는 갑작스레 20분이 지연되었고, 여름인데도 해가 저물고 있었다. 하루종일 휴대폰을 충전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고, 가져간 휴대폰 충전기가 말썽이었다. 접촉상태가 안좋은지 충전이 잘 되지 않았다. 하루종일 휴대폰 배터리가 몇프로 남아있는지 신경을 쓰던 하루였다. 몇년 째, 지갑을 들고 다니지 않고 휴대폰만 들고 다니며 휴대폰을 지갑 대신 사용해온 터라, 비상용 현금이나 카드도 없다. 휴대폰이 꺼지면 휴대폰을 다시 충전하기 전까지는 오고 가도 못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휴대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해서 불안했다. 기차역에는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 기차는 계속 지연되고 있었다. 휴대폰이 언제 꺼질지 몰라 불안해하면서 내가 탈 기차에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는지 찾아보니 다행히 내 자리에는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가 있었다. 기차만 잘 타면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을 것이었다.



기차를 타고 좌석을 찾는데, 누가 앉아있다. 빨리 앉아 휴대폰을 충전하고 싶었는데, 누가 앉아있어서 당황했다. 내 자리에는 아기엄마와 아기, 그리고 친정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있었는데, 아기가 있으니 나보고 자리자리인 세칸 뒤로 가라고 했다. 그 기차역에서는 기차에 탑승하는 사람이 많았고, 기차 내부는 혼잡했다. 나는 당황했다. 동의를 구하지 않고 내 자리에 미리 앉아있는 것도 매너가 없었는데, 내가 내 자리라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아기가 있으니 뒤로 가라고 하는 것도 기분이 나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가 있으니 혼자 탄 승객으로써 되도록 내가 배려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 뒤로 세칸정도 이동해서 원래 아기엄마의 자리로 가니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가 없다. 자리가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어떤 자리든 콘센트가 있길 바랬다. 휴대폰 배터리는 2% 남아있었다. 불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가 있으니 혼자 탄 승객인 내가 양보를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장거리 이동에서 휴대폰이 꺼질 경우 그날 밤 내가 너무 곤란해질 것이었다.



나는 휴대폰으로 도착지의 상황을 파악해야했다. 연착에 대해 연락을 해야 했고, 장마철이라서 혹시라도 비가 온다면 일기예보를 찾아봐야했다. 도착지에서의 버스가 언제 오는지 교통편을 찾아야 했고, 기차 안에서의 몇시간동안 여러가지 휴대폰을 쓸 일이 있었다. 아기엄마는 나에게 콘센트가 없는 자리로 가라고 했는데, 나는 휴대폰 충전을 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곤란해질 것 같아서 '휴대폰 배터리가 없어서 휴대폰 충전을 꼭 해야 하는데, 가라고 한 자리에는 콘센트가 없어서 충전을 할 수가 없으니 자리를 바꿔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아기엄마는 아기와 친정엄마를 두고 일어나긴 했는데, 아기가 엄마와 떨어져서 울 수도 있다고 나에게 말했다. 난 휴대폰 충전을 하지 않으면 그날 밤 기차에서 내린 후 매우 곤란해질 터였고, 기차 이동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었다. 내가 원래 예매한 자리에 앉겠다고 하고 앉아 급하게 충전기에 휴대폰을 연결하며 앉아있는데, 이번에는 아기를 안고있는 친정엄마가 '정말 너무 하네요, 아기가 있는데.'라고 하며 한마디한다. 화가 났다.



너무 화가 나서 '원래 제 자리 양보 안했다고 비난하시면 안되죠.' 라고 나도 한마디했고, 아기엄마와 친정엄마의 원망스러운 눈길을 받았다. 내 자리 내가 앉는 것인데, 내가 왜 원망의 눈초리를 받아야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자리에 결국 앉게 되었으니 더 이상 아무말 하지 않기로 하고 원망의 눈초리를 그냥 받아내기로 했다. 불쾌했다. 왜 혼자 탄 승객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혼자 탄 승객은 여러명이 탄 승객의 의도대로 움직여줘야 하는 것일까. 피해의식이 들면서 화가 났다. 원래의 자기 자리로 간 아기엄마는 옆자리에 혼자 탄 중년여성 승객에게 저 사람이 자리를 안바꿔주는데 아기가 있어서 꼭 옆에 붙어앉아야 한다며 사정했고, 결국 혼자 탄 중년여성을 내 옆으로 보냈다. 혼자 탄 승객은 자리를 바꿔줘야한다는 인식이라도 있는지 뭔가 억울했고, 결국 자리를 바꾼 중년여성께는 죄송한 마음까지 들었다.



아기엄마의 태도는 굉장히 무례했다. 친정엄마도 무례했다. 아기를 내세워 뒤로 가라고 했는데, 그 과정을 당연히 여기는 것에 불쾌했다. 자리를 아예 떨어뜨려서 예매 해놓고 먼저 예매한 두명의 승객에게 자리를 바꿔달라며 불편을 초래한 무례한 아기엄마나 친정엄마에게는 좋은 어른이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에게는 좋은 어른이고 싶었다. 아기를 배려해야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무례한 태도에 화가 나서 결국 내 자리에 앉고 나서도 결국 목적지 까지 가는 동안 분이 풀리지 않았다. 내가 그 상황에서 한마디 더 못한 것이 너무 한이 되었다. 동의도 구하지 않고 자리를 점유해서는 뒤로 가라고 말만 하면 되냐, 아기가 있으니 배려하는 것이 당연하냐, 나도 사정이 있어서 꼭 충전을 해야된다고 말해야되지 않았느냐, 왜 내 사정은 무시하고 본인 사정만 강요하냐, 나도 아이한테 배려해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인데 왜 둘이서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듯이 죄책감을 들게 해서 행동을 강요하냐,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이 떠올라서 그 후로도 이틀정도 더 마음이 소란스러웠다. 소심한 성격이라 한마디 더 쏘아주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되었다.



왜 혼자 탄 승객은 일행이 있는 승객의 필요에 의해 배려를 강요당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배려는 대부분 혼자 탄 승객이 하게 되고, 보통은 배려를 넘어 희생의 영역으로 가고는 한다. 혼자 탄 승객도 타인에 의해 이동시간을 방해받지 않고 싶고, 미리 고민해서 지정한 좌석에 그대로 앉고 싶다. 비행기를 탈 때도, 미리 고민해서 창가쪽, 혹은 복도쪽의 자리를 한참전에 미리 지정해놓고는 하는데, 일행이 있다고 해서 좌석을 바꿔달라고 하는 경우가 정말 난감하고 싫다. 여행을 떠날 때, 간혹 그런 배려가 나에게 돌아와 예상치 못한 좋은 이벤트나 감사해하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내 불편함과 희생을 감수하면서 배려를 했는데, 그 배려가 헛되어 지는 순간에는 기분이 많이 상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과거 이동수단에서 타인과 엮였을 때의 부정적인 경험이 한꺼번에 떠올라서, 다시는 배려한답시고 양보했다가 오히려 내가 너무 불편해지고 힘들어지는 상황을 겪지 말자고 다짐하고는 했다.



일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데, 과거에도 나는 이동중에 만난 아기엄마와 아기 때문에 불편했던 적이 있다. 과거에 국내선 비행기를 탔을 때였다. 더운 여름이었는데, 내 옆에는 아기를 안고 있는 아기엄마가 있었다. 아기엄마는 통화를 하면서 비행기 출발 전 아기가 있으니 옆자리 비어있는 좌석으로 달라고 요청했었는데, 자리가 만석이라 그럴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좌석이 만석이라 자신이 두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며 통화대상에게 짜증을 냈다. 아기가 있으면 처음부터 두 좌석을 예약했으면 되는데, 한좌석만 예약해놓고 아기가 있으니 옆자리가 비어있는 자리로 달라고 했다는 것이 의아해서 그 통화내용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애초부터 두 자리 예매를 했어야지, 왜 한자리만 예약해놓고 만석이라고, 옆자리가 비어있지 않다고 짜증내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들의 옆자리에는 나도 돈주고 비행기 표 예매를 했던 내가 있었다.



아기엄마는 체격이 컸는데, 비행기의 이코노미석에 아기를 안고 앉으니 자리가 꽤나 불편할 것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아기를 안고 있는데, 아기 몸의 반은 내 몸 위에 걸쳐져있다. 아기엄마의 체격도 큰데, 아기를 안으니 내 자리를 침범하여 아기의 체중이 나를 누르고 있었다. 불쾌했다. 아기는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생면부지의 아기 때문에 비행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때도 혼자였는데, 이동수단 안에서는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았다. 더운 여름, 아기의 체중이 나를 계속 누르는데, 그래도 아기니까 내가 뭐라고 하면 안되겠다 싶은 마음이 아기 체중이 나를 누르는 불편함을 그냥 속으로 참고 있었다. 도착할 때까지 아기의 체중은 나를 계속 누르는 것이 불쾌했지만, 그걸 지적하면 내가 굉장히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아서 그냥 참았다. '아기 좀 제대로 안으세요. 지금 제 자리에 아기가 걸쳐져있어서 불편하잖아요. 아기가 제 몸을 누른다구요.'라는 말을 몇번이나 할까 했었지만, 결국 그 순간에 하지 못하고, 그 일화를 몇년 후까지도 곱씹으면서 결국 이렇게 글로 남기고 있다. 이번 기차에서의 경험처럼 살다보면 아기를 데리고 있는 보호자를 배려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치고는 하는데, 이번에도 기차에서의 경험 덕분에 그런 순간에 내 머릿속에 스칠 아기를 데리고 있는 보호자에 대한 경험이 하나 늘어버렸다.



비행기에서는 내 좌석을 침범해있는 아기 때문에 불편하긴 했는데, 그래도 그 순간 '아기 좀 제대로 안으세요. 제 자리를 침범하잖아요.' 라고 말하지 못했던 것은 아기엄마가 조금은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 아기를 제대로 안지 못하고 옆자리 승객을 불편하게 하는 그 아기 엄마를 원망할 자유와 권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 아기엄마는 자기도 너무 덥고 힘드니까 아기를 제대로 안지 못해서 아기가 내 자리까지 넘어와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옆좌석의 아기엄마에게 불쾌감을 표현하거나 뾰족하게 한마디하면 그만인데, 아기엄마는 힘들어서 아기를 컨트롤하지 못한 상황이라서 아기엄마에게 불쾌감을 드러내면 아기엄마의 마음은 내가 불쾌감을 표현하는 것보다 더 불편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 말을 꺼내면 아기 엄마는 다른 핑계를 대지 못하고 오로지 내 불쾌감을 받아내야 할 것이었다.



사실 모르겠다. 그 때의 불편함을 몇년동안 이렇게 곱씹을 것이면 불편함을 느끼던 그 순간에 아기 좀 제대로 안으라고 한마디라도 해볼걸. 소심한 나는 이처럼 제때 불편함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몇년을 이렇게 곱씹으면서 하지 못한 말에 대해 후회하고는 한다. 근데 말했어도 마음이 편하진 않았을 것 같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옆자리의 그 아기엄마 때문에 짜증이 나는데, 비행 시간 내내 자기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손바닥만한 부채로 아기를 향해 하염없이 부채질을 하던 그 아기엄마의 땀방울에서는 나를 불쾌하고자 할 의도가 조금도 없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번 기차에서의 경험과는 조금 달랐는데, 두 경험 모두 불쾌한 경험이긴 했지만, 비행기에서는 옆좌석의 아기엄마에게 뾰족한 말 한마디를 쏘아붙이지 않은 것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불편함을 말로 드러내든, 참고 속으로 삭히든 결국 불편한 상황이 되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번 기차에서는 아기를 데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희생에 기반한 배려를 강요하는 그들의 무례한 언행에 무조건 따르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가 처음부터 예약한 좌석에 앉았을 뿐인데, 자리를 바꿔주지 않는다고 나를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고 자리를 바꿔주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아기엄마와 친정엄마가 너무 무례해서 화가 났다. 그렇다고 해서 자리를 바꿔주지 않고 그 자리에 결국 앉아서 왔다고 해서 기분이 나아지지도 않았다. 기차에 내리고 나서도, 몇일동안은 그 때의 상황이 계속 떠올라 불쾌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아기를 데리고 있었으니까 아기엄마가 아기를 챙기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나한테 무례하게 말했나보다 라며 그들의 사정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말처럼 내가 너무 했을까. 아기가 있으니 내가 자리를 양보할 걸 그랬나. 휴대폰 충전은 어떻게든 나중에 하기로 하고 내가 배려를 했어야 했나. 그 상황이 계속 마음속에 남아 불편하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아기엄마와 그 친정엄마에게 말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나한테 하는 무례함에 대해 아무 불쾌함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나에게 상처가 되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순간에 소심해서 어떤 불쾌감이나 불리함을 많이 참아왔다. 그리고 그 순간에 제대로 내 감정에 대해, 불합리함에 대해 말하지 못한 경우에는 아주 오랫동안 그 순간을 복기하면서 '그때 그렇게 말했어야지.' 하면서 스스로를 오랫동안 괴롭혀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소심하게 속으로 삭이지 않고 말로 꺼내봤다. 비록 하고 싶은 말 중에서도 일부만 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불편한 상황에서 내 목소리를 꺼내는 것이 나한테는 어려운 일이어서, 이번에 내 의견을 전달한 것이 나에게는 큰 의미였다. 과거의 훨씬 소심한 나였다면 결코 하지 못했을 일이다. 물론 말을 하긴 했어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한참 전부터 예매한 자리에 내가 앉아서 가겠다는 이 당연한 권리를 불편을 제기해서 결국 얻어낸 것인데, 마음이 후련하지도 않고 한참이 지나도록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곱씹다가 결국 글로 풀어놓고 있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기차나 비행기같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것이고, 셀 수없이 타인과 부딪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좋은 경험도 많이 하겠지만, 불쾌한 순간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에 기차를 탔을 때의 경험이 나에게 불쾌한 경험인데, 당연스럽게도 이번 일과 같은 경험은 언젠가 또 다시 겪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불편함이나 불쾌함을 무조건 삼키기보다, 차분하게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배워나가야 할 것 같다. 타인으로 인해 생긴 부정적인 감정에 오래도록 갇혀 곱씹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를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무례를 휘두르는 타인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런 순간들을 현명하게 다루는 방법을 배워나가야 되겠다.



기차에서 아기엄마와 자리를 바꿔주지 않았다는 것이 잘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내 의견을 전달하지 못하고 혼자 오래도록 끙끙 앓아왔기 때문에, 나의 불편함을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 이런 상황에서 소심하게 아무 말 못하고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삼키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잘했다고 할 것이 분명해서 스스로 성장했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하지만, 아기엄마한테 너무 했나 싶은 마음이 계속 나를 따라다녀서 여전히 마음에 불편함이 남아있다. 애초에 아기를 동행하는 상황이었다면 예매에 주의를 기울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기를 내세워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를 끼치며 자신들의 의도대로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괜시리 찝찝해지는 그런 상황은 몇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아서 사실은 혼자 이동할 때,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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