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보이스피싱
첫 회사에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들 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적 격차를 몸소 깨닫게 되어 돈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했었다. 대학생 때는 용돈의 차이였다면, 사회생활에서는 자산의 차이였다. 대학생 때까지도 잘 느끼지 못했던 경제적인 격차는 매일 매 순간 뼈저리게 느껴졌다. 사는 곳에서,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서, 취미에서, 취향에서 격차가 느껴졌고, 나는 그 격차를 뛰어넘지 못할 것만 같아서 불안했다. 사회에서의 내 계급이 얼마나 낮은지 알게 된 시기였다. 그래서 나는 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니 조급해졌다. 사회초년생이라 돈을 벌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돈을 모으지 못한 것이 당연한데도, 그 당시에 내가 돈이 없다는 것이 너무 불안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때 집에 돈이 필요했다. 부모님도 돈을 구하다 구하다 안되서, 너무 급해서, 결국 나에게 돈을 잠시 빌려줄 수 있냐고 했었다. 부모님이 이자와 원금을 모두 갚을테니, 내 명의로 3천만원만 빌려달라고 했다. 이 대출이 내 인생 첫 대출이었는데, 사회초년생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돈에 대한 경제개념이 쌓이고 있을 때, 나에게 대출을 해달라는 것은 청천벽력같은 말이었다. 대출을 받으면 큰일난다는 것 또한 부모님의 교육 때문이었는데, 대출을 받으면 인생 끝나는 줄 알았다. 대출이 3천만원이나 생겨버리면, 이것이 큰 흠이 되어 결혼도 못하고, 앞으로 3천만원의 빚을 갚으며 살아가야 할 것만 같았다.
회사 근처 은행을 몇군데 가서 대출을 알아보는데, 사회생활 경력이 짧아서인지 대출이 불가하거나 대출을 해줘도 대출 금리가 6%가 넘었다. 당시 연봉이 3천만원이 넘었는데, 근로계약서를 들고가도 천만원 대출이 힘들다고 했다. 높은 대출 문턱에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집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에 가서 대출상담을 받는 것은 20대의 나에게는 창피하고 초라해지는 일이었다. 돈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여 돈 앞에 너무 초라해지던 그 때, 나는 서울지검의 검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사람은 내 명의로 수원역 앞 러시앤캐쉬에서 3천만원의 대출이 발생된 내역이 발견되었는데, 이 거래가 범죄조직에서 명의를 도용해서 대출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그래서 이 대출을 내가 한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연락했다고 했다.
어디서 걸려들었을까. 한번도 가보지 않은 수원역이라는 것에 걸렸을까, 러시앤캐쉬에서 돈 빌리면 큰일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봤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고민이었던 3천만원이라는 금액 때문이었을까. 나는 이 전화에 크게 흔들려서 범죄조직에서 내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러시앤캐쉬에서 내 명의로 3천만원 대출을 했다는 것을 철썩같이 믿었다. 당시의 내 모든 고민이 들어맞았다. 부모님께 드릴 돈을 대출을 받아서 마련하기 위해 돈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시점에 내가 하지도 않은 3천만원의 대출이 있다는 사실에 심장이 철렁했다. 부모님 대출을 받아야 하는 것도 힘들고, 대출을 받아야 하는 내 현실이 너무 비참한데, 내 앞으로 내가 받지도 않은 대출이 생겨버리면 이건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서울지검의 검사는 나에게 휴대폰 화면을 봐야 하니 이어폰이 있냐고 물으며,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통화를 하라고 안내했다. 그리고 전화를 절대로 끊지 말라고 했다. 전화로 웹사이트 주소를 알려주며 여기 들어가서 어떤 입력란에 내 주민등록번호를 넣고 조회하면 무슨 문서가 조회될 것이라며, 거기에 내 주민등록번호와 내 이름이 쓰여있을 것이니 확인해보라고 했다. 불러주는 웹사이트는 경찰청이었던가, 검찰청이었던가 하는 사이트였고, 어떤 입력란에 내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니 어떤 문서가 조회되었다. 그 문서에는 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정확하게 적혀있었다. 문서 맨 아래에는 경찰청장 이름과 도장까지 찍혀있었다. 나는 큰 두려움에 휩싸였다.
서울지검의 검사는 범죄조직에서 내 명의로 추가 대출을 시도하려고 한 것 같다며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나에게 연락을 한 것이라 했고, 만약 이 대출이 내가 받은 것이 아니라면 이 거래를 막아야 하기 때문에 내 전체 계좌를 동결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에게 다른 계좌가 무엇무엇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당시에 돈모으기에 혈안이 되어있어서 적금통장 8개를 만들어 돈을 미친듯이 저축하던 시절이었는데, 다 합치면 한 500만원 정도 있었던 것 같다. 저축은행과 시중은행에 적금통장을 5개, 3개 이렇게 나눠들었었는데, 내 명의로 대출을 추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금융거래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적금을 해지하여 통장 하나에 모든 돈을 모으라고 했다. 그리고 보호를 받는 금감원 계좌로 보내야 된다고 했다. 나는 내 명의로 생기는 추가대출이 두려웠고, 그때부터는 은행 지점을 돌아다니며 은행 창구에서 내가 갖고 있던 적금을 해지했다. 그 당시에 가입했던 고금리의 적금은 인터넷으로 해지가 되지 않아서 은행의 창구까지 가서 해지를 했다.
창구에 계신 은행직원분은 '고금리 적금인데 왜 해지하세요?' 라고 친절하게 물어봐주셨는데, 휴대폰 속의 서울지검 검사는 은행 지점의 직원도 모두 한통속이니 서울지검 검사와 통화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 긴장되었지만, 적금을 해지하고, 은행도 한군데 더 들러서 모두 해지하고 나니 1시 30분이 넘어있었다. 당시 내가 다녔던 회사는 조직문화가 경직되고 보수적인 곳이라서 오후 1시에는 무조건 자리에 앉아 업무를 하고 있어야 되는 시간이었는데, 나는 그날 입사 후 처음으로 1시에 회사 밖에 있었다. 전화를 끊으면 안된다는 말에 통화를 두시간 넘게 했었다. 나는 그날 전화 통화를 하면서, 전화 통화를 끊지 않은 채 이 은행 저 은행 다니며 점심도 먹지 못했는데, 서울지검의 검사님은 배가 고플테니 카페에서 샌드위치 같은 것을 먹고 영수증을 챙긴 후 제출하면 수사협조의 명목으로 그 돈을 준다고 했다. 나는 당시에 돈을 아끼기 위해 카페에서 샌드위치 같은 것을 절대 사먹지 않았었는데, 서울지검 검사님 덕분에 평소에 먹고 싶었던 샌드위치를 카페에서 시켜먹었다. 나중에 영수증을 제출해서 꼭 돈을 돌려받아야지 생각했었다. 이제 적금을 모두 해지했으니 돈을 한군데로 모은 후 금감원에서 알려주는 계좌에 이체하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회사에 돌아오지 않자 회사 동기가 카톡을 보냈다. 내가 지금 어디냐고 물어서 지금 서울지검에서 전화가 와서 통화중이고 회사 근처 카페에 있다고 했다. 동기는 서울지검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통화하는 전화번호를 알려주니 자기가 구글에 검색해봤는데, 그 번호가 보이스피싱 번호로 뜬다고 알려주었다. 그제서야 나도 서울지검 검사와 통화를 하면서 구글에 전화가 온 번호를 검색해보니 보이스피싱 번호라고 검색되었다. 나는 그 순간 이 상황이 보이스피싱임을 알게 되었고, 더 말하지 않고 전화를 바로 끊었다.
근처 파출소에 가서 내가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는데, 보이스 피싱범이 알려준 웹사이트가 진짜인지를 파출소에 계신 경찰분께 보여드렸다. 그런데 경찰분은 내가 웹사이트의 문서를 보여드리자마자 아래에 있는 경찰청장 이름을 보더니 '이 양반은 경찰청장이 아니다.' 라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나는 결국 송금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내 돈을 지켰고, 이처럼 피해가 없는 경우에는 보이스피싱 신고와 피해접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애초에 그런 보이스피싱 전화는 범인을 잡기가 희박하다고 한다. 그 동안 모은 전재산을 날릴 뻔 했구나 해서 너무 허탈하고 속상했다. 게다가 파출소에서 여기 옆에 있는 방송국의 똑똑한 PD양반도 파출소에 왔었다고, 그 양반은 5천만원을 이미 송금한 후였다는 말도 전해주셨다. 보이스 피싱에 나만 당한 것은 아니구나 생각이 들며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 했지만, 역시 온몸에 힘이 쫙 빠졌다.
심장을 쓸어내리며,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회사에 돌아가 밀린 업무를 처리했다. 오후에 여유가 생기자 적금을 해지한 저축은행에 전화해서 사실 제가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는데, 그 은행 직원이 한통속이라는 말을 듣고 적금을 해지했다고, 은행 직원까지 들먹거려서 알려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 은행 지점장님은 보이스피싱때문에 적금을 해지한 것이면, 당일 적금 해지된 것을 해지 취소 처리 해주시겠다고 했다. 보이스피싱범이 직원도 한통속이라고 한 말도 있었고, 누가 봐도 돈 없는 사회초년생의 전재산이 분명한 어설픈 액수의 적금통장을 벌벌 떨며 해지했으니 사회생활을 오래 하신 선배님으로써 도와주고 싶으셨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말 감사했다. 그 때 지점장님의 배려가 감사했다.
회사에서 바쁜 업무를 처리하고, 야근도 하고 집에 오니 온몸에 힘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회사 일이 바빠서 곰곰이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나는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고 적금통장 8개를 해지했던 것이다. 점심 시간에 보이스피싱범이랑 전화통화를 2시간도 넘게 하면서 보이스피싱범이 시키는 대로 은행 지점을 돌아다니며 적금을 해지했다. 다행히 회사 동기의 카톡으로 인해 보이스피싱이라는 의심을 하게 되어 돈을 잃지는 않았지만, 정말 돈을 송금하려고 마음먹고 적금을 해지했던 것이라서 동기가 카톡으로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돈을 보내버렸을 지도 모르겠다. 밤 늦게 집에 와서 자리에 누우니 그제서야 긴장이 풀리고 눈물이 났다. 내가 정말 오늘 무슨 일을 겪은 것일까. 돈을 잃지 않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너무 속상했다. 속상한데, 누구한테 털어놓을 수도 없어서 그냥 누워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면서 잠들었다.
다음날 오후 똑같은 번호로 보이스피싱범한테 또 다시 전화가 왔다. 받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상대방도 한참 있다 그냥 끊었다. 내가 너무 진지하게 시키는대로 다 해서 나한테 사기를 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보다. 아무 피해가 없었으니까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무시하려고 했다. 돈을 잃지 않았으니까 없었던 일처럼 넘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속상했다. 나는 내 돈이 너무 소중해서 보이스피싱을 당할리가 없다고 믿고 살았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고 홀려서, 2시간 동안 전화기를 붙잡다가 내 돈을 전부 송금하려는 일은 나에게 결코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송금할 뻔 했기 때문에 내가 너무 바보같이 느껴졌다. 미수에 그쳤으니 돈을 잃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하는 피해의식이 들고 내가 이렇게 바보같은 사람이었나 싶어서 속상했다.
그 뒤로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 때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 심장을 죄는 것 같다. 어떻게 전화만 받고 전재산을 다 넘기고, 직접 송금할 수가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직접 당해보니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때의 경험으로 나는 두번 다시 보이스피싱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또 모른다. 그래서 가끔 뉴스에서 보이스피싱의 대상임을 알아챈 은행원의 기지로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았다는 사연을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숨을 참고 보게 된다. 보이스피싱으로 인해 소중한 돈을 송금해버렸다는 사연을 듣게 되면 너무 안타깝다.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고 돈을 송금하려했을 때, 나를 가장 괴롭히던 감정은 속은 내가 너무 바보같다는 자책이었다.
보이스피싱범은 그냥 아무나 걸려라 하면서 전화를 돌린 것이었는데, 그 때 당시에 나에게 가장 약한 부분이 돈이었기 때문에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을 때 쉽게 걸려들었던 것 같다. 보이스피싱범이 들어가보라고 주소를 알려준 웹사이트도, 거기서 내 주민번호를 입력했을 때 보여진 공문서도 조잡스러웠는데, 내가 가장 약한 부분이 돈이었으니까, 가장 두렵고 불안한 부분이 돈이었으니까, 보이스피싱이라는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버린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속지 않았을텐데, 돈에 약한 나라서 속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돈을 잃지 않았으니까 다행이긴 하지만, 이건 도저히 다행이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고 돈을 송금하려고 했던 이유는 돈 때문에 내 삶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대부업체의 대출을 내가 갚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평소라면 끊어버렸을 보이스피싱 전화에 귀를 기울였다.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면 진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보이스피싱은 속은 사람이 잘못한게 아니라 속인 사람이 잘못한 것이 분명한데도, 나는 여전히 속은 내가 잘못한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