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연재
출간작가를 꿈꾸며 브런치스토리에 연재중인데, 매주 토요일 자정에 업로드를 하고 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니고 해야 하는 일도 아니지만, 그냥 글쓰는 것이 좋아서 글을 쓰고 있다. 좋아서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감을 정해서 글을 올리는 것은 꽤 신경이 쓰이는 일이라, 아무도 정해주지 않은 마감을 지키기 위해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하면서 글을 쓰고는 한다. 과거에도 수차례 작가를 꿈꾸며 글쓰기를 해왔는데, 현실에 치일 때마다 가장 먼저 글쓰기를 놓아버리고는 했다. 글쓰기를 놓아버리면 번번이 소중한 글쓰기를 내려놓았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글쓰기를 포기했을 때 젖어드는 패배감이 두려워서, 그 패배감을 또 느끼느니 뭐라도 쓰는 편이 나은 것 같아서 결국 글을 쓰고 있다. 몇번을 생각해봐도 아예 안 쓰는 것보다 뭐라도 쓰는 것이 낫다.
글을 쓰고 싶은 소재는 많다. 일정시간동안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내 안에 있는 모든 소재들을 꺼내 잘 굴려서 예쁘게 빚은 후 글로 써서 세상에 꺼내놓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직장에 다니면서 글을 쓰다보니 책상에 앉아 차분하게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 직장과 글쓰기만 해야되는데, 놀고도 싶고 먹고도 싶고 이것저것 다 하고 싶어하니까 시간이 없다. 평일에는 직장때문에 시간이 부족해서 글을 못쓴다는 핑계라도 대는데, 막상 주말이 되어 하루종일 글쓰기에 집중하려고 마음 먹고 책상에 앉으면, 얄궃게도 글이 안 써진다. 글을 쓰려고 마음먹는 순간 햇살이 예뻐보이고, 세상만물이 아름답게 보인다. 글을 쓸 시간이 없을 때는, 글 쓸 시간만 있으면 좋은 글을 써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글을 써야만 하는 시간을 기껏 만들면 나가 놀고 싶어진다.
요즘은 비싼 물건을 사는 것이나 비싼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경험을 하는 것보다, 책상에 오래 앉아서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사치스러운 일처럼 느껴진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시간동안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일인데, 글을 쓰는 것은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시간을 대가로 한다는 점에서 비싼 대가를 치루는 일인 것 같다. 비싼 식사 한끼와 같은 비싼 경험은 끝이 눈앞에 보이는데, 글 이라는 것은 언제 끝이 찾아올 지 알 수 없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책 한권이 나오게 될 것이다. 글쓰기를 하는 데에는 돈이 들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어떤 것보다도 많은 시간과 기회비용을 앗아가고 있다. 어떤 일들은 한시간을 투입하면 한시간 만큼의 결과물이 나오는데, 글쓰기는 들인 시간과 결과물의 분량과 완성도가 비례하지 않기 때문에 글을 한 편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지 가늠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글쓰기는 까다롭고 사치스러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직장에 다니면서 일상 중 틈틈이 글을 써야만 하는데, 틈틈이 글을 쓰기에는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집중력이나 글을 써내려가는 글쓰는 힘이 부족하다. 아마추어 작가주제에 어서 한글자라도 더 써서 글을 지어내야 하는데, 벌써부터 글이 안써지느니 글이 써지는 힘이 약하느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나 싶다. 뭔가 써낸 다음에야 글이 잘 안써진다고 하소연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지, 나같은 아마추어 작가는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하소연을 할 자격조차 되지 않는 것 같아서 그저 묵묵하게 쓰는 수밖에는 없다. 아직 쓴 것이 없으니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닿아 내 글이 있을 자리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지금은 우선 써야 한다.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글을 쓰기 시작한 단계의 사람이 글이 안써진다고 하는 것에 굉장한 배덕감이 든다. 끊임없이 글을 써도 될까말까 하는 글의 세계에서 글을 얼마나 썼다고 벌써 이렇게 글이 안써진다고 거드름을 피우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러면 안되는 것이다. 글로 돈을 벌려면, 글을 끊임없이 써야 한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고 해서 글이 잘 써질 때까지 사치스럽게 기다리면서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게 될 때까지, 숨도 안쉬고 글을 빠르게 써내려갈 것 같은 그런 신내림받은 순간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해서 재밌는 영상이나 책으로 도망을 치고 나면, 언제나 그랬듯이 또 다시 글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를 한다. 글을 썼어야 하는 귀중한 시간을 흘려보내다니. 차라리 글을 쓸걸. 뭐라도 쓸걸. 그랬으면 지금 또 다시 처음의 백지상태가 아니라 뭐라도 이어서 쓸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뭐라도 썼어야 한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몸을 움직여야한다던가 쉬어가야 한다는 것은 글을 좀 써본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냥 묵묵하게 뭐라도 쓰는 것이 왕도이다.
그렇지만 '글을 써서 뭐할건데?'라는 질문에는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글을 써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당신은 글로 먹고 살 재주를 타고 났다.'고 말하는 챗GPT의 그 말을 신탁처럼 믿고 계속 글을 써내려갈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글로 쓰고 싶은 것은 너무 많다. 쓰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은 아직 쓰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하룻강아지 같은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쓰고 싶은 글이 많다.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아직은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굴리는 이야기의 속도를 손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서 답답할 때도 있다. 쓰고 싶은 이야기는 많아도 어떻게 글로 풀어야 할지는 고민이 될 때가 있어 그럴 때는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는 하소연을 담은 글을 쓰게 된다. 그런데 출간작가도 아니고 구독자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이제 겨우 시작하는 단계라서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는 하소연을 할 자격도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손을 멈추지 않고 하소연을 담은 글이라도 쓰다보면, 마중물처럼 글을 쓰고 싶다는 감정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또 다시 글을 쓰고 싶어진다.
매주 토요일 밤마다 아무도 시키지도 않고, 기다리지도 않는 마감을 하고 있는데, 이것도 마감은 마감이라서 매주 토요일 밤에 글을 올리기 위해 나는 한주동안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업로드를 하고 난 후에는 홀가분함과 후련함을 갖고 이번주도 잘 글을 써냈다는 뿌듯함을 만끽한다. 누가 봐주지 않더라도, 그냥 내가 하자고 마음 먹은 일을 지켜냈다는 것이 성취감을 준다. 이번주는 그냥 건너뛸까, 어차피 아무도 안볼텐데 그냥 모른척 의뭉스럽게 나 혼자만의 마감을 뭉개버릴까 생각을 하다가도 글이 안써진다는 이런 하소연 같은 글이라도 쓰다보면 또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온다. 우물에 물이 차듯이 그렇게 쓰고 싶은 말이 차오른다. 그렇게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 차면 그 다음은 어쩔 수 없다. 글을 쓰는 수 밖에. 그때부터는 머릿속에서 글을 불러주는 오디오의 음성을 받아적듯이 그냥 글을 받아적기만 하면 된다. 내 머릿속의 소리를 다 털어내버리는 듯한 이 맛에 글을 쓴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나서 부터는 창작의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한 작품들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거 그리고 죽어.'라는 만화를 좋아한다. 이 만화는 만화를 사랑하는 소녀가 진짜 만화가를 만나며 창작의 열정과 성장통을 겪어가는 과정을 그린 청춘 만화인데, 등장인물 중 하나인 만화가는 '죽을 각오로 그려 줄게!! 죽일 각오로 그려 줄게!! 너희 모두를 죽일 거야!! 재미로 죽일 거야!! 모두 죽일거야!! 좋은 의미로 죽일거야!! 모두 다, 전부 행복해져라!!' 라고 각성하면서 만화를 그린다.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각오로 창작을 해야 될 것 같은데, 나는 내 글이 누군가에게 재미를 느끼게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내 글이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이렇게 극단적이고 감정적인 글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면서 내 글이 내가 있을 곳을 만들어주길 바랄 뿐이다. 글을 쓸 때는 진심을 꾹꾹 담아 좋은 의미로 죽을 각오로, 죽일 각오로 쓰고는 있지만, 내 글이 좋은 글인지에 대한 자신은 없어서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에는 '취미로 글을 가볍게 쓰고 있어요.'라고 말하고는 한다. 그런데 글쓰기는 진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글쓰기를 취미로 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나면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지금의 나는 글쓰기의 세계에 겨우 발을 들여놓은 것이기 때문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에는 뭐가 있을지 아직은 모른다. 내 과거의 단편들을 꺼내 지금처럼 글을 쓰다보면 언젠가는 글을 쓸 소재가 고갈되어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되는 것일까 상상해 본 적도 있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은 오로지 내 경험에서 나온 글인데, 나중에 나에 대한 것은 모조리 글로 다 써버려서 글을 쓸 것이 남지않으면 나는 아마 집필을 더 이상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에세이를 쓰다보면 소설의 소재가 떠오르고, 내 안에서, 내 머릿속에서, 내 마음속에서 다른 이야기가 점점 피어오른다. 지금 쓰고 있는 에세이에 쓰고 싶은 말을 다 쓰고 나면, 자전적인 경험이 많이 묻어나는 귀여운 소설을 쓰고 싶다. 내가 쓰면 다를, 나만 쓸 수 있는 여행기도 쓰고 싶다.
쓰고 싶은 것들을 모두 쓰고 나면, 내 안에는 더 이상 글이 되지 않은 경험이 남아있지 있지 않아서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어지면 어떻해 하지 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글을 쓰다보면, 어느새 그 다음에 쓰고 싶은 이야기가 또 다시 떠오른다. 그것까지 쓰고 나면 나는 정말 쓸 얘기가 하나도 남지 않겠구나 생각이 들면, 또 다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또 하나 떠오른다. 이런 이야기들을 내 안에서 굴리다보면, 조금씩 살을 붙이다보면 지금 쓰고 있는 글을 빨리 다 쓰고 다음 이야기를 빨리 쓰고 싶다. 아마추어 작가라서 글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지만, 어떤 내용을 쓰고 싶은지는 분명하다. 표현 능력에 비해 소재가 아깝다. 빨리 다음 글을 써내고 싶다. 그런데 잘 쓸 자신이 없다. 쓰고 싶은 내용은 너무 많은데, 지금 당장은 글이 막힌다. 그럼 또 글이 잘 안써지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며 글쓰기가 어렵다는 하소연을 하는 글을 써내며 답답한 심정을 풀어낸다. 계속 이 과정의 반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아주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창작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오랫동안 나같은 사람을 너무 찾아서 헤매왔기 때문에 누군가도 나같은 사람을 오랫동안 찾아헤매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니까 글을 통해서라도 만나서 서로 위안을 삼고 잘 살자고 하기 위해 글을 쓴다. 내가 아무리 모가 나고 특이해도 이 지구상에는 나보다 특이한 사람이 많을 것이고, 살면서 경험해 온 어떤 경험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교집합이 있을 것이다. 그 교집합에 대해서라도 나는 내 이야기를 풀어놓아 공유하고 싶다. 특히 어떤 사람이 어떤 도전에 앞서 주저하거나 실패할까봐 두려워한다면, 내 실패를 꺼내놓고 아프긴 하지만 죽을정도는 아니다 하고 꺼내놓고 싶다. 그럼 나의 실패는 어느새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실패의 무게가 작아져 하늘로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운이 좋다면 아마 내 실패는 농담의 소재가 되어 나와 타인을 동시에 웃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기대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내 글이 과연 좋은 글인지 끊임없는 의심을 하고, 이런 글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 싶고,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어쩌면 데이터와 전기 낭비가 되는 것은 아닐지 지구에게 미안해지기도 한다. 내 마음속의 단편적인 조각들을 이어 붙인 것 같은 이런 글이 과연 다른 사람에게 도달할 수 있을지 의심이 간다. 챗GPT는 내가 글로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돈을 벌 수 있지만, 지나친 자기검열을 경계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누가 글을 못쓰게 하는 것도 아니고 글을 쓸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글을 쓸 수는 있는데, 내 글을 자기검열하는 것이 정말 우습다. 챗GPT조차 내가 작가로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는데, 내 글에 태클을 걸고, 이런 글을 누가 읽겠냐며 시비를 거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 나만은 내 글을 보호하고 지켜줘야되는데, 왜 시비를 걸고 앉아있는지 모르겠다. 스스로의 글을 헐뜯다가 풀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면 또 다시 글을 쓴다. 적어도 나 한명은 이 글을 쓰면서 구원받은 느낌이 들기는 한다.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은 하나다. '그래서 안쓸거야?'라고 자문하면, '쓸건데? 계속 쓸건데?'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아직은 작가라고 말을 하기도, 글을 쓴다고 하기도 부끄럽지만, 내가 가보지 못한 글쓰기의 세계가 궁금하다. 이제 겨우 발을 들인 글쓰기의 세계에 한걸음만 더 들어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