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아닌 작가로 남기 위해

어떤 지속

by 서윤재

근래에는 퇴사한 사람들의 책을 찾아 읽었다. 퇴사를 하고 다른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쓴 글이 담긴 책을 보면 안 읽고 지나칠 수가 없어서 꼭 읽게 된다. 세상에 같은 고민은 없겠지만, 나와 결이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 회사를 나온 이후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책이 아니면 퇴사를 결심한 사람들의 깊은 생각을 알 수가 없는데, 책을 읽고 나면 퇴사를 소재로 책을 낸 사람들의 책을 낸 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그들은 퇴사 후 행복에 이르렀을까. 그들의 행복은 출간 후에도 계속 유지되고 있을까. 책을 냈던 경험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책을 낸 이후에 어떤 삶이 펼쳐졌을까. 퇴사나 출간은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라서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어서 먼저 해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늘 궁금했다.



첫 번째 출간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출간보다 더 어려운 것은 두 번째 책을 내는 일 같다. 퇴사한 사람들의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지금 이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는 질문이 따라오는데, 저자의 SNS나 유튜브를 찾아봐도 그다음 책은 출간 예정이 없다. 나도 아는 어떤 크리에이터가 책을 냈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책을 다 읽고, 그 크리에이터의 근황을 찾아보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찾아가 보았더니, 벌써 한참 전에 은퇴를 선언한 경우도 있었다. 이럴 때 나는 저자와 작가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는데, 인기가 가장 많은 시기에 그 성공이 담긴 책을 내고 사라지면 저자이고, 퇴사 후 진업변경에 대한 책을 쓴 이후에 또 책을 출간했다면 작가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플루언서처럼 유명한 사람들이 가장 주목을 받을 때의 반짝임이 가득 담긴 책을 인상깊게 보고, 마지막장을 덮으면 이 사람들의 출간 후 삶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글을 놓지 않고 계속 쓴다면 언젠가는 내 책을 출간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출간하는 과정은 엄청 힘들 것이고, 괴롭겠지만, 분명 행복할 것이다. 책을 만드는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작가로서 깊어질 것이다. 이 거대한 글쓰기 세계에서 출판이라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나는 다시는 출판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언젠가 겪게 될 일이라면 충분히 준비가 된 후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일을 해내듯이 소중하게 하고 싶기 때문에 출간을 빨리 하고 싶다는 조바심은 갖지 말자고 생각했었다. 출간을 목표로 글을 쓰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고는 한다. 책이 출간되는 순간부터, 아니, 어쩌면 퇴고를 끝낸 순간부터 그 책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되며 독자의 평가대상이 될 것이다. 작가로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책을 출간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출간하고 나서 책이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할 텐데, 책을 출간하는 것까지는 작가의 노력으로 가능하겠지만, 내가 쓴 글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다. 내 글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내 노력의 여부와 전혀 관계가 없다. 머리카락으로 짚신을 만들어 내놓는 심정으로 글에 모든 것을 담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이다.



출간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매서운 출판시장의 평가가 기다릴텐데, 출간 후부터는 판매량으로 성적표를 받게 될 것이다. 내가 쓴 글이 운좋게 어떤 편집자에 눈에 띄게 되어 출판사를 통해 출간을 하게 되었을 때, 내 책은 대다수의 경우들처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가 그러하듯이 내 책 또한 출간한 책이 새로운 책에 금세 밀리거나 잊힐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뒤에도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 글이 출간까지 되었는데, 사람들이 내 글에 관심을 아무도 가져주지 않는다면 좌절하지 않고 그다음에도 또 글을 계속 써나갈 수 있을까. 내 글이 앞으로도 계속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해도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중에는 나를 구원하고 생각을 덜어내기 위함이 아니라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도 내 글이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래도 나는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때에도 과연 지금처럼 행복하게 글쓰기를 계속 지속할 수 있을지 생각에 빠지게 된다.



어쩌면 출간이나 책의 판매량을 체크하는 일 같은 것은 앞으로 펼쳐질 기나긴 글을 쓰는 긴 여정에서 찰나와 같은 순간의 이벤트일 뿐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책이 팔리지 않아서 내게 종이를 내어준 나무와 지구에게 몹쓸 인간이구나 자책을 하게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의외로 책이 많이 팔려서 책으로 돈을 벌 수도 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도 글을 쓰고 있고, 앞으로도 글을 쓸 것이라는 것이다. 내가 어떤 스타일의 작가가 될지, 어떤 루틴으로 글을 쓸지, 이 연재는 언제 어떻게 끝마무리가 될지, 지금의 나로서는 전혀 모르겠지만, 지금 장담할 수 있는 것은 매주 글을 한편씩 쓰겠다는 것이다. 여기 브런치에 계속 글을 쓰다 보면 글과 관련된 어떤 일들이 분명히 생길 텐데, 그것이 출간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어쩌면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연재를 중단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으로 이어질지 지금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은 그저 계속 쓸 수밖에는 없다. 아직은 계속 가보는 수밖에 없다.



최근 글쓰기를 하면서 작가로서의 자아가 긁힌 두 가지 생각이 있었다. 퇴사하고 크리에이터가 된 사람들의 책을 연달아 읽었는데, 퇴사를 경험하고 새로운 길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남의 눈높이에 맞춰 대학에 입학하고 회사에 취업했는데 불행해서 퇴사하니 숨통이 트이고 행복해졌어요.'로 귀결되어 더 이상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퇴사를 다룬 책들도 보면 '회사생활이 힘들어서 퇴사했어요.'와 '회사에서 잘 나갔는데, 내 것을 해보기 위해 퇴사했어요.'로 귀결되는데, 내가 써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퇴사라고 특별할 리가 없다. 어쩌면 뻔한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자기반성이 올라왔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쉽다는 것인데, 이 세상에 나만 하는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 다 하는 일을 내 경험은 다르다고 호소하는 것 같아서 이런 글을 써도 괜찮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다 보면 아무래도 나 자신에 집중하게 되고, 내가 당시에 느낀 감정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어떤 글을 쓸 때에는 '나 이렇게 힘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극복해서 괜찮아요.'라고 호소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을 것이고, 그중에서도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쓴 글도 많은데, 내가 쓴 글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의 글과 특별히 다르지 않은 이런 글을 쓰는 게 맞나 하는 고민의 순간이 또 찾아왔다. 이 지구에서 나만 쓸 수 있는 글이 과연 있을지, 계속 쓰다 보면 그것을 찾아낼 수 있을지, 나만의 글 스타일을 찾아갈 수 있는지 고민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해 봐도 결론은 언제나 같다. 어차피 모든 창작은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 평가를 하는 것은 평가를 하는 사람들의 몫이고, 나는 그것과는 별개로 계속 글을 써나갈 것이라는 다짐을 한다. 사람들은 내 글을 보지 않을 자유가 있고, 보더라도 뻔한 얘기를 또 했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뻔한 얘기를 한번 더 쓸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미 있는 이야기 같고,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일 것 같지만 우선 써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미 있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써냈다는 사실이 패배감을 안겨주더라도, 내 한계가 이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어떤 쪽이든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결론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도 행복하지 않을 자기 검열 스위치를 눌러 글쓰기를 하지 않기보다는 우선 써 볼 생각이다. 내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을 것이며, 기존의 작품과 그렇게 차별화되지도 않을 것이다. 뻔한 얘기를 또 하겠지만, 뻔하다고 해서 그 뻔한 얘기를 한 번 더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나에게는 앞으로 쓸 글의 소재로 퇴사라는 한 방이 있다. 남들 다 하는 퇴사고, 직장에 들어가면 누구나 다 하는 퇴사인데, 나도 내 퇴사를 작가로서 어지간히 우려먹을 예정이라서 글을 쓸 준비도 하지 않고 그냥 퇴사해서는 안될 것 같다. 지금 퇴사를 하더라도 글쓰기 실력이 부족하여 내 퇴사를 잘 쓰지 못할 것 같아서, 아직은 퇴사를 할 수 없다. 작가로서 퇴사와 같은 소재를 잘 다루어야 하는데, 퇴사를 하는 시점부터 갑자기 글을 잘 쓰게 될 리가 없으므로 지금은 계속 글을 써서 글에 대한 경험치를 쌓을 것이다. 내가 쓸 퇴사에 관련된 글 또한 지금까지 출간된 다른 퇴사 이야기들을 또 한 번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글쓰기 실력이 늘어있기를 바란다. 퇴사까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계속 쓰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역시 한 편 한 편 계속 써나가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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