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은 인증샷 찍으면 끝이다
유명한 쉐프가 만든 대형식당이라길래 서다. 게다가 인테리어가 근사해서 그 기대는 더욱 컸다. 정말 식당 초입부터 남다른 인테리어, 문을 열면 보이는 신비로운 분위기는 럭셔리의 기준이 뭔지를 느끼게 해줄 정도였다.
저녁이라서 설마 오픈런까지 할까 했던 그 염려는. 예약을 했어야 했나 싶었던 우려는 필요 없었다. 200평이라는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홀 직원의 수로 이미 파악해버렸다. 전화로 걸린 예약을 받는 직원은 주방 앞에서였다. 카운터가 아닌 주방 앞에서 예약을 접수받고 있었다.
나뉜 4인석과 6인석 테이블이 길게 배치되어 있었다. 인테리어는 훌륭?했지만, 기능적으로는 앉을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3만원이 넘는 장어덮밥을 먹는 손님들에게 시크릿한 공간연출은 애초에 없었다. 창가쪽부터 앉는 사람들의 심리를 읽었다면 그쪽이 4인석이고, 홀 중앙이 6인석이어야 했는데 그조차 어긋났다. 창가는 4인이 넘어야 앉을 수 있었다. 2~3명 손님은 창가 자리를 앉을 수 없게 해두었다. 어이가 없었다. 가장 많이 찾는 인원수를 창가에 배치해 만족을 줘야 했는데, 이미 거기서부터 삐걱 거렸다.
한 마리, 한 마리반(특)으로 팔았다. 한 마리 장어덮밥이 36,000원이었다. 그릇에 담긴 장어크기를 보니 5미 장어로 보였다. 살이 얇았고 그만큼 허전했다. 대신에 바삭하게 구워진 장점은 있었다. 무엇보다 1인식으로 제공되어 반찬은 내것만 먹어야 했다. 그건 상관없지만 반찬의 양은 정말 소꿉장난이었다. 보기엔 근사하고, 사진으로는 맛있게 보일테지만 먹는 입은 아쉬웠다. 깨작거러야 먹을 수 있는 반찬을 가지고 36,000원을 써야 한다는 것이 호텔식사를 일상으로 먹는 부자들이 아니라면 돈이 아까웠다.
애초에 장어값이 비싼 걸 모르진 않는다. 태생적으로 재료비가 비싸서 이렇게 줌이 맞다고 당당할 순 없다. 손님은 재방문을 꺽으면 그만이다. 아무리 소문을 내는데 돈을 들여도, 한번 온 손님이 재방문을 포기한다면 그 식당의 말로는 뻔하다. 재방문이 없는 식당은 끊임없이 홍보비에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걸 중단하는 순간 매출은 나락이다. 돈으로 손님을 살 뿐이다.
그날 저녁의 우리 5인방은 다시 재방문할 마음이 없었다. 주차장이 크고, 단독 건물에 200평이나 되는 규모의 장어집이었지만, 거기에 분위기는 이색적임이 분명한 접대용이었지만 아무도 여길 또 오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36,000원을 내면 어떤 상차림을 먹을 수 있는지 아는 소비자였기 때문이다. 그 돈으로 다른 식당을 간다면 어떤 상차림을 먹는지 경험들이 충만한 우리였다. 우리가 식당업을 하기에 특출나서가 아니라, 수십년을 살면서 이런 저런 외식의 기회로 여러 곳을 가본 사람들이라서다.
홀을 1인이 본다는 건 아니, 설사 그날만 혼자였고, 원래는 3명이라고 쳐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만큼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손님들의 반응은 싸늘했다는 뜻이고, 블로거를 불러서 노출은 했어도 약발은 듣지 않았다는 뜻이다. 유명 쉐프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한식의 깔아주는 반찬을 이겨보겠다는 각오다. 외국처럼 반찬 없이 접시 하나인 음식으로 승부하겠다는 고집은 한국손님을 이기지 못한다. 그게 통할 때는 인증샷으로 찍을 손님이 있을 때 뿐이다. 그 인증샷이 끝나면 재방문과 단골은 없다. 그래서 유명한 쉐프의 식당이 롱런하지 못하는 이유다. 5시에 주문하고 덮밥에 술 한 잔 하느라 6시반쯤 나왔다. 우리 5명 외에 손님은 2명 2팀, 3명 1팀이었다. 홀을 혼자 봐도 충분했던 이유다.
쉐프가 있다. 수년 전 이른 나이에 작고를 하셨다. 작고하기 십여년 전 나에게 식당이 힘들다고 다리 건너 요청이 들어왔었다. 이상과 현실은 그렇게 다른 법이다. 사람들은 추앙했지만, 손님들은 만족하지 못한 탓이었다. 사람과 손님은 다르다. 같다고 생각하면 자기 오류에 빠진다. 그 오류의 결과는 다들 아는 그거다. 그리고 나는 그때 거절했었다. 내 뜻을 관철시키기엔 그가 너무 큰 거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