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요리가 재밌다면(혹은, 손이 빠르다면) 오마카세
첫째는 오마카세 식당이다. 오마카세는 고급이다. 일본에서의 뜻은 맡김 요리, 주방장특선 이지만, 한국에서는 고급요리의 대명사로 오마카세다. 고급이라 음식솜씨가 뛰어나야 가능한 식당이다. 특히, 일식에 능하다면 더 유리하다. 하지만, 저녁에만 술안주 위주로 만들어 파는 식당이니 음식솜씨보다는 요리에 재미를 가졌다면!에 나는 방점을 둔다. 냉장고를 부탁해,처럼 정형화되지 않은 재료로 순발력 있게 먹을 것을 만드는 데 재미를 가진다면 오마카세 컨셉을 추천한다.
만들고 보니 망친 음식도 눙,치면서 < 농,을 걸 정도라면 오마카세가 딱이다. 정해진 메뉴를 반복해서 만드는 것은 오히려 독이다. 주방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요리를 매일 발명하는 기분으로 만들기 때문에 주방이 그립다. 대신 쉐프급의 정통 실력이 없기에 고급 오마카세는 거리가 멀다. 1인당 최소 10만원을 넘는 그런 음식을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1인분 3~4만원짜리 오마카세는 요리 재미만으로도 가능하다. 가격이 주는 배려다. 그 가격을 쓰면서 미슐랭 쉐프급의 고급과 정통의 맛을 기대하진 않을 것이다.
1인당 3~4만원이다. 둘이면 술까지 10만원이고, 셋인 테이블은 15만원도 가능하다. 테이블 5개여도 1회전에 5~70만원이 가능하다. 4~5가지 정도의 안주를 2~3인분 양으로 5번만 만들면 그 매출이 나올 수 있다. 인당 가격대가 있기 때문이다. 오마카세는 술집으로 알고 먹기 때문이다.
일본 영화에서 등장했던 심야식당은 손님이 먹고 싶다고 말하면 주인이 뚝딱 만들어 낸다. 정말 대단한 솜씨다. 재료만 있다면 어떤 메뉴건 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미 80년대의 선술집들이 그랬었다. 대포집이라는 간판의 식당은 다양한 안주들을 써 붙였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안주 일절’이라고 과감히 팔았다. 무슨 안주건 간에 다 된다는 말이었다.
거리의 포장마차의 주인들도 사실 알고 보면 대단한 음식쟁이들이었다. 그땐 원하는 안주를 만들어주는 포장마차가 흔했다. 날마다 신선한 얼음을 깔고 그 위에 장을 봐온 재료를 놓고, 그걸 유리케이스로 덮은 냉장고?에 있는 재료라면, 무엇이든지 주문이 가능했다. 단골일수록 과감히 주문해도 심야식당의 주인처럼 해주던 포장마차가 내 어릴적 한양대에도 즐비했었다.
초밥집으로 망한 식당이거나, 작은 일식집을 하다가 매물로 나온 가게를 구하면 딱이다. 가장 중요한 다찌가 있는 식당이라서다. 다찌 뒤의 오픈 주방을 원래 갖추고 있기에 오마카세로 좋다. 오마카세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슬쩍 보여줌으로 기다림의 지루함을 지우는 동시에 색다른 음식을 먹는다는 기본에 충실된다. 그래서 요리에 재주가 있거나, 재미라도 있어야 한다.
파주의 작은 호프집은 다찌카세라는 컨셉으로 팔았다. 생김새는 호프집이었는데, 다찌를 일부러 만들어 다찌 뒤를 오픈주방으로 쓰고, 원래의 주방을 뒷주방으로 썼다. 그리고 50대의 남자가 음식을 만들었는데 손이 빨랐다. 1인당 35,000원인 다찌카세를 시켰더니 파스타를 시작으로 5가지의 안주를 내줬다. 5명이서 화요 두 병과 하이볼에 일본생맥주 몇잔을 먹었더니 30만원쯤 나왔다. 하지만, 우린 기분이 좋았다. 뭐가 나올지 모르고 먹는 안주맛도 재밌었고, 다찌석을 포함해 의자가 15석도 안 되는 작은 가게에서 마시는 술은 은밀하고 친밀했다. 작고 허름한 분위기여서 더 추억이 되었다.
쉐프의 경력이라면 1인당 5~7만원을 추천한다. 오마카세라지만 10만원은 무리다. 술을 포함해서 10만원을 뜯어낼? 작정이면 된다. 하나 더, 10만원대 오마카세 시장은 흔하다. 흔해서 원치 않아도 경쟁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비교 당해야 한다. 쉐프의 출중한 실력이어도 10만원 오마카세는 여러 가지 것이 필요하다. 5천쯤 들인 작은 식당에서 그 싸움은 힘들다.
반대로 쉐프는 아니지만, 식당 경험도 많지 않지만, 무슨 음식이건 만드는 그 자체가 재밌고 거기에 손이 빠르다면, 그래서 10~20분에 뚝딱이 가능하다면 4~5만원이다. 음식에 국적을 붙이지 못해도 상관없다. 모든 음식이 퓨전으로 보여도 괜찮다. 술안주라서다. 대신 가격을 양보해야 한다. 대신에 술을 포함해서 1인당 6~7만원쯤을 빼앗아내면 된다. 그 정도는 손님도 기분 좋게 기꺼이 지갑을 털려줄 것이다.
[8~90년대를 기억하는 분들은 이 메뉴를 “아무거나”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그날그날 냉장고에서 가장 신선한 재료만으로, 주인이 만들 수 있는 안주 서너가지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날마다 메뉴가 달라집니다. 제가 만드는 ‘아무거나’를 감히 ‘오마카세’라고 불러주신다면 감사의 뜻으로 쥔장이 감추고 마시는 술 한잔을 웰컴주로 내드리겠습니다]
이미 (일식)쉐프이거나, 이미 호프집 경험자여서 다양한 술안주를 무난하게 만들 줄 안다면 테이블 5개인 오마카세 식당을 1순위로 권한다. 이건 경쟁자가 없기 때문이다. 거리의 술집이 아무리 많아도, 오마카세 술집(5~7만원쯤인 가격도 중요)은 정말 귀하다. 내가 깃발을 꼽는다고 경쟁자가 늘어날 확률도 없다. 정말 장땡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5천만원 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