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식당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태 May 10. 2018

책부터 스승으로 삼아라

책 100권, 돈으로 100만 원쯤

1. 책부터 읽는 게 식당 입문이다.     

동네에 한량이 한 사람 있습니다. 아이들 축구 학원 때문에 알게 된 학부형인데 직업이 컨설턴트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식당을 컨설팅한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당시 내 인생에서 식당은 있지도, 있을 리도 없는 단어였으니까요. 

어쩌다 마주치면 정장은 커녕 추리닝 차림이고, 가끔 보면 낮부터 술에 젖어 있고, 뭐 하냐고 물어보면 아내와 영화 아니면 외식을 한다는 소리에 부럽기도 하면서 참 편하게 사는구나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원래 외식 컨설턴트라는 것이 그런 일인 줄 알았습니다. 

“화진이네 형님은 원래 프리랜서인 거야?” 아내에게 물으면, 아내는 “술은 당신이 같이 마시면서 그런 걸 왜 나에게 물어. 묻기는” 핀잔을 줍니다. 그래서 아이가 아닌 내 이유로 술 한 잔 마시자고 연락을 했습니다. 대화를 해보고 믿을만하다면 도와 달라고 청하고, 그렇지 않으면 대충 식당 차리는 일에 대한 개론이라도 얻어 들을까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동네 친구로서의 전화라고 생각 한 화진 아빠는 흔쾌히 시간을 내주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화진 아빠를 만나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그때는 몰랐었습니다. 만나자마자 가볍게 아무렇지 않게, 회사를 그만두었고, 앞으로 살 인생의 직업으로 곰곰이 고민한 결과 식당을 준비한다고 운을 떼자마자 말을 가로막습니다. 

“철수 아빠. 식당 하지 마. 그냥 다른 거 해. 아님 원래대로 직장을 다녀. 괜히 해서 분란 일으키지 말고 그냥 어떡하든 지금 직장에 다시 들어가서 버텨봐. 버틸 때까지 버텨봐”      

이미 직장을 그만둔 사람에게 말 같지 않은 말을 합니다. 갑자기 빈정이 상했습니다. 말을 가로막는 그 태도에 약도 올랐습니다. ‘지가 뭐라고 하라 마라야’ 

“형님이 하는 일이 식당 차리는 거 막는 건가요? 그렇게 하고 돈 버는 건가요?” 비꼬듯이 던졌습니다. 그러자 화진 아빠가 웃으면서 어깨를 칩니다. “그건 아니지만 반은 맞아. 망할 사람에게서 받는 돈은 벌기 싫으니까” 그러면서 차근히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럼 내가 뭐 하라고 하면 무조건 할 거야? 아님, 철수 아빠가 하고 싶다는 거 있음 내가 도와줘서 차리면 될 거 같아? 다 부질없는 짓이야. 식당을 하면 열에 여덟이 망하는데 그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제일 큰 이유는 공부 부족이야. 대학교까지 말할 것도 없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갈 때도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하지? 아이에게 공부 소리 지겹게 하잖아. 그 아이가 대학 나와서 직장 들어갈 때도 공부해야지? 죽어라 해야지? 하라는 소리 안 해도 지가 알아서 죽어라 하잖아. 그런데 그런다고 다 좋은 직장 들어가면 청년 실업자는 왜 점점 늘까?”

식당에 대한 상담을 받으려다가 인생 상담까지 거론하는 가 싶어 기분은 점점 더 나빠집니다. 자기가 아는 분야라고 너무 일방적으로 가르치려는 거 같아서 얼굴이 찌푸려집니다. 그게 읽혔는가 봅니다. 갑자기 화진 아빠가 정색을 하고 말합니다.


“철수 아빠. 내가 뭔 일 하는지 정확히 모르지? 알려고도 안 했지? 내가 선물한 책은 읽어나 봤어? 내 홈페이지 한 번이라도 찾아보고서 나에게 전화한 걸까? 아니잖아. 그냥 동네 아이들 친구 아빠니까 편하게 불러낸 거잖아. 지금 식당 창업을 그런 마음으로 생각하는 거잖아. 아니라고 말하지 마. 나를 안다면 이렇게 나를 불러내지도 못하고, 그런 식으로 우유부단하게 질문할 수도 없어. 철수 아빠는 지금 인생 후반전의 중차대한 일을 아주 가볍게 덤비고 있는 거야”

속으로 뜨끔해야 했습니다. 맞습니다. 나는 그 형님의 책도 건성으로 봤고, 책에 붙은 홈페이지는 들어가 볼 생각조차 안 했습니다. 아내에게 뭐하는지 묻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혹시 능력이 있다면 동네 지인으로서 뭐 좀 어떻게 해달라고 해보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철수 아빠야. 내가 하는 일은 식당을 차려주는 걸 돕는 일 맞아. 그런데 그 일을 오래 하다 보니까 이게 뭐하는 짓인가 생각이 들더라고. 아무런 공부도 하지 않고, 돈으로 숙제를 하려는 사람을 돕는 게 내가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정작 장사를 할 사람은 식당 장사가 어떤 건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 식당을 운영할 준비도 안 된 사람에게 식당을 차려주었단 소리야”     


더 이상의 길고 긴 화진 아빠의 훈계 같은 소리는 그만두겠습니다. 차차 그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담겨질 테니 말이죠. 긴 이야기의 끝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책부터 봐라. 내가 궁금한 게 뭔지도 모르니까 책부터 봐라. 보다 보면 내가 궁금한 것이 뭐고, 내가 아예 몰랐던 것이 뭔지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책부터 봐라. 남에게 물어보는 것도 내가 뭘 알고 싶은지 알고 묻는 것과 그조차 모르고 묻는 건 차이가 있으니까 묻기 전에 내가 뭘 알아야 좋은 지 책을 통해서 익혀라”

“어떤 책이 좋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까 제목을 보고 고르던, 목차를 보고 고르던, 출판사 이름을 보고 고르던 그건 맘대로 해도 좋다. 읽다가 재미없으면 덮으면 되고, 말 같지 않은 소리면 버리면 된다. 책값이 아깝다고? 식당 창업, 식당 경영, 장사 사례 등등의 이야기를 담은 책 50권 정도 읽으면 되는데 그 책값이 아깝다고? 그래 봐야 7~80만 원 정도의 돈이 아까워서 책도 안 보고 식당을 해보겠다는 사람을 보면 가소롭기 그지없다. 권리금이 수 천만 원이고, 월세도 수백만 원인데 책 읽기도 없이 식당을 준비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읽다가 맘에 들지 않아서 버려봐야 몇 만 원이다. 그 돈 아껴서 부자 될 건가?”     

그래서 책을 일단 사들였습니다. 100권쯤은 읽고 창업을 해야 아이들에게도 미안하지 않고, 아내에게도 믿음을 줄 거 같았습니다. 하루에 한 권씩 100권을 100일 동안 읽으면 곰이 인간이 되듯이 저도 어렴풋하게라도 식당 장사라는 것에 눈을 뜨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주문했습니다. 화진 아빠 말대로 읽다가 지루하면 덮고 다른 책을 보면 되니까요. 읽다가 허술하면 그 책은 쓰레기통에 던지면 그만이라는 맘으로 100권을 주문했습니다. 나중에는 식당 관련 책으로는 모자라서 심리학, 광고학 같은 책까지도 주문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의아했던 것이 창업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막상 창업 책은 몇십 권 정도면 더 이상 고를 게 없을 만치 양이 적다는 점도 놀라웠습니다. 방송에서 화려한 언변을 가진 셀럽이 쓴 책이 한 권도 없다는 점도 놀라웠고, 있다고 쳐도 몇 권 되지도 않음에 실망했습니다. 컨설턴트라는 사람들의 책은 거기서 거기인 듯 서로가 봐주고 짜깁기하듯 쓴 책들도 즐비했고, 대단한 성공담을 쓴 식당 주인들은 어쩌면 한결같이 고생을 지독히도 했는지, 그 고생을 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은 어쩌라고 할 정도로 너무나 드라마틱한 인생이었다는 점도 신기했습니다.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은 망하지 않는 식당 차리기인데 반해 성공한 사람들은 큰 목표를 겨냥하라는 말도 너무 버거웠습니다. 하여간 책 읽기는 책값 외에는 더 이상 돈이 들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이러다 어느 세월에 식당을 차리나 한편으로는 염려도 생겼지만, 책 읽기라는 준비도 정말로 모르고 시작하려던 내가 한심스러웠고, 화진 아빠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 식당을 차리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식당을 운영하는 일은 더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았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여간 곰이 마늘을 100일 먹듯이 책을 읽었습니다. 깊이 읽어야 할 것은 줄 쳐 가면서 읽고, 너무 뻔한 말에는 비웃음도 던지면서 책을 덮었습니다. 지하철역 근처, 정류장 근처, 시장 초입이 좋은 자리인지 누가 모르나요? 멋지게 차려입고, 웃으면서 푸근하게 말 거는 서비스가 좋은 줄 누가 모르나요? 그런 뻔한 이야기를 허세로 꾸민 이야기들은 버려가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진짜 내가 식당을 할 수 있을까? 창업은 과연 할 수 있을까? 창업하고 나서는 그다음은 어떻게 꾸려갈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을 하게 된 것도 책을 읽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이 없었더라면, 창업은 일사천리였을 테고, 망함도 그보다 빠른 일사만리였을 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식당일기를 시작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