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300번, 10년이면 3,000번
형은 너를 참 오래전에 봤을 때도 놀라웠단다.
아버지의 식당(횟집)에 클리닉을 해달라고
그때의 네 나이가 20대 후반쯤이지 싶다.
아버지를 돕고 싶은데 네 말은 듣지 않으시니(아버지 눈엔 아들이 그저 아들일 뿐이니)
전문가를 통해 꼭 돕고 싶다고 나를 불렀다는 그때의 너를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런 너가 지금은 41살이 되었구나..
1억을 가지고 차린 우동집으로 2년만에 돌짜장집을 차리고
또 2년만에 닭갈비집을 차려낸 너의 사업수완?도 놀랍지만
3개의 식당을 오토로 돌려내는 그 솜씨가 더 경이롭단다.
3개의 식당을 오토로 운영이 가능한 이유가
"내 몫을 줄이고, 직원들에게 더 주면"이라는 네 말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 배포가 정말 30대에 가질 수 있을까, 싶었다.
"30대의 또래 친구보다 훨씬 많지만, 대기업 임원급이지만"
너는 한겨울이면 늘 빨간 점퍼 하나를 입고 다녔다.
수년전부터 외제차를 사고도 남을 벌이지만,
여전히 지금도 소형 국산차를 타더구나..
어제 처음, 겨울 외투가 다른 걸로 바뀐 게 이상할 정도였다. ㅎㅎ
20대 후반의 너는 이제 41살이 되었고
40대 초반의 나는 이제 56살이 되었다.
네가 나를 처음 봤던 나이가,
이제 네가 그 나이더구나..
지금의 내 나이가 네가 되었을 땐
더 얼마나 멋진 사업가가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명절.. 과일 하나도 보내지 않는 무심함이지만 ㅎㅎ
내 아버지의 초상에
가게 일 마치고 야간버스를 타고 올라와
다시 새벽 첫 버스로
창원으로 내려간 고마움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너는 꼭 필요할 때 한마디의 응원으로 나를 힘나게 해주는 묘한 매력이 있단다..
그래 맞다.
나는 마이너리그의 탑이었다.
그 세계에서는 내가 백선생이었다.
빈자들의 자영업자들에겐 나는 교주이기도 했었다.
나는 과분하게도 십수년이나 화려했었다.
살면서 십수년이나 주인공의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이제와서 메이저리그를 두드릴 맘이 없단다.
멋지게 마이너리그에서 원톱,이었던 추억을 간직하고 싶단다.
50이 넘어 60에 메이저리거가 될 수도 있겠지만
.... 왜 그래야 할까 싶다.
그냥 조용히 소소한 글이나 쓰면서 사는 60대도 멋지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나는 아침에 글 한 편을 썼고
100명을 위한 온라인 식당수업을 했다.
6개월째인 계단을 오늘도 120층을 올랐다.
운동 후 샤워를 마치면 언제나 시계는 11시다.
아내를 태우고 공주로 가서 토마토쌀국수를 먹었다.
일부러 세종 이마트까지 가서 장을 보고 집에 오니 3시더구나.
그걸로 오늘 하루는 끝이다.
오후와 저녁은 멍을 때려도 그만이고,
술한잔을 해도 노후는 다행이도 걱정이 없다..
이게 바로 내가 메이저리거가 되려는 맘이 없는 이유란다.
강의건, 유투브건, 그 모든게 뭐건 간에
나는 "아내와 매일 외식하는 남자"......로 살고 싶을 뿐이다.
1년에 아내와 300번 외식하는 남자!!
그 분야에서 1등을 해보고 싶구나.........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