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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하 Sep 01. 2023

되살아난 토토의 쓸모

“로봇이 기억을 한다고요?”

 새 주인아저씨가 깜짝 놀라 말했어요.

 “쉽게 비유하자면 그런 거고요. 로봇이 배달을 다니며 학습한 경험을 주행 속도에 반영한다는 뜻이에요. 이 모델은 한 번 부딪혀 넘어진 경험이 있어 장애물에 좀 더 방어적이 되는 거죠. 그래서 주변 환경에 따라 입력한 속도만큼 주행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죠.”

 나를 만든 회사의 기술자 아저씨가 별 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어요. 주인아저씨는 첫날 내 배달 속도가 기대만큼 나지 않자 기술자 아저씨를 바로 불렀던 거예요.

 “허어, 그럴 줄 알았으면 중고를 안 사는 건데. 고칠 수도 없는 거예요? 내가 이 방면으론 잘 몰라서 그런데 예를 들어 리셋을 한다든지. 방법이 있을 거 아니에요?”

 주인아저씨 목소리가 커졌어요.

 “아, 그런 것보다 경험이 쌓이면 새로운 환경에 맞게 주행을 더 잘하게 될 겁니다. 리셋을 하면 걸음마부터 처음 시작하는 거랑 같으니 오히려 위험하죠. 특히 이 동네는 길이 복잡하잖아요. 곧 좋아질 거예요. 수시로 닦아 주셔야 로봇의 성능도 유지되니까 잘 관리하시고요.”

 기술자 아저씨가 말했어요.

 “그럼 배달하는 경험이 많아질수록 속도도 더 좋아질 수 있겠네요?”

 주인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요.

 “뭐야, 덜 쉬고 더 일하면 되는 거잖아!”

 주인아저씨는 기술자 아저씨의 처방이 마음에 든 것 같았어요.

 약 배달 주문은 끊이지 않았어요. 아이스크림 배달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았어요.

 “하아, 생각보다 많이 늦네. 이러다간 하루 배달을 스무 건 정도밖에 못하겠는걸.”

 주인아저씨는 내 배달 속도가 느리다고 했어요. 그러곤 속도를 점점 올렸어요.

 “토토, 더 빠른 속도로 경험을 쌓아 보자.”

 나는 달리는 차와 오토바이, 사람들 사이에서 곡예하듯 배달을 했어요. 공사하는 길이 있으면 돌아가야 했어요. 깨진 보도블록 사이로 바퀴가 걸리기도 했어요. 주인아저씨는 그런 길의 사정을 몰랐어요. 늘 내게 ‘더 빨리 다녀와. 나를 실망시키지 마.’ 라고 외쳤어요.

 나는 주인아저씨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열심히 달렸어요. 아저씨가 원하는 대로 빠른 속도로 경험을 쌓아갔어요.

 “어차피 또 더러워질 텐데.”

 다만 기술자 아저씨가 나를 수시로 닦아 주라는 말은 까먹은 것 같았어요. 아저씨는 온몸에 묻은 먼지를 닦아주지 않았어요. 나는 항상 더러워진 채 충전기 집에 들어갔어요.

 처음에는 먼지가 뒤덮인 채 다니면 배달 점수가 낮을까 봐 걱정했어요. 다행히 사람들은 지저분한 나를 싫어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손님들에게 나는 정말 반가운 존재였어요. 콜록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높은 전염력 때문에 외출이 쉽지 않았거든요. 그러니 약을 배달해주는 내가 그저 고마울 뿐이었지요. 아마 개똥을 밟고 갔어도 싫어하지 않았을 거예요.

 손님들은 늘 모니터에 배달 점수 만점을 줬어요. 나는 기쁜 마음으로 꼬리를 흔들며 맴맴 돌았어요. 나의 재주를 보지도 않고 문을 닫아버리는 손님이 대부분이었지만요.

 온도 조절이 안 되는 가방도 약을 배달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작아졌던 나의 쓸모가 되살아난 기분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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