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은하 Sep 01. 2023

나를 실망시키지 마

그날 저녁 나는 안경을 쓴 손님의 차에 실렸어요.

 아이스크림 배달을 가는 게 아니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어요. 주인아저씨가 가방에 아이스크림을 넣어주지도 않고 배달할 집 주소를 입력하지도 않았거든요.

 “토토, 이게 최선의 결정이야. 새로운 곳에서 너의 쓸모를 찾게 될 거야.”

 아저씨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닫기도 전에 나는 차에 옮겨졌어요. 그리고 바로 잠이 들었어요. 아니 전원이 꺼졌어요.

 내가 다시 눈을 뜬 곳은 커다란 약국 안이었어요.

 “이제 네 주인은 나다. 여기는 네가 앞으로 일할 곳이야.”

 안경 쓴 손님의 말은 사실이었어요. 손님이 나를 만져도 ‘삐삐’ 경고음이 나지 않았거든요.

 나는 새 주인아저씨에게 꼬리를 흔들었어요. 나는 그렇게 행동하도록 설계되었으니까요.

 그곳은 아이스크림 가게보다는 작았지만 종종 배달을 갔던 하나약국 보다는 커 보였어요.

 새로운 주인아저씨는 하얀 가운을 입었어요.

“시험 삼아 우리 집으로 약을 배달해 봐야겠다.”

 아저씨는 내 가방에 스티커를 붙이며 말했어요. 그러더니 문밖에도 같은 스티커를 붙였어요.


 ‘약 배달 가능합니다! @콜콜약국 #1515-1345 #콜록이아웃’


 새 주인아저씨는 내게 배달 일이 많을 거라고 했어요.

 “주소는 입력했고 속도는 일단 너무 빠르지 않게 해야지.”

 아저씨는 병 두 개랑 작은 상자 세 개를 배달 가방에 넣었어요.

 “나를 실망시키면 안 된다.”

 아저씨는 내가 꼬리를 흔들거나 말거나 나를 밖으로 내보냈어요.

 ‘새로운 곳에서 너의 쓸모를 찾게 될 거야.’

 나는 첫 번째 주인아저씨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생각하며 작은 실수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나는 스무 개의 센서로도 피하기 어려운 개똥이 있는지 살피며 조심스레 길을 나섰어요.

 새롭게 일할 곳은 아파트 단지와 완전히 다른 곳이었어요.

 “빠라빵!”

 오토바이가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어요. 아파트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속도였어요. 하마터면 나는 오토바이와 부딪힐 뻔했어요.

 그뿐만이 아니었어요. 차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사람들과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뒤엉켜 다녔어요. 내 몸의 센서들이 바짝 긴장하는 게 느껴졌어요.

 “빵빵!”

 “뭐야, 깜짝 놀랐잖아.”

 운전하는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지나가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꼬리를 흔들며 잠깐 멈춰야 했어요.

 나는 입력된 속도를 제대로 낼 수가 없었어요. 잘못하다간 자동차와 부딪힐 수 있으니까요.

 ‘곧 익숙해질 거야. 전에 그랬던 것처럼.’

 배달 첫날 나한테 소리 지른 사람만 있지는 않았어요.

 “고것 참 신통방통하다.”

 리어카에 짐을 가득 실은 할머니가 나를 보며 말했어요.

 나는 할머니 앞에서 멈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어요.

 “리어카에도 너처럼 자동으로 움직이는 바퀴가 달려 있으면 좋으련만.”

 할머니는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어요.

 “삐 삐.”

 할머니는 경고음에 살짝 놀라 뒤로 물러서더니 서둘러 리어카를 끌고 반대쪽으로 사라졌어요. 나를 만지면 경고음이 울린다고 모니터 아래 적혀 있었지만 할머니가 읽지 못한 모양이에요.

이전 10화 두 번째 주인아저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