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치 사용료를 한꺼번에 드리겠소. 열 시 전에 로봇을 돌려보내리다.”
다음날 저녁이었어요. 일곱 시가 넘어 어제 그 손님이 두툼한 봉투를 들고 다시 나타났어요.
“약국 문은 아홉 시에 닫는데 어쩔 수 없지요. 아참 사용하기 전에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걸 잊지 마세요. 안 그러면 경고음이 울릴 거예요.”
주인아저씨가 두툼한 봉투를 받으며 웃었어요. 아저씨가 두 번째로 보여주는 웃음이었어요.
손님은 나를 차에 태워 한참을 달렸어요. 여덟 시가 넘자 밖이 어두워졌어요.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야. 실수하면 안 된다.”
손님은 네모난 상자를 내 가방에 넣으며 말했어요.
나는 쓸모 있는 존재이고 주인아저씨를 실망시키지 않는 존재예요. 그러니 당연히 실수할 일은 없을 거라 자신했어요.
내가 처음 상자 배달을 가게 된 곳은 사람들이 사는 집이 아니었어요. 수풀이 우거진 어떤 다리 밑이었어요.
그곳에는 검정색 승용차를 탄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내 가방에서 상자를 꺼낸 그 사람은 별점 만점을 줬어요. 내가 손님의 심부름을 실수 없이 해냈다는 걸 알면 주인아저씨가 기뻐할 거예요.
나는 기쁜 마음으로 꼬리를 흔들며 빙빙 도는 묘기를 보여줬지만 검정 승용차는 관심이 없는지 먼지만 일으키고 떠나버렸어요.
그 후로도 나는 밤마다 크기가 다른 네모난 상자를 집이 아닌 낯선 곳으로 배달했어요.
상자를 받는 사람은 늘 배달 점수를 후하게 줬어요.
내게 야간모드 기능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야간모드 기능을 켜자 어둡고 낯선 밤길이 불편하지 않았어요.
걱정인 것은 밤에도 배달을 해서 충전 시간이 부족하다는 거였어요. 주인아저씨도 그게 걱정이 되었나 봐요.
“콜록이 환자분한테 약 배달은 내가 갔다 오마.”
낮에 약 배달은 주인아저씨가 하고 나는 종종 충전기 집에서 쉬기도 했어요.
드디어 약속한 보름이 다 되어갔어요.
그날은 손님이 커다란 트렁크 가방을 들고 나타났어요.
“지금 출발해. 난 당분간 외국에 나가 있을 거야.”
손님은 누군가와 통화를 한 후 내 가방에 상자를 넣었어요.
“오늘 이것을 끝으로 너와도 마지막이다. 실수하면 안 된다. 이름이 또또? 토토라고 했나?”
손님이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어요. 나는 꼬리를 살살 흔들었어요.
손님이 입력한 주소는 여러 번 간 적이 있는 공터였어요. 실수할 이유가 없었지요. 목적지에 도착하니 익숙한 검정 승용차가 먼저 와 있었어요.
곧 검정 승용차에서 사람이 나왔어요.
“그동안 고마웠다.”
그 사람이 가방에서 상자를 꺼내며 말했어요. 나는 그 사람에게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어요.
“뭐가 좋다고 꼬리를 흔드냐. 넌 범죄 로봇이야, 이 녀석아.”
그때였어요.
“삐삐 삐삐.”
내가 꼬리를 흔드는데 경고음이 들렸어요. 하지만 그 소리는 나한테서 나는 게 아니었어요. 경찰차 세 대와 경찰 오토바이 두 대가 요란한 경고음을 내며 나타났어요.
“아이씨.”
검정 승용차 아저씨는 상자를 움켜쥔 채 도망치려고 했어요. 내게 배달 점수도 주지 않고 말이에요. 별점을 받아야 다시 출발할 수 있는데 말이죠.
경찰 오토바이가 속도를 내며 도망가는 승용차 아저씨를 쫓았어요.
“퍽.”
그때였어요. 또 다른 오토바이 한 대가 나와 부딪혔어요. 나는 살짝 튕겨나가 쓰러졌어요. 그리고 의식을 잃었어요. 아니 전원이 나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