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왜 충전이 안 된 거지?”
가끔이지만 밤새 충전기 집에 있었는데도 충전이 덜 된 적이 있었어요. 그런 날은 약 배달할 시간에 충전기 집에 있어야 했어요. 당연히 아저씨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죠.
하지만 나는 좋기도 했어요.
“먼지 때문인가?”
아저씨가 나를 깨끗이 닦아줘서 온몸이 개운했거든요.
하지만 그런 경우가 잦아지자 아저씨는 점점 내게 실망하는 것 같았어요. 나는 이곳에서의 나의 쓸모가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나는 배달을 마치고 약국 귀퉁이 충전기 집에서 쉬고 있었어요.
“두통약 하나만 주세요.”
인상이 무서운 손님이 약국에 들어왔어요.
“증세가 어떠신가요?”
주인아저씨가 물었어요.
“골치 아픈 일이 생겨서요.”
“약을 먹는다고 나을 수 있는 건 아닌데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저씨는 약을 꺼내 손님에게 건넸어요.
“그런데 저 로봇은 무엇이든 배달이 가능한가요?”
손님은 나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뭐 그렇죠.”
주인아저씨가 퉁명스레 대답했어요.
“저녁에는 배달을 안 합니까?”
“약값은 3,000원입니다.”
주인아저씨는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어요.
손님은 카드를 건넸어요.
“혹시 로봇을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비용은 서운하지 않게 드릴게요.”
“로봇이 얼마나 비싼 건데요. 함부로 빌려 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내가 비싸다는 건 쓸모가 있다는 말이었어요.
“사용료를 드린다니까요.”
손님은 물러서지 않았어요.
“그럴 거면 직접 구입해서 쓰시지요.”
주인아저씨의 말에 손님의 표정이 일그러졌어요.
“아, 몇 번 쓰려고 구입했다가 나중에 처리하기가 귀찮아서 그래요. 사용료를 로봇 구입 가격만큼 드리면 될까요?”
주인아저씨는 안경을 고쳐 쓰며 물었어요.
“몇 번이나 빌릴 예정인데요?”
“보름 동안 저녁에만 쓰도록 할게요. 물론 그 전에 끝낼 수도 있고요. 약국 문 닫기 전에 로봇은 돌려보내겠소.”
“그럼 계약서를 썼으면 좋겠습니다만.”
주인아저씨는 바로 꼼꼼하게 계약서를 썼어요.
나는 저녁마다 무엇을 배달하게 될지 참 궁금했어요. 하지만 아저씨는 나의 새로운 쓸모에 대해 손님에게 묻지 않았어요.
손님은 구입한 두통약을 깜박하고 안 가져갔어요.
“손님에게는 두통약보다 네가 필요했나 보구나.”
손님이 떠나자 주인아저씨가 나를 쳐다보며 활짝 웃었어요. 나를 보고 웃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아저씨의 웃음만큼 나의 쓸모가 새로 생긴 것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