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인화
바다로 처음 나설 때 돛단배는 두려움보다 설렘을 더 느낄 것이다. 부숴지는 파도는 발가락을 간지럽히고, 그런 파도에 부숴지는 햇빛은 설렘을 극대화하는 눈요기거리 정도이다.
어렸을 때의 나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의 나는 겁이 많으면서도 하고 싶은 게 많았던 아이였다. 우리 집이 엄청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은 내게 다양한 경험을 많이 시켜주셨다. 피아노와 드럼 같은 악기를 배우기도 하고, 태권도는 물론 검도, 수영, 스키와 스노보드 같은 스포츠도 마음껏 즐겼다. 그래서 어렸을 때의 나는 다재다능한 아이였다. 공부도, 그 외의 것들도 못하지 않았고 잘하는 편에 속했으니까. 이러한 상황에서 어렸을 적의 나는 하고 싶은 것들은 대부분 해냈었다. 회장이 하고 싶어서 회장 선거에 나가면 당선되었고, 글짓기 대회 등에 나가면 쉽게 상을 타왔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돛단배가 여정을 시작하고 육지가 더이상 눈에 보이지 않게 되면 불안의 씨앗이 차츰 그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발가락을 간지럽히던 파도는 더이상 귀여운 것이 아니게 된다. 파도는 강한 힘으로 돛단배를 멀미 나게 하고, 나무 판자를 닳게 하며 앞으로 쉽게 나아가지 못하게 방해하기도 하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기분 좋았던 햇빛은 어떠한가. 육지에 있을 때는 피할 그늘이 얼마든지 있었으나 망망대해 위에서의 그림자는 돛단배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 밖에 없다. 따가운, 나를 공격하는 존재로 변모한다.
커가면서 나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불안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성격 좋은 친구들 덕에 인간관계에서 불안함은 그리 크게 느끼지 않아서, 줄기차게 내 미래에 대해 걱정했다. 몇 년 전 나의 인생의 전부는 대학 진학 뿐이었다. 너무 어린아이 같아서 창피한 기억이지만, 시험을 망치면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처음으로 울었던 중학교 2학년 중간고사, 가채점 0점으로 눈 앞이 새하얘졌던 고등학교 1학년, 기대했던 고3 9월 모의고사에서 처참한 점수를 받았던 날 … 들인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눈물이 나온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못 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던 것 같다. 음, 그리고 원하는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했다 하하. 고3이 끝나고 처음으로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흘러가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돛단배가 우울해지는 이유는 아무리 용을 써서 헤엄쳐도 똑같은 풍경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도 않은 좌절감 때문이다. 게다가 파도에 조금씩 닳았으니 지쳐버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우울해진다. 그래도 가끔씩 나타나는 섬에서 쉬어갈 수 있어서 항해를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갈 줄 알았던 학교에서 떨어지고, 입시가 인생의 전부이던 나는 조금 우울했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학교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이 없다보니 그러고 있던 시간도 길어졌다. 하지만 학교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나같은 사람이 대부분임을 알게 되었고, 학벌주의를 입으로만 반대한다고 외쳤던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기존의 친한 사람들이든 새롭게 알게 된 사람이든, 혼자서 땅굴파기를 잘하는 내게는 중간에 쉬어갈 수 있는 섬 같은 사람들이다. 기존의 묵은 생각을 환기시켜주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불어넣어주는 사람들.
육지에 다시 돛단배가 닿을 때까지의 이야기는 알 수 없다. 가라 앉지 않고 어떻게든 버티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