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나는, 최민석

by 에이포

나는 그저 쉬고 싶었다. 학점이든 뭐든 신경 안 쓰고, 내가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를 가득 채우고 싶었다. 2018년부터 쉬지 않고 항상 1년을 학업과 근무로 가득 채우던 나에게 이것만큼 간절하게 이루고 싶은 것은 없었다. 그래서 해봤다.

얼마전 나는 갑작스럽게 휴학을 결정했다. 그 순간의 감정을 아직 잊을 수 없다. 교수님과 면담을 마친 후, 종합봉사실에 가서 휴학원서를 모두 제출하는 그 순간 입꼬리가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올라갔다. 그리고 정문을 나서 집에 오며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드디어 쉰다는 생각에 감정이 북받쳤다. 그리고 그 날은 나의 생일 전날이었다.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 같은 모양새가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받기로 했다. 이제 나의 버킷 리스트인 내가 원하는 것으로 가득 채우는 삶을 지낼 생각에 굉장히 신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이 되었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내가 어디에 시간을 써야할 지 잘 모르겠던 것이다.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쉬면서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해 나갈 생각에 부풀어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막상 찾지 못하니까 그것이 나름대로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내 의식에 모든 걸 맡기기로 했다. 의식이 가는 대로 하다 보면, 분명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였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모든 약속을 받았다. 그리고 이때까지 밀렸던 게임도 쉴 새 없이 했다.

이때까지 챙기지 못했던 인간 관계를 조금 살리기 위해 정말 여러 사람을 단기간에 많이 만났다. 동기들, 선배들이 모두 모인다는 자리에 빼지 않고 나갔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마치 새내기가 된 기분으로 앉아있고, 그들이 얘기하는 것에 같이 웃으며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밤 10시가 넘어가기 무섭게 기운이 쭉 빠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즐겁긴 하지만 예전만큼의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기에 후에는 얼른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집으로 도망쳤다.

친구가 대학을 다니는 동네로 놀러가기도 하였다. 가서 평생 하지 않을 것 같던 축구도 하고, 축구를 하기 위해 축구화도 사는 등 정말 평소에 이런 거까지 내가 할 거라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하였다. 하지만 거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축구가 끝난 후, 친구의 자취방에서 술을 마실 때도, 결국에는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밤 열 시에 안산에서 2시간동안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는 친구들과 동네에서 잔뜩 술을 마시기로 하였다. 마찬가지로 즐거웠다. 하지만 술도 예전만큼 막 들이키지 못하였다. 소주 한 병이 넘어가는 순간부터 속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였다. 컨디션을 먹고, 상쾌환을 먹어도, 속은 도저히 나아지지 않았다. 열심히 안주만 먹다가 집에 갈 시간이 되어 술에 취하지도, 안 취하지도 않은 애매한 기분으로 집에 왔다.

이때쯤 생각이 들었다. ‘아, 나는 사실 집에 계속 있고 싶었던 거구나.’ 그래서 그 이후로부터 집에만 있기로 다짐하였다. 어쩔 수 없이 나가야하는 과외 등의 상황을 제외하면 극한의 ‘집돌이’가 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참 간사하다. 집에만 며칠 있으니까, 또 사람이 보고싶었다. 그래서 다시 안산으로 떠났다. 안산에 가서 친구랑 둘이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였다. 사실 그때도 집에 가고 싶었다.

여기까지 적고 나니 그저 다중인격을 가진 사람 같아 보인다. 사실 제일 놀란 사람은 나다. 나는 나의 버킷 리스트였던 ‘쉬기’를 실행하기 위해 행한 휴학이 생각보다 유효기간이 짧았다는 것에 매우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햇수로 약 5년 정도를 쉬지 않고 학업-과외-국가근로-연애 정도로 이뤄진 삶을 살면서 나 혼자 쉬는 법을 잊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쉬면서 꾸준히 일을 벌리는 나를 보면 그 말이 매우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민석


쉬면서도 과외를 놓지 못한다. 학생과의 신뢰라는 얄팍한 이유를 들이밀며 과외를 놓지 않고 있다. 그리고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그저 쉬고 싶었다.’ 근데 지금 나를 보면 그저 쉬고 있지는 않다. 밴드에 들어가겠다고 동기에게 말하고, 언제부터 하겠냐는 말에 지금 당장이라고 말한다. 게임도 끝장을 보려 한다. 내가 지면 진다고, 이기면 이긴다고 계속 한다. 운동도 시작하려고 알아보고 있다. 그냥 학업이 빠진 자리를 채우는 것들이 어느 순간 생겨버렸다.

갑작스러운 자유가 생긴 기분이다. 너무 많은 자유를 누려보지 못한 사람인데, 갑자기 나에게 생겨서는 나를 기쁘게 하기보다는 또 어떻게 정립된 삶을 살지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요즘 나의 버킷 리스트는 ‘이 자유를 12월 말까지는 그저 누리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쓰고 싶을 때 쓰고, 내가 나가고 싶을 때 나가고,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라 해도, 내가 힘들면 나가지 않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자유이다.

그리고 혼자 여행을 가보고 싶다. 친구들과 여행을 계획하고 있지만, 오롯이 나의 선호만 생각하고 짜진 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홀연히 떠나서 혼자 고기도 구워 먹고, 회도 야무지게 먹으며 바닷바람에 스친 볼이 아릴 때쯤 숙소로 들어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잠에 빠지고 싶다. 자유를 얻은 척을 하는 것이 아닌, 나에게 생긴 자유를 진실로 누리고 싶다.

어느 틈 속에서 내 선호를 찾는 것을 멈추고 그저 나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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