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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포 Dec 14. 2022

능동성

나는, 전인화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이 생은 귀하다. 이 소중한 기회를 대하는 방식은 사람들마다 다르다. Flex라는 단어의 유행이 보여주듯이 물질적인 행복으로 후회를 덜어보려는 사람들도 있고, 제 몸 희생해가며 사랑으로 그 의미를 채워보려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어떠한가?


생을 채우려면 방향이 정해져야 한다. 이 방향성을 한 문장으로 나타낸 것을 보통 좌우명이라고 한다. “능동적인 사람이 되자.” 별 거 없지만, 현재의 내가 원하는 생의 모습이다.


#1

여태까지 나의 생애는 조금도 장애물이 없었고 손실도 없었다. 모든 것은 올바른 질서 속에 있었다. 분명히 그건 그렇다. 그러나 또한 나는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아무 것도.

-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


흔히 능동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대부분 ‘알아서 잘하는 사람’ 정도를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이 특성은 현대 사람들이 참 좋아한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건 이 뉘앙스와는 사뭇 다르다. 나는 이미 다 설계된 일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길 원한다.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내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하는 행위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질타 받기 십상이다. 이미 만들어진, 완벽해 보이는 세계에 굳이 반항해야 하나 싶고, 남들 사는 대로 아니면 남들보다 조금 더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이 합리적인 것 같다.


그러나 이 모든 게 다 신화적이다.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와 같은 아메리칸 드림과 다른 바 없다. 아니, 애초에 성공이란 둘레도 이 사회가 정해준 올가미일 뿐이다. 저항 없이 올가미에 속박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만의 주체적인 생을 소망하는 것이다. 


현재의 내가 이렇게 주체성에 대해 울부짖지만 남들은, 우리 부모님은, 미래의 나는 20대의 치기 어린 몽상에 불과할 뿐이라고 여길 것이다. 어쩌면 내가 이상 속에 빠져 환상을 꿈꾸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만의 말투, 생각, 논리를 갖는 기회를 차버리는 멍청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 


#2

수동적인 태도에 대한 경계는 인간 관계에도 적용시킬 필요가 있다. 나의 생을 채우는 것은 내 스스로의 의지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그 이상의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나의 말투는 우리 부모님의 산물이요, 자주 쓰는 말과 웃음 코드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대학 사람들의 것이고, 나의 무의식은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형성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에게 꽤나 무심했다. 나는 인간 관계에 있어 딱히 노력을 해본 적이 없던 듯 하다. 적당하고 무난한 관계, 편안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이런 것이 좋았다. 내가 무난하면 잘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삐걱거릴 수 있는 상황도 웃으며 무마하고 넘겼다. 


그러나 나의 무난함은 사실 비겁함이었다. 나의 적극적인 반응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무난함을 표방한 나의 무심함은 하나의 폭력이 되었다. 나 편하고자 수동적으로, 한 발 물러나 있던 것을 무난함으로 포장하고 있던 나는 참 이기적이다. 


다정함으로 포장한 비겁함보다는, 미움 받더라도 목소리를 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관계에서의 능동성이고, 앞으로 내가 취해야 할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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