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규헌
얼마 전에 크게 탈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체한 것도 아닌데 아무런 생각도 않고 가만히 두 시간을 잠도 못 자고 누워 끙끙 앓고 있었습 니다. 그 날은 내 감정을 다루는 게 어렵다 못해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지던 날이었습니다. 힘든 날이었습니다. 아니 정말로, 힘든 것보다도 당황스러웠어요.
살다보면 나에게도 일이 생깁니다. 굳이 내 일이 아닐지라도 꽤 길게 고민해봐야할 일들, 고민해보고 싶은 일들, 해프닝이라고 하죠. 그럴때면 나는 우선 거기서 몇 발자국 물러서서 본질적인 원인을 찾아내려고 노력합니다. 그 끝에서 내가 얻은 생각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는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은 적어도 나에게는 핵심에 가까운 생각입니 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적어도 이성적인 나를 굳게 믿은 채로 살다보니, 어 느샌가 감정에 휘둘리는 나에 대해서는 모른 체하고 외면하고 있었나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감정에 휘둘려서 나오는 생각과 행동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한심하다고 만 여겼습니다. 생각해보면, 감정을 이성으로만 이해하려고 하는 사고방식이 그보다 더 한심 한 발상입니다. 그러다 나의 감정을 붙잡고 세게 흔드는 해프닝을 맞닥뜨리고 나는 한심하게 도 에구,저런. 뒷걸음질 치려다가 그만 뒤로 넘어지고 말았네요.
얼마 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저는 여전히 제 감정과 가까워지는 것이 어렵습니다. 아직 도 저 스스로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이럴 때보면 나름대로 이성적이라고 믿고만 있었던 내 사고방식이 의심스럽습니다.
내로남불. 다들 잘 알고 있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입니다.이중적인 태 도를 비꼬는 비판적인 관용구지만 생각보다 누구도 이 한 문장에게서 벗어나기란 어렵습니다 . 누구나 다른 사람의 이중적인 면모가 드러나면 실망하면서, 자신의 이중적인 면모는 외면하 거나 아예 자각을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로남불을 대하는 태도조차도 심지어 내로 남불입니다.
좋은 감정들과 이성적인 생각들이 비교적 골고루 어우러져 내 사고방식을 이루고 있다고 느 끼는 지금이 되서야 나는, 이번에도 나의 내로남불에서 한 발치 떨어져서 대신에 조금은 감정 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의 내로남불을 인정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 둘. 셋. 떠오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
싫어하지는 않지만,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분명 거짓말이겠죠? 고양이나 개나, 정말 많은 사 람들한테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기만 해도 귀여운 동물들이라서 그런 것일 까요? 사실 다들 그렇게나 좋아하는 것처럼은 보여도, 좋아하는 이유가 딱히 명확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좋아할 때는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에 나는 아직도 고양이라는 동물과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나의 영역 안으로 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 중에는 특별한 이유없이 내 영역 안으로 들어와 활개 치는 것들도 많습니다. 아무래도 나라는 사람은 고양이한테 엄격한 무슨 다른 이유가 있나봅 니다. 이유없이 좋아하게 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쩌면 뚜렷한 이유없이 많은 이 들에게 사랑받는 고양이를 쉽게 좋아한다고 여기는 게 탐탁치 않기 때문일까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길목에 앉아있는 얼룩고양이 사진을 찍던 나의 내로남불은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탓인 것 같습니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좋아하는 시 구절이 한 두 개는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문장입니다. 이 시를 처음 읽 게 된 순간은 아마도 중고등학생 때, 국어 수업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아쉽습니다. ‘겨울은 강 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라는 문장에 대한 첫인상이 비유법 중 직유법의 대표적인 예시 중 하 나로 기억된다는 것 말입니다. 나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속으로 희미하게 떠오르는 단단 하고 강철로 된 화려한 무지개의 심상을 떠올립니다. 거칠고도 섬세한 아름다움이 묻어나고, 차가우면서도 따듯한 감각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올곧은 신념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 고, 순수한 이상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강철로 된 무지개를 놓고 갈피를 못잡는 나의
내로남불은 아마도 느낌. 같습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그래도 로맨스였으면 좋겠다.
나에 대한 글을 쓰면서 얻은 작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나를 알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공감이라는 두 글자에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돌고 돌아서 결국 공감이지만, 공감에 대해 예전하고는 생각하는 것도 목표로 하는 것도 달라졌습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나 를 마주했기때문만이 아닙니다. 내가 쓴 글들에서 무덤덤한 체 하면서 애둘러서 감정을 드러 내고 공감해주기를 원하는 나를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도 내로남불. 인정하기 힘든 나를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쓴 글에서도 발견하고 말았네 요. 그런데 이런 나에게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내가 나의 공감에게 바라는 바입니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타인이 공감할 수 있는 나를 찾고, 그 끝에는 내가 외면하고 멀리했던 나에 게 괜찮다고. 네 맘 다 안다고. 그렇게 웃어줄 수 있는 것이 나의 로맨스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