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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포 Dec 14. 2022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나는, 정다은

길거리를 걷고 있는 아이의 낯빛이 어둡습니다. 신발을 질질 끌며 축 처진 어깨 아래로 가방이 힘 없이 내려옵니다. 오늘 마지막 중간고사 시험이 있었고, 아이는 밤을 새서 공부하고 시험을 보고 돌아가는 길 입니다. 이번엔 나름 열심히 준비했다고 하더니, 또 잘 보지 못했나봅니다. 말 없이 고개를 처박고 걷는 아이는 보기와는 달리 속이 많이 시끄럽습니다.


아, 나 이번엔 솔직히 좀 괜찮았는데. 또 이렇게 허탕을 치다니. 내 인생 참 기구하다. 기구해! 왜 난 내가 노력한 만큼 돌려받지 못하는거지? 진짜 어이없어. 세상은 불공평해! 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만 잘 살아야해, 왜!


그때 지나가던 거지가 한 아이 앞에 멈춰 섭니다.


“학생..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런데, 혹시 저 앞 편의점에서 빵 하나만 사다줄 수 있는겠는가?”

“…네?”

“내가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래”


거지의 몸에서는 쓰레기같은 불쾌한 냄새가 났고, 거지 앞에 선 아이는 인상을 찡그린채 생각했습니다. 뭐지 이 거지는? 빨리 피해버리고 갈 길 가야겠다. 그런데 아이의 눈에 아른히 밟히는 거지의 인자한 미소가 발걸음을 쉬이 뗄 수 없게 합니다. 결국 마지못해 편의점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거지따위가 먹고싶은 빵의 취향따윈 없을테고 그냥 뭐든 쥐어주면 잘 먹을테니, 평소에 돈이 있으면 사먹지 않았을 단팥빵 하나를 대충 골라 손에 쥐고 계산대로 걸어갑니다.


“천팔백원 입니다.”


카드 리더기에 카드를 꽂았습니다. 인기척이 들려 고개를 돌려 문 밖을 바라보니 거지가 두 손을 모으고 아이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거지의 표정은 불쌍해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무미건조한 표정도 아니었습니다. 계산이 끝났다는 점원의 말에 다시 고개를 돌려 카드를 빼고 단팥빵을 챙겨 편의점을 나왔습니다. 문 앞에 서 있던 거지는 아이가 건네는 단팥빵을 받아들곤 그저 인자해보이는 미소지을 뿐, 아이의 예상처럼 허겁지겁 먹지는 않았습니다.


“...학생.”

“네?”

“…고마워.”


뜸 들이며 고맙다 말하는 거지의 그 표정이, 아이는 여전히 인자해보였습니다. 아이는 거지의 불쾌한 냄새도 싫었지만 왠지모르게 거지같지 않은 거지의 말투와 행동이 이상한 위화감을 주어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고맙다는 거지의 말에 대충 고개를 까딱하곤 황급히 자리를 떴습니다. 아이는 그제서야 내가 학원을 가고 있던 중임을 떠올리며 아차 싶은 마음에 빠르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사실 이건 좋은 일을 한건데, 괜시리 마음이 불편해지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건 다 그 거지 때문입니다. 그 거지새끼 때문에 안그래도 오늘 내 마음이 울적해서 기분이 영 아니었는데, 인지 부조화를 일으키는 거지의 행동과 말투와 표정에 오늘 하루를 포기해버리고싶은 마음 마저 듭니다. 하지만 자기 기분대로 살아온 적 없었던 아이는 어쩔 수 없이 학원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다음 날 입니다.


아이는 아침 7시에 일어나 씻고 교복을 입습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집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대충 끼니 때울 것을 찾아 우겨넣습니다. 음.. 열쇠. 핸드폰. 이어폰? 아, 가방에 있겠고. 그리고 음.. 오늘 자습 시간이 많으니까, 문제집 … 챙겼고. 연습장이랑, 아! 어제 볼펜 다 썼었었지 참. 새 거 하나 챙기고. 음.. 뭐, 다 챙겼겠, 아, 충전기 충전기.


‘띵동’


가방을 싸던 아이는 갑자기 들리는 현관문 종소리에 흠칫 하고 놀랐습니다. 이 시간에 찾아 올 사람이 있나? 벽에 걸린 전자 시계는 ‘8:04’으로 빨갛게 빛나고 있습니다. 도시가스 아줌마인가? 우체국 아저씨인가? 나 빨리 나가야하는데.. 급한 마음에 벌컥 문을 열어보니 우체국 아저씨가 서 있습니다. 우체국 아저씨는 항상 무표정으로 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곤 제 이름 석자를 부릅니다. 세 번 정도 시도하다가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그때부터 초인종 소리에 공백이 생기지 않을만큼 집요하게 눌러댑니다. 오늘은 운 좋게 한 번에 문을 연 것 입니다. 아저씨는 아이에게 큰 우편 봉투를 건네고 아이의 이름 세 자를 사인받고 계단을 올라 윗 층으로 갔습니다.


아이는 A4용지 한 장이 들어가고도 넉넉한 큰 우편 봉투를 받아들었습니다.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지 않은, 풀로 깔끔하게 입구를 봉한 봉투입니다. 우편 봉투 앞 면에는 보낸 사람의 주소와 어떤 사람의 이름 석자가 크게 박혀 있었습니다. 아이는 집 안에서 봉투를 들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눈을 들어 시계를 힐끔 보았습니다.


‘8:11’


아씨, 지각이다. 이 봉투 안에 무엇이 담겨있을지 궁금했던 아이는 이거라도 빨리 보고가야겠어서 급히 봉투 입구를 거칠게 뜯어냅니다. 크고 두툼했던 우편 봉투 안에서 아이의 시선에서는 복잡해보이는 서류들이 있었습니다. 이게 무엇인지 대충 살펴보면서 봉투 안을 헤집고 있었는데, 어? 이게 뭐지? 편지 한 통을 발견합니다. 아이는 편지만 꺼내들고 남은 큰 우편 봉투를 식탁 위로 던졌습니다.


‘ 학생, 보세요.

학생이 이 우편을 받게 되면 많이 놀랐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어제 학생에게 빵 한 봉지를 원했던 그 노인네 입니다.

늙어서 망령이 들었는지, 내 자식들은 하나같이 그러지 말라고 해도

나는 여전히 떠돌이같이 사는게 좋습니다.

내 젊은이던 시절에 떠돌이같이 사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나이가 조금 들어선 철이 들고, 보살펴야할 것이 늘어나면서 미뤄둔 것들이지요.

그래서 이따금씩 살면서 생각나는 동네들을 둘러보러 마누라 몰래 외출을 하는데,

그럴때마다 길을 잃어선 며칠을 노상하게 됩니다.

학생, 고맙습니다.

이런 노인네에게 은혜를 갚게 해주십시요.

참, 감사합니다. ’


아이는 편지를 읽으며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던 어제의 거지를 떠올립니다. 묘한 기분이 듭니다. 아이는 다시금 시계를 힐끔 보았습니다.


‘8:23’


이미 지각이네. …아, 1교시 체육이라서 괜찮아. 아이는 방금 읽은 편지를 뒤집어도 보고, 접혀 있던대로 다시 접어보다가, 다시 펼쳐서 한 번 더 읽어봅니다. 아이는 편지를 코에 가져다대고 냄새를 맡았습니다. 종이는 종이의 은은한 향을 냈습니다. 이게 그 쓰레기 같은 냄새를 냈던 그 거지가 쓴 편지라는거지? 흠. 아이는 한 번 더 냄새를 맡아봅니다. 




“하, 뭘하고 있는거지. 참. 어휴, 적당히 해라, 적당히 해.”


한숨을 짓고 중얼거렸습니다. 오래 걷게되거나, 어디를 가려고 버스만 탔다 하면 이런 망상에 빠집니다. 시작은 좋았으나, 결국은 개꿈입니다. 갑자기 냄새는 왜 맡는거야. 내 마음대로 한 상상인데도 그 속의 내 행동은 이해되질 않습니다. 이렇게 망상을 하다가 내가 현실적으로 생각하기로 좀 이해가 되지 않다 싶으면 헛웃음 치면서 생각에서 벗어납니다. 그러고나선 왜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었는지, 이 시간에 다른 걸 했어도 굉장히 생산적이었겠다며 스스로를 비아냥 댑니다.


흠. 아쉽지만 저를 포함한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을 일 입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난 거지 노인을 돕고 보은을 받아 부자가 되는 상상을 하다니, 이렇게 미련하고 뻔하고 재미없는 상상이 어딨나요? 불보듯 뻔합니다. 아이는 나름 열심히 했겠지, 누군가에 비해서 열심히 하지 않았을 겁니다. 졸리면 갑자기 안하던 밤 산책도 하고, 지루하면 졸음을 이기겠다며 핸드폰도 하고, 배고프면 집중이 안된다고 냉장고 주변을 어슬렁거렸을 겁니다. 에휴, 미련하다 미련해. 또 대가 없이 성공을 바랬군. 학교로 가는 이 길에 당장에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만 떠오르는 나머지, 지금 당장 내 상황을 해결해줄 돈이라도 갖고싶었나? 아. 오늘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애매한 기상 예보에 대충 후리스에 목도리만 두르고 나왔는데 칼바람에 몸이 으슬으슬 떨립니다. 눈살을 찡그리며 올려다본 하늘이 새파랗습니다. 괜히 째려봅니다. 너 밑에서 복잡하게 살아가는 내 마음은 하나도 모르고, 이 해맑은 녀석아!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저는 게으른 사람인지라, 이런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얘, 세상에 공짜가 어딨니? 원래 받은 만큼 일 하는거야. 너만 공부하니? 너만 일 해? 너만 돈 벌어? 왜 다 죽어가는 소리를 하니? 세상이 다 네 맘대로 되는 것 같아?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다들 제 속에 귀한 것 한 두가지는 당연하게 내놓고 살아가는 세상이야. 너도 이제 네 게으름은 좀 포기하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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