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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포 Dec 14. 2022

For real

나는, 최민석

1.


술이나 한잔 하고, 친구와 체육 공원을 둥글게 걷는다. 남루한 차림의 한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혹시 지금 당신들 말고 여기에 누구 있어요?”


순식간에 취기가 싹 가신다. 그건 내 친구도 마찬가지인 듯, 정신을 바짝 차린 표정으로 바뀐다. 남자는 말을 이어간다.


“내가 저기에 좋은 글을 계속 적어서 올려 놨는데, 누가 자꾸 그걸 부숴요. 혹시 당신들이 그랬어요?”


남자가 가리킨 그 곳은 어두운 체육공원 돌 계단 한 켠이었다.


“아니요, 선생님. 저희는 방금 여기 도착해서 이제 막 걷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자꾸 누가 이걸 부숴 놓는 거야. 이 동네 사람들 원래부터 잘 못살고, 글도 안 읽어서 내가 시작한 일이예요. 근데 이걸 왜 자꾸 부수냐는 말이야. 8년 째 하고 있어요. 내가 이걸 혼자 말이야. 예전에 한 중학생이 이런 걸 잡았었단 말이야. 내가 그 학생하고 지금 부순 학생한테 돈 내놓으라고 할 사람이야? 아니란 말이야. 못사는 이 동네 사람들 글이나 좀 읽으라고 시작한 일인데 이러면 내가 하고싶겠냐고. 내가 당신들한테 다가올 때 싸가지 없게 굴고 그러지 않았잖아. 나는 그냥 이 동네가 발전했으면 좋겠는 마음에 한 거라고.”


남자의 말이 길어진다. 나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간다. 내 친구는 맞장구 쳐주는 것이 빨리 보낼 수 있는 답이라 생각하나 보다. 욕설을 섞어가며 남자의 말에 맞장구 쳐준다.


“진짜 시발놈들이네요. 뭐 그런 병신들이 다 있지? 좋은 일 하시려는 건데, 왜 자기 것도 아닌데 막 부수고, 의도도 모르면서 말이야.”


남자는 자신의 말에 맞장구 쳐주는 친구가 좋으면서도, 결국 우리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 점점 명확해지자 자신이 가리킨 그 자리로 돌아갈 모양새이다.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근데 진짜 누가 부순 거야. 내가 이 동네에서 벌써 8년 째……”


옅어 지는 목소리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훤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체육 공원을 둥글게 걷기 시작한다. 친구는 방금까지도 맞장구 쳤던 그 얘기는 까맣게 잊고, 자신이 하던 얘기를 이어간다.


“그래서 내가 그 애랑 잘 안될 거 같아. 내가 먼저 들이댄 것도 맞고, 데이트하는 것도 다 좋은데 말이야. 근데 같이 있으면 재미도 없고, 억지로 관계가 이어지는 거 같아.”


친구의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는다. 나는 그 남자를 생각할 뿐이다. 좋은 의도도 맞고, 그가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공유하기를 바란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그는 진짜 이 동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언인지 생각해보았을까?


내가 사는 동네는 언제부터 못사는 동네가 되었을까? 남자가 좋은 글을 적어서 올린 8년 전부터? 그보다 훨씬 전부터? 근데 남자는 왜 굳이 8년 전부터 그런 일을 시작한 거지? 그리고 사람들이 유심히 보고, 감명을 받기를 바랬다면, 더 밝은 곳이 이 체육 공원에 널렸는데, 왜 굳이 그런 어두침침한 곳에 놓았을까? 그래서 진짜 그 사람이 하고 싶었던 게 뭐지?


다시 친구의 얘기가 들린다.


“어떻게 해도 내가 쓰레기가 될 걸 아니까, 나는 그냥 그 애하고 연락하고 만나는 거 그만 할래. 지겨워 죽겠어.”

“야 근데 아까 그 아저씨 진짜 바라고 저런 구석에다가 글 같은 걸 놓으신 걸까?

”그냥 본인이 하고싶은 거 하신 거 아니야? 근데 이 동네는 저런 영웅적인 사람이 필요가 없어. 해봐야 자기만 계속 손해보는 동네가 우리 동네야. 아니 그것보다 나 그 애랑 연락 이제 안할거라고.”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긴 하지만, 사실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영웅이지도 않고,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다가 손해를 본 사람이니까. 사람들이 진짜 무엇을 바라는지 조차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글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욕구를 표출한 것이니까. 그래서 진짜가 뭔데? 너는 아까 왜 그러면 그 사람의 말에 그렇게까지 감정적으로. 맞장구를 쳐준거야? 너는 그 사람이 진짜 뭘 바라는지를 알고 그랬단 말이야?


여러 말이 어금니 근처에 씹히지만 그대로 삼키고 친구에 말에 대답을 해준다.


“야 이 병신아 내가 연락하지 말라고 했잖아. 꼭 넌 하고 후회하더라. 됐고 소주나 더 마시러 가자. 저 앞에 곱창집 고고.”

“이 새끼 이제 말이 통하네. 아까는 내가 샀으니까 지금 거는 네가 사라. 존나 비싼 거 먹어야지 양 같은 거.”


“가자.”


2.


집에서 도망치면


세상엔 재미난 것들이 가득 있고

재미난 사람들도 가득 있고

재미난 얘기들도 가득 있고


달라진 계절에 나의 새로운 모습이 거울에 비추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결국엔 집에 가야할 시간이라는 걸 깨닫고

어기적 집 쪽으로 발을 붙이면


골목 마다 집집의 음식 냄새가 나를 괴롭히고

그들의 이야기를 굳이 창문 밖으로 내뱉고

몇 년째 똑같이 개인 택시를 닦는 아저씨를 거치고


초록 대문이 나를 째려보는 골목에 도착해

비밀번호를 누르고

반주하시는 부모님과 인사를 나눈 후


방에 웃으며 눕는다.


3.


 A曰

그냥 멋지게 살고 싶다니까. 그거 말고 아무것도 없는데 자꾸 나한테 뭘 바라는 거야. 멋지게 살다 보면 재밌는 것도 나오고, 자연스럽게 돈도 따라오지 않겠어? 근데 자꾸 나한테 너의 방향은 뭐니, 어쩌니,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변에 사람들도 많고, 적당히 음주가무도 즐기고, 여행도 가고, 좀 더 지적이고, 그게 멋진 삶이지. 다들 그러자고 열심히 사는 거 아니야?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삶. 나도 마찬가지야. 남들이 가지는 거보다 좀 더 좋은 거 가지고, 그들이 누리는 것보다 최소 뒤쳐지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머리가 터질만큼 빡빡하게 살고, 점점 졸업이 늦춰지는 것도 좋아. 지금은 충분히 남들이 보기에 꽤나 멋들어지게 살고 있잖아? 나는 그렇게만 살면 족해.

  앞으로도 꾸준하게, 멋지게 주변에 사람 많고, 보기 좋게, 내가 살아갔으면 좋겠어.


4.


B曰

밥도 싼 게 너무 좋아. 어차피 소화되면 다 똑같잖아. 굳이 사람이 많을 필요도 없어. 있으면 돈만 쓰고, 내 시간도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못쓰고, 심지어 피곤해. 밥도 좀 게걸스럽게 빨리 먹는게 좋아. 책 읽는 것도 너무 싫어. 그냥 유튜브나 넷플릭스만 평생 보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 아침에도 늦게 일어나고, 인턴이라든지, 취업이라든지, 대학원이라든지, 그냥 딱 내가 먹고 살 수 있을 만큼만 해내고 싶어. 더 많은 걸 가지면 걱정만 늘어날 거야. 길고 가늘게 살자는 아빠의 말에 동의해. 딱 그렇게 살고 싶어. 큰 꿈이나 원대한 목표를 나에게 묻지마. 그저 이렇게 살아가는 거 조차 지쳐가고, 여기서 더 무언가를 해내기엔 나는 너무 작은 사람이야.

앞으로도 이렇게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해내며 내가 살아갔으면 좋겠어.


5.

A+B=?

  그래서 진짜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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