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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포 Dec 14. 2022

강박

나는, 오현주

1.

선생님. 제 병을 애써 떠올리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죠. 어제는 책을 한 권 샀습니다. 줄자로 책의 높이를 재 보았을 때 20cm였습니다. 제 아홉 칸짜리 책꽂이의 8번 칸을 채우기 딱 좋은 높이였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종이 포장을 벗기고 꽂아보니 메마른 땅에 누가 삽으로 푹 파낸 듯 책 움푹 들어가 버리지 뭡니까. 종이 포장이 1cm를 가려버렸던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20cm인 줄 알고 구매한 이 책은 19cm였습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열기를 참을 수 없어 종이 포장을 구기었습니다. 구겨진 흔적 사이로 보이는, 책의 추천 문구인 듯한 “이 책을 읽으며, 여유를 가져보세요!” 이 한 문장이 저를 비웃는 것 같았습니다. 짜증을 꾹 누르고 19cm의 책을 꽂는 9번 칸에 꽂으려 했는데 이미 꽉 차서 더 이상 책이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망할. 입에 맴도는 욕설을 곱씹으며 책상 위에 책을 아무렇게나 던져 버렸습니다. 예, 선생님. 저는 제 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24cm의 책을 꽂는 5번 칸은 한참 비어 있는데 왜 저는 그곳에 꽂기가 싫을까요. 지긋지긋한 강박에 대한 반항이었는지, 다시 책을 들어 5번 칸에 꽂았습니다. 신경이 쓰이긴 해도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어젯밤이었습니다. 새벽 2시쯤, 저는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곗바늘이 미친 듯이 돌아가는 째깍째깍 소리가 절 깨웠습니다. 저는, 시곗바늘 초침 소리에 맞춰 움직여야 했습니다. 이 시곗바늘 소리를 어떻게든 없애고 싶어서 이가 깨질듯한 차가운 물을 한 잔 들이켰습니다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초침 소리에 맞춘 걸음으로 거실을 빠르게 돌다가 제 발걸음이 멈춘 곳은 책꽂이 앞이었습니다. 5번 칸에 놓인 19cm의 책을 꺼내 다시 책상 위에 내팽개쳤습니다. 아, 선생님. 그제야 초침 소리가 멈추지 뭡니까. 선생님, 제 병은 심각한 것 같습니다. 이 실체 없는 시곗바늘 소리는 어디서 들리는 겁니까? 공황장애에 걸린 사람들은 발작이 오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고 하는데, 왜 제 강박증은 시계를 움직이는 겁니까? 선생님. 저는 제 병을 어떻게든 없애고 싶습니다. 제 귓가에 박혀 있는 이 시계를 뜯어내 버리고 싶습니다. 선생님, 그 19cm의 책을 도무지 집에 둘 수 없습니다. 편지와 함께 보내겠습니다. 어리석은 환자가 보내는 선물이라 생각하시고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52년 4월 9일


2. 

친구에게. 

 “너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 같아.” 

 그날 편의점 앞에서 네가 내가 해준 말이다. 흘러가듯 꺼낸 말이기에, 아마 너는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열다섯의 우리에게 늦었던 11시라는 시간, 편의점 앞의 나무 벤치에 앉아 우리는 꾹꾹 담아놓은 모든 말을 내뱉었다. 우리는 서로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서도 모른 척하는 사이였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한걸음 뒤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정발중학교 2층 방송반 창가에서 새우깡을 까먹던 어느 오후 다섯 시, 우리는 저 멀리 동아아파트 뒤편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고요를 삼켰다. 

 그날 편의점 앞에서 우리가 나눈 대화는 그간 우리가 삼켜온 고요들에 묻혔다. 같은 초등학교를 나와, 같은 중학교에 가고, 같은 고등학교에 가는 동안 우리는 고요 속에 살았다. 나의 서투른 어린 시절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너기에, 다시 너와 편의점 앞에 앉으면 나의 숨기고 싶은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 같아 두렵다. 그날 내게 해준 말,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 같다는 말. 그 말은 나에게 벼락처럼 꽂혀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수십 개의 가면을 쓰고 있던 나를 투시해 나의 알맹이를 잡아내는 너. 그런 너의 얼굴에는 흐린 웃음이 어린다. 가볍게 던진 너의 말에, 나는 지난 5년간 편의점에 들르면 흐린 웃음이 눈가에 맺히는 사람이 되었다. 


2022년 7월 9일


3. 

 선생님, 한동안 편지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셨습니다. 도무지 편지를 쓸 정신이 없었고, 미친 듯이 돌아가는 시곗바늘 소리가 한동안 멈추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동시에 많은 일이 생겼고, 잊었던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 덕에 선생님께 말씀드릴 내용도 많이 생겼습니다. 치매에 걸리신 어머니를 돌보며 저도 모르게 짜증 섞인 말을 내뱉곤 합니다. 점점 어린애가 되어가는 당신께 나는 잊힌 존재가 되어갑니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는 쉰이 된 지금의 나는 없습니다. 일곱 살의 어린 아들이 있을 뿐이죠. 저를 보고 모르는 사람이라며 두려워하고, 강도가 집에 들어왔다며 신고해야겠다고 전화기를 들고 112를 누르는 어머니의 손을 거칠게 붙잡고 화를 냈습니다. 왜 나를 잊어버리느냐고- 시곗바늘 소리도 나를 미치게 하는데 대체 엄마는 왜 그러냐고-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른 화를 다 던져버렸습니다. 어머니는 덜덜 떨며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어린아이가 된 어머니라 믿고 내뱉은 모진 말들이 다시 저의 귀에 꽂혔습니다. 털썩 주저앉아 가만히 서 있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미안하다고 울었습니다. 어머니는 다시 한번 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어머니는 발작하듯 소리를 지르다가, 치맛자락을 붙잡은 저의 손을 뿌맃리 치고는 아버지의 서재로 뛰어갑니다. “-야, 안돼! 그거 먹으면 안 돼!”를 외치며 달려가는 어머니. 어머니의 새된 비명에 수십 년간 잊고 지냈던 어느 날의 기억이 눈물에 맺혀 흘렀습니다. 

 선생님께서 어이가 없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네, 저는 시계를 먹었습니다. 제가 쓰고도 참 어이없는 문장입니다. 사람이 시계를 먹었다니. 네, 문장 그대로 저는 시계를 목구멍으로 넘겼습니다. 제 아버지의 취미는 시계를 분해하고 또 조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서재에는 시계를 조립하는 공구와 시계 부품이 널려 있었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취미를 사랑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아버지가 선물한 시계를 당신 몸처럼 귀하게 여기시는 걸 보아 사랑하셨던 것이겠죠. 아마 그러니 제가 일곱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서재가 비워지지 않은 채 늘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을 겁니다. 언젠가, 아마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 지난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 몰래 아버지 서재에 들어갔습니다. 어머니는 공구가 위험하다며 절 아버지 서재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만 저를 위해 사두신 동화책, 귀엽게 생긴 장난감은 제 흥미를 끌지 못했습니다. 저는 언젠가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서 구경했던 시계 부품들을 기억합니다. 매끈한 나무 상자 위에 올려두신 시침, 분침, 초침. 길이가 다른 세 바늘의 역할을 저는 궁금해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아버지는 귀찮으셨는지 시침은 거북이처럼 느리고, 분침은 개처럼 빠르며, 초침은 치타처럼 순식간에 지나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혼자 들어간 아버지의 서재는 여전히 시계가 가득했습니다. 아버지의 책상 아래에 있던 시계 공구 상자를 밟고 올라가 늘 아버지가 앉아계시던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무릎을 꿇은 것에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편하게 앉아서는 작은 체구 탓에 아버지의 책상을 훤히 볼 수가 없었으니까요. 제 기억에는 제가 무언가에 홀린 듯, 빼빼로를 똑똑 부러뜨려 먹듯 시곗바늘을 먹었습니다. 아무 맛도 없는 그걸 어찌하여 먹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곗바늘을 전부 삼키고 시계 본체를 손에 쥐고 혀를 대보는 순간 어머니가 장난감을 던져두고 사라진 저를 찾아 아버지의 서재로 들어왔습니다. 작은 쇳덩어리를 입에 물고 있는 어린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비명을 지르며 쇳덩어리를 뺏어 던지고 꼬물거리는 나의 등짝에 불을 지르기 바빴습니다. 

 아, 잊힌 기억으로 나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곗바늘 소리 말입니다. 선생님, 제 심장은 시계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시곗바늘을 움직여야 할 본체는 제가 미처 삼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동력을 잃은 시곗바늘이 온몸을 떠돌다 내 심장에 꽂혀 버린 듯합니다. 저를 미치게 했던 시곗바늘 소리는 나의 심장에서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만약 제 심장을 도려내면, 시곗바늘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요. 어머니를 위한 죽을 만들며 애호박을 잘게 썰다가 문득 이 식칼로 심장을 도려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제가 두려워 편지를 씁니다. 


2052년 6월 29일 


4. 

내 오랜 친구에게.

 30년 전 너에게 쓴 편지를 네가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편지쓰기를 즐기는 너의 친구라, 지난 30년간 쌓여온 수십 통의 편지가 다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네가 결혼한 이후로는 전처럼 보드게임 카페에서 놀지도, 홍대의 술집에서 시끌벅적하게 술을 마시지도 못했다. 그저 어린 시절 우리의 동네로 돌아가 익숙한 그 포차에서 소주 한잔을 나눌 뿐이었지. 물론 이제는 너의 무덤가에 앉아 소주를 따라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여하튼, 네가 짚어준 나의 알맹이는 너무나 보잘것없어서, 너를 찾는 건 30년 전의 편의점 앞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나는 요즘 매일 자살 시도를 하고 있다. 어머니가 잠자리에 드시고 나의 늦은 저녁을 해 먹기 위해 칼을 들면 시곗바늘 소리가 내 온몸을 강타한다. 늘 귓가에서 맴도는 초침, 책장을 마주하면 끓어오르듯 날 조이는 분침과 달랐다. 아, 이게 시침이구나 싶었다. 한번 탁하고 움직인 시침에 홀려 나도 모르게 칼을 들고 심장 부근을 찌른다. 입고 있는 하얀 티셔츠 위로 붉은 핏방울이 톡 하고 터져 나오면 칼을 놓친다. 핏방울에 현기증이 나고, 시침의 울림이 온몸에 퍼져 비틀거리며 주저앉는다. 그렇게 한 달을 살고 있다. 심장을 칼로 도려내고 싶다는 나의 욕망이 커질수록 스스로가 두려워진다. 편의점 앞에서 너를 보고 싶다. 이미 세상을 떠난 네가, 홀로 소주를 들이켜는 내 앞에 와주었으면 한다.


2052년 7월 30일


5. 

선생님, 왜 제게 답장을 보내지 않으십니까? 심장이 시계라는 환자는 선생님도 대처하기 곤란하시겠죠. 어쩌면 제가 선생님을 놀리는 걸로 받아들이셨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매일 가슴을 찌르는 환자는 선생님도 무서우실 겁니다. 선생님, 저는 두려움에 미쳐가고 있습니다. 매일 칼로 심장을 찌르고 있으니까 두렵지- 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죽는 건 두렵지 않습니다. 참 이상해요. 얼마 전 어머니가 차에 치여 돌아가신 이후로 내 삶의 모든 과제를 해결한 듯한 기분이 듭니다. 유독 따사로웠던 그날 오후, 베란다의 건조대에 가슴께가 붉은 꽃으로 물든 셔츠를 널고 있었습니다. 지워지지 않는 붉은 흔적을 매만지며 베란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데 누군가 위험천만하게 차가 쌩쌩 지나다니는 도로 위에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 트럭이 오고 있는데, 당장 창문을 열고 피하라고 외치고 싶었는데, 익숙한 베이지색 가디건과 검붉은색의 털모자에 온몸이 굳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트럭에 받혀 날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에 아물고 있던 가슴의 상처에서 핏방울이 배어 나왔습니다. 무심코 가슴께를 손으로 훔치니, 손에 붉은 꽃밭이 피어납니다. 그 꽃밭에서 알지도 못하는 해방감이 아롱아롱 피어올랐습니다.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니 그 아롱아롱 피어오른 해방감의 냄새가 마치 썩은 귤의 냄새처럼 느껴집니다. 창문을 열고 아무리 환기를 시켜도 썩은 귤 냄새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시곗바늘 소리도 여전합니다. 초침과 분침도 더 빨라졌고, 하루에 한 번 움직일까 말까 했던 시침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몸을 울립니다. 

 선생님, 두렵습니다.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닙니다. 심장을 도려내고도 이 개같은 째깍거림과 거지같은 썩은 귤 냄새가 사라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게 지금껏 내가 가슴에 칼을 대어 상처를 내고도 더 깊게 쑤시지 못한 이유였습니다. 죽음조차 시곗바늘 소리를 죽이지 못할까 봐, 육신의 부패조차 후각을 마비시키지 못할까봐 살았습니다. 지금 짊어진 짐들에 짓눌려 삶 위에서 방황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만약 죽음이 나의 모든 짐을 떠안고 사라질 수 있다면, 저는 당장이라도 죽음을 선택할 것입니다. 답장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여도 저는 계속 선생님께 편지를 보낼 겁니다. 아무에게도 말 못하는 나의 자해를 누군가에게는 털어놓고 싶습니다. 답을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죄송합니다.


2052년 10월 3일


6.                               

「 2017년 고요가 깨진 어느 날 밤, 편의점 앞에서 나눈 대화 」


“야, 너는 진짜 뭐에 쫓기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니까?”   

내가 뭐. 


“솔직히 말해봐. 너 맨날 목표 없다, 꿈 없다 이 지랄하지만 나한테 숨기는 거지? 너 뭔가 큰 꿈을 가지고 있는 거 아님?”   

아 미친놈아, 아니라고. 


“너는 좀 여유를 가지고 살 필요가 있어. 대체 매일매일 계획 세우고 그 네모 칸에 체크해가면서 사는 게 괜찮은 삶이냐? 너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며.”   

나는 행복해. 그렇게 네모 칸이 다 체크 표시로 채워지면 성취감이 든다니까? 그게 내 행복이야. 그게 내 삶의 연료 같은 존재라고.


“참나, 그러다가 너 그 성취감에 목매는 수가 있어. 너 언젠가 너의 배터리가 다 돼서 쉬어야 하면 어떡할래. 그때는 성취감도 지금만큼 안 생길걸? 그러면 계속 기름 다 떨어진 차 마냥 덜덜거리다가 죽을 거냐?”   

야, 차마다 다 연료가 다른 거야. 우리 엄마 차는 휘발유인데 아빠 차는 경유라고. 모든 사람은 각자 다 다른 연료로 살아가잖아. 네 연료가 휴식일지도 몰라도 나는 아니야.


“응, 개소리야. 아, 휘발유 차에 경유 넣으면 차 진짜 개판 되거든? 다 수리해야 해.    

뭔 소리야. 그럼 내 연료가 성취감이 아니라는 거야 지금?


”아이씨, 뭐 네가 그렇다면 맞겠지. 근데 차에 엔진오일 갈아야 하는 거 알지? 너도 항상 주기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좀 쉬어야 해. 아니면 그대로 퍼져버린다니까? 처음엔 괜찮겠지. 수리 맡기면 되니까. 근데 그게 계속 괜찮겠냐고. 그게 반복되면 폐차장 행이야“   

몰라. 그건 나중에 가서 생각할래. 나는 그렇게 살 거야. 


”너 그러면 준희 쌤이 준 활동지에도 설마 ‘매일매일 쫓기듯이 살자’ 이런 식으로 적었냐?   

내가 미쳤냐. 그렇게 적게.


“그렇지, 네가 그 정도의 미친새끼는 아니지. 그래서 뭐라고 적었는데?”   

바쁘게 살자


”아... 너 미친새끼 맞네. 어떻게 바쁘게 살자가 네 가치관이냐? 너 친구 없는 이유가 있어.“   

갑자기 그 얘기가 또 왜 나와?


”너 그거 병이야, 병. 그 바쁘게 살자의 ‘바쁨’에 친구가 있긴 하냐? 아... 하긴. 친구가 한턱 쏘겠다고 엽떡 먹자고 하는데도 지 할 일 있다고 집에 가는 게 너니까. 너는 그래서 친구가 없는 거야“   

걍 너랑 나랑 성격이 다른 거라니까? 너처럼 모든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는 게 아니라, 몇 명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은 거라고. 맨날 친구 없다고 뭐라 하고 앉았어. 나도 친구 있어. 너도 있고, 정원이, 민준이, 윤아, 연수, 소혜 다 친하잖아?


“... 다 방송부잖아. 그중에라도, 너 나 말고 나만큼 친한 사람 또 있어?”   

... 없지. 그래도 너 있잖아.


“하, 내가 네 옆에 평생 있냐?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러잖냐. 한 명이라도 더 친해져 봐.”   

아 몰라. 


“여하튼 그니까 너 그 문장 고쳐서 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여유롭게 사는 삶을 꿈꾼다 뭐 이런 식으로라도 써서 내.”   

됐어, 이미 냈거든? 나는 바쁘게 살거야. 여유가 밥 먹여주냐.



7. 

친구에게.

너의 말이 옳더라. 처음엔 내가 다 옳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너의 말이 계속 떠오르는 이유는, 너의 말이 나의 정곡을 찔렀기 떄때문이겠지. 나의 삶에는 조금의 휴식이 필요했다. 중학교 국어 수업 중 각자의 꿈과 가치관을 적어내는 활동지에 ”바쁘게 살자“라고 적었다. 그때는 내가 옳은 줄 알았다. 너의 말은 기억 저편으로 떠넘겼다. 그런데, 네가 맞았나 보다. 나의 연료는 성취감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단지 그게 너무나 효율이 높아서 맞는 것처럼 보였을 뿐, 부작용이 너무 많았으니까. ”바쁘게 살자“고 적어냈던 나의 그 문장은 너무나 잘못되었다. 열다섯의 그날 밤으로 돌아가 지금이라도 고쳐 쓰고 싶다. 그런데, 나, 너무 멀리 왔나 봐. 뭐라고 고쳐 써야 할지 모르겠어.


2037년 11월 13일


8. 

선생님, 내일은 제 가슴에서 피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오늘은 꽤 깊이 찔렀습니다만, 핏방울이 조금 흘렀을 뿐입니다. 솔직히 헷갈립니다. 과연 핏방울이었는지, 삶의 무게에 짓눌린 나의 터질 것 같은 눈알에서 흐르는 피눈물이었는지. 저는 내일도 오늘처럼 가슴을 찌를 겁니다. 또다시 심장을 도려내려고 칼을 쥘 것입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흰 셔츠를 물들인 핏방울을 보며 칼을 놓쳐야 하는데- 내 몸을 강타한 시침의 울림에 비틀대며 주저앉아야 하는데- 아, 선생님. 이제 제 가슴에는 더 이상 피가 없습니다. 저는 내일 죽게 될 겁니다. 

아아, 선생님.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지 말아 주십시오. 어떻게 사람 몸을 찌르는 데 피가 나오지 않느냐고 웃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느 순간부터 저는 사람이 아니게 된 것 같습니다. 예, 맞아요. 저는 어느덧 시계가 된 것 같습니다. 어느 날부터 가슴을 찌르는 것이 무섭지 않았습니다. 핏방울을 칼끝에 맺히게 하는 이 잔인한 일이 습관이 되어 무감각해진 겁니다. 아마 제가 시계이기 때문에, 그 어떤 충격에도 불구하고 째깍째깍 흘러가야 하는 시계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릅니다. 선생님, 저는 지금 시침의 거대한 울림이 찾아오기를 몸을 떨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게 마지막 편지가 되길 바랍니다. 저를 좇는 시곗바늘 소리와 코끝에 맴도는 썩은 귤 냄새에서 벗어날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2052년 12월 26일


9.

내 심장에 박힌 시계를 위하여 몇 줄 적는다.

나에겐 한 방울의 피도, 이제 남은 건 하나도 없어.

내 심장을 찔러야 해, 마지막 발악을 위해.

난 죽고, 너도 죽어. 


10. 

심장을 손에 쥐었다. 

심장에 꽂혀있는 바늘 세 개가 보인다. 

바늘 세 개를 뽑아내 삼키는 대신 피로 얼룩진 오른손에 꾹 쥐었다.

숨이 멎어온다. 흐려지는 시야를 비집고 그날의 편의점 앞이 보인다.

아, 그날 나는 나의 문장을 고쳤어야 했다.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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