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적당한 인간관계가 좋습니다만

'적당히'라는 말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약간 부정적인 뉘앙스도 있는 것 같다.


"그쯤 하면 됐어. 이제 그만 (일을) 적당히 마무리해"

"가서 적당히 (돈) 좀 챙겨주고 와"

"말할 때 적당히 (기분) 좀 맞춰줘"


하지만 정말 '적당히'가 필요할 때가 있다.


라면 끓일 때 물은 적당히 넣어야 제맛이고, 역기는 적당히 들어야 근육이 손상 없이 성장한다. 적당히 일해야 직무소진(Burning out)을 피할 수 있고, 적당히 사랑해야 스토커란 소릴 안 듣는다. 목재를 접합할 때도 일부러 적당히 틈을 줘야 한다. 나중에 수분 때문에 목재가 팽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적당히가 가장 중요한 건 '인간관계'다.


혜님 스님도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인간관계는 난로 같아야 한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게"



난로에 너무 가까우면 데일 수 있고 너무 멀면 따뜻함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너무 가깝게 지내면 사람에 데일수 있고 너무 멀면 관계 자체가 소원해진다.


현악기의 줄들이 함께 하지만 적당히 떨어져 있어 서로 부딪히지 않고 제소리를 낼 수 있다. 집의 기둥들이 함께 하지만 일정하게 거리를 두기에 각자 지붕을 안전하게 떠 받힐 수 있다.


그뿐인가. 알고 보면 우리가 지구에서 살 수 있는 것도 지구가 태양과 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유진 서넌(Eugene Cernan)은 1972년 달을 밟은 우주인이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지구는 우주의 오아시스다"


맞는 말이다.


태양계엔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의 위성들이 차례로 줄 서 있다. 이 중에서 지구에서만 유일하게 생명체가 살 수 있다. 금성은 너무 뜨거워서 못살고 해왕성은 너무 추워 못 산다.

(금성의 평균온도는 457°C, 해왕성의 평균온도는 -218°C, 자료출처: 나무 위키 https://namu.wiki)


지구는 그 적당한 거리 속에 우리를 살게 한다. 지구가 태양에 적당히 거리를 두어 생명체가 살게 하듯 우리도 서로 간에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우리끼리 잘 살 수 있다.


하물며 가족도 마찬가지다. 적당히 떨어지면 좋다가도 하루 종일 함께 붙어 있을 때 다툰다. 함께이지만 각자 만의 시간을 가질 때 관계가 더욱 돈독해짐을 느낀다. 매일 함께 하면 그 소중함을 잘 모른다. 떨어져 봐야 소중함을 알고 떨어져 봐야 보고 싶은 줄 안다. 가까우면서도 멀리, 멀리 있으면서도 가깝게 있고 싶다. 나의 사람들과 그렇게 지내고 싶다.


우리가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지구가 태양 주위를 때론 가깝게 때론 멀게 돌기 때문이다. 만약 지구가 항상 같은 거리로 태양 곁에 있다면 지구의 모든 나라가 추운 곳은 항상 춥고 더운 곳은 항상 더웠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에게 너무 의존하지는 말자. 아무리 좋아도 거리를 둬야 할 땐 거리를 두자.


길을 가다 비가 올 때 나무 밑에서 잠시 비를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비가 그치고도 나무 밑에 그대로 있다면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비를 맞을 수밖에 없다. 비가 그치면 나무 밖으로 나와 가던 길을 가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았다고 계속 그의 곁에서만 머무르면 안 된다. 용기를 얻고 힘을 얻은 후엔 가던 길을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로를 받았던 사람에게 위로가 아닌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적당히 곁에 있고 적당히 떨어지는 관계 조절이 필요한 이유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사랑은 항상 함께 하는 것이 아닌 적당히 함께 하고 적당히 떨어져 바라봐 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한 발작 떨어져 있지만 눈은 변함없이 그에게 향하는 것.


그렇게 사람들과 공전(公轉)하듯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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