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멀쩡한 사람을 보며) "당신이 바퀴벌레라고?... 하지만 그동안 바퀴벌레를 봤는데 전부 당신 같지 않았는데?. 전부 마치..."
여자: "짐승처럼 생겼나요? "
남자: "그 정도가 아니지. 완전 괴물이라고."
여자: "그 시스템이 당신이 헛것을 보게 만들어요."
넷플릭스(Netflix) 드라마, 블랙 미러(Black mirror) 시리즈 중 한 장면이다.
한 신참 군인이 괴물 소탕 작전에 투입된다. 일명 ‘바퀴벌레’로 불리는 괴물들을 제거하는 작전이다. 바퀴벌레 괴물들은 인간처럼 두발로 걸어 다니지만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쳐들어와 음식을 약탈하기도 한다. 신참 군인은 처음 투입된 작전에서 '바퀴벌레 괴물 두 마리'를 죽이는 성과를 올린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환호와 부러움을 산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죽였던 괴물은 괴물이 아닌 멀쩡한 사람이었다.
군에서는 어떤 이유로 어떤 특정 인간 집단을 없애려 했다. 군인들이 그 집단을 더 쉽게 죽이도록 시스템을 주입했던 것이다. 사람을 괴물로 보이게 하는 시스템이었다. 군인들이 멀쩡한 사람을 죽일 순 없었지만 괴물로 보이는 사람을 죽이는 데는 망설임이 없었다. 결국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죽인 괴물이 괴물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깊은 좌절과 고통에 빠진다.
이 장면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가 보는 것들은 실제를 보는 걸까?
‘눈 앞 대상을 보고 있지만 남에게서 들었건 과거 이야기, 지금 경험하고 있지만 그 사람에 대해 겪었던 예전 경험들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가끔,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생각과 믿음이 굳은 경우다. 한번 굳어진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굳어진 생각에 따라 보고, 굳어진 생각에 따라 듣는다.
선입견도 마찬가지다. 남의 이야기만 듣거나, 나의 예전 경험에 의해 특정 대상이나 사람에 대해 이미 생각이 굳어진다. 우린 가끔 선입견에 사로 잡혀 봐야 할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신참 군인은 시스템이 주입되고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못했다.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우리도 선입견이라는 시스템을 주입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봤다.
허드렛일을 하시는 분들을 볼 때, 타 부서에서 옮겨올 팀원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들었을 때, 몇 차례 도전하고 실패한 시험이 있을 때 그 사람과 대상에 대해 이미 평가하곤 했다.
‘저런 일을 하시는 걸 보니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안 하셨나 보다’
‘새로 올 김 대리님은 소문이 안 좋으니 친하게 지내지 말아야겠다.’
‘지금까지 해서 떨어졌는데 이번이라고 되겠어?’
이미 해온 경험에 의하여, 이미 들어온 이야기에 의해 이미 판단했다. 벌써 판단하고 벌써 결심하기도 했다. 이미 결심을 하면 그 결심에 부합하는 것들만 보인다.
학창 시절 학업에 전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새로 올 김 대리는 소문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일 수 있다. 지금까지 떨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붙을 수도 있다.
내가 사고 싶은 차 모델을 정했으면 다른 차는 눈에 안 들어온다. 이직하고 싶은 회사가 생겼으면 다른 말은 들리지 않는다. 한 번 마음을 정하면, 하나의 선입견을 장착하면 하나만 보게 된다. 파란색 비닐을 눈앞에 대고 보면 모든 것이 파랗게 보이듯.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끼기 전에는 잠시 판단을 보류하자. 설령 내가 직접 경험했다 하더라도 다음 경험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의견과 과거 내 경험을 참조는 하되 그것만으로 확정 짓지는 말자.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는 시스템이 주입된 군인이 되지는 말자.
<허생전>, <열하일기>, <연암집> 등을 저술한 조선 후기 소설가, 연암 박지원 선생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눈에 얼핏 보이고, 귀에 언뜻 들린다고 해서 모두 사물의 본모습은 아니라네.
오늘부터 얼핏 보고, 언뜻 듣는 것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