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가 아닌 '감정''
연말이 되면 우리는 늘 숫자를 정리한다.
매출은 얼마나 성장했는지, 목표는 몇 퍼센트를 달성했는지, 누가 성과를 냈는지를 차분히 정리한다.
보고서는 깔끔하게 완성되고, 성과 그래프는 명확하다.
하지만 한 해가 끝나갈수록 조직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은 이상하게도 숫자가 아니다.
사람들의 얼굴에 남아 있는 미묘한 표정, 말끝에 묻어 있는 감정, 그리고 쉽게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이다.
HR 업무를 하다 보면 연말은 유독 '감정의 계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가 결과를 받아 든 구성원의 침묵, 조직개편 소문에 예민해진 공기, 퇴직을 고민하는 이들의 조심스런 눈빛.
그 감정들은 대부분 문서로 남지 않는다. KPI에도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조직에는 분명히 축적된다.
많은 리더와 HR은 연말을 '정리의 시간'으로만 인식한다.
올해는 여기까지, 다음 해는 새로 시작하자는 식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깔끔하게 리셋되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은 평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결정, 미뤄진 피드백은 그대로 감정으로 남아 새해를 따라온다.
그리고 그 감정은 어느 순간 몰입 저하, 냉소, 이탈이라는 형태로 조직에 모습을 드러낸다.
성과는 정리할 수 있어도 감정은 해소하지 않으면 남는다.
이 차이를 놓치는 순간, HR은 중요한 신호를 하나 놓치게 된다.
특히 연말은 조직이 가장 솔직해지는 시점이다.
평소에는 '괜찮습니다'로 넘기던 말들이 연말 면담이나 마지막 회의에서 조심스레 튀어나온다.
그 말들은 불만이라기보다 '정리되지 못한 감정'에 가깝다.
그래서 연말에 HR의 역할은 단순한 성과 정리가 아니라,
올해 조직 구성원들이 어떤 감정을 안고 이 한해를 통과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모든 감정을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겨두지는 말아야 한다.
왜 이런 평가가 나왔는지, 왜 이런 결정이 불가피했는지, 무엇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는지를
말해주는 것만이라도 감정의 방향을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리더에게도 연말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시기다.
'나는 올해 팀원들의 성과만 봤는가, 아니면 상태도 함께 봤는가?'
성과는 숫자로 드러나지만 상태는 관심 없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조직을 움직이는 힘은 구성원들의 상태에서 나온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우리는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올해 우리 조직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잘 정리된 성과표인가? 아니면 아직 말하지 못한 감정들인가?
만약 후자라면 새해를 준비하기 전에 잠시 멈춰 그 감정에 말을 걸어야 한다.
그것이 HR이 연말을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정리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20년간의 조직생활 중 유독 올해가 힘들었다.
나 역시 마지막 한주를 앞둔 지금, 수많은 감정들이 교차한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내 감정들에 조용히 말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