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잘 마무리하는 방법, 충분히 쉬는 것
한 해의 끝자락에서 서면 자연스럽게 '마무리'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예전에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거리에서 흘러나오던 캐럴과 구세군 종소리가 연말연시의 시작을 알렸다.
그 소리만으로도 한 해가 저물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풍경은 기억 속 장면이 되었고 연말을 느끼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요즘의 연말연시는 '분위기'보다 '시간'으로 체감된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성탄절 전후로 비교적 긴 휴가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 회사에도 12월 25일부터 1월 1일까지 연말집중휴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길게는 1~2주에 이르는 휴가 기간 동안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거나
그동안 미뤄왔던 쉼을 온전히 누리는 모습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대학생 시절 겨울방학이 그리워진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지만,
비록 방학만큼은 아니더라도 한 해를 정리하며 충분히 쉬고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아직 많은 기업들이 12월 말까지 정상 근무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러한 흐름이 점차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 회사에는 '리프레쉬 휴가'제도가 있다.
일반적으로 연차를 하루 단위로 사용하거나 주말을 붙여 길어야 2~3일 정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적인 피로를 풀기에는 도움이 되지만, 완전히 업무에서 벗어나 리듬을 회복하기에는 다소 짧은 시간이다.
리프레쉬 휴가는 본인의 연차를 사용하되, 분할 사용 없이 연속 5일 이상 쉬도록 설계된 제도다
여기에 소정의 휴가비도 함께 제공된다.
회사는 '충분히 쉬어본 사람만이 다시 깊게 몰입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이 제도를 도입했고
대표이사부터 솔선수범해 활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직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그 결과 직원들은 휴가 사용에 눈치를 보지 않게 되었고
원하는 시기에 당당하게 휴식을 선택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실제로 이 제도는 재직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을 뿐 아니라
퇴직자들이 회사를 떠나며 가장 아쉬워하는 제도로 꼽히기도 한다.
휴가 제도가 가져오는 효과는 개인 차원을 넘어 조직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 구성원의 회복 탄력성이 높아진다.
장기간의 휴식은 단순한 피로 해소를 넘어, 업무에 대한 거리 두기와 시야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휴가 이후 돌아온 구성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이전보다 안정된 감정 상태로 업무에 임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둘째, 몰입도의 질이 달라진다.
충분히 쉰 이후의 몰입은 '버티는 몰입'이 아니라 '자발적 몰입'에 가깝다.
이는 성과의 지속성과도 직결된다.
셋째, 조직에 대한 신뢰가 쌓인다.
회사가 휴식을 제도로 보장하고 실제로 사용하도록 장려할 때
구성원들은 '이 조직은 사람을 소모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체감하게 된다.
이는 장기적인 근속 의지와 조직 몰입으로 이어진다.
회사 입장에서도 실질적인 효과가 있다.
연차 사용이 활성화되면서 매년 발생하던 미사용 연차수당에 대한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고
법적으로 부여된 연차를 형식적으로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쓰게 만드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특히 최대 25일까지 부여되는 연차를 모두 사용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제도를 통해 사용 시점을 명확히 제시해 주는 것은 노무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 외에도 다양한 방식의 휴가 운영이 가능하다.
명절 전후로 휴가 사용을 장려하거나 징검다리 연휴를 적극 활용하도록 유도하는 방법,
매월 한번 특정 요일을 지정해 전사적으로 휴가 사용을 권장하는 방식도 있다.
중요한 것은 휴가를 '개인의 선택'에만 맡기지 않고 조직이 명확한 신호를 주는 것이다.
잘 설계된 휴가 제도는 복지가 아니라 전략에 가깝다.
쉽을 보장하는 조직은 결국 더 오래, 더 깊이 일할 수 있는 조직이 된다.
한 해의 끝에서 우리는 다 시한번 '얼마를 일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를 잘 쉬었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다음 해의 시작도 훨씬 단단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