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른 세상이에요.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가면
또 다른 세상에 있어요. 나와 우리가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서로의 손을 꼭 챙겨 쥐어요.
놓치면 영영 못 만나게 될까 봐.
인디어라운드(경기도 이천시 이섭대천로941번길 49-44)는 이상한 곳입니다. 주차장과 건물, 캠핑장, 야외 카페 등을 모두 합치면 아주 넓은 면적을 쓰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얼핏 80년 대 미국 영화에 나오는 모텔 같기도 한) 건물 입구로 들어서면 1층은 캠핑장 이용 고객 전용으로 카페 이용 고객은 아예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어 정작 허락된 것은, 바로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 일 정도입니다. 겨우 그 정도로 이상한 곳이라고 하는 건 너무하지 않냐 하시면, 정말 이상한 건 지금부터입니다.
문이 없어요. 2층에서 주문을 하고 음료를 받아 원하는 곳으로 가는 시스템인데, 다른 공간으로 통하는 문이 없어요. 창밖으로 인디어라운드의 자랑 7가지 테마 카페가 보입니다. 보이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요. 어디로 가야 하죠? 묻기에는 직원분들이 좀 '시크'하거나 '힙'해 보여요. 우리가 두리번거리고 당황해도 전혀 동요하지 않아요. 저러다 찾게 되겠지 늘 그렇듯이, 라고 생각하는 듯 신경 쓰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그냥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런 상황이 초조할 만큼 당황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습니다. 문이 없다니! 이거 정말 재밌는데? 이상한 곳이야. 그 정도.
냉장고가 있었습니다. 주방과는 멀리 떨어진 벽에, 낯선 디자인의 누가 보아도 수상한 냉장고였습니다. 벽 앞에 있다기보다 벽에 고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모습이 매우 어색했는데 왠지 자연스러운 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마치 댄스파티가 처음인데 아닌 척하는 '월플라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다른 이야기지만, 엠마 왓슨 주연의 영화 "월플라워"는 아주 잘 만든 성장 드라마입니다. 음악도 짜릿하고요. 꼭 보시길). 조심스럽게 냉장고 문 손잡이를 잡았습니다. 살짝 힘을 주었다가 일단 멈추고 아이를 제 뒤로 보냈습니다. 밸로시랩터 무리가 덤벼들지도 모르니까요. 거기가 그런 곳입니다. 손잡이를 잡은 손에 다시 힘을 주고는 확신했습니다. 냉장고 문이 열리기 '시작'할 때에 느껴지는 감각과는 확실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덜 밀폐되었지만 더 무거운 감각이 전해졌습니다. 수상한 발소리나 그르렁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습니다.
벽도 천장도 탁자도 의자도 온통 분홍색입니다. 어디든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면 사탕 맛이 날 것 같았습니다. 음악도 달달한 스윙재즈가 흐릅니다. 그러니까 여기는, '다른 곳'입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들어가 다른 공간으로 온 것이죠. 한쪽 벽 전체에는 역시 분홍색인 힐링캡슐이라는 게 있습니다. 안에 들어가서 달콤한 낮잠을 즐길 수 있는 곳인 것 같습니다. 이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캡슐 중 한 곳에는 '고장, 절대 들어가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캡슐 안으로 들어가면 엉뚱한 곳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오싹했습니다. 거기가 그런 곳이거든요. 이곳에도 역시 '정상적으로 보이는' 문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냉장고보다는 찾기 쉽더군요.
공중전화 부스를 열고 밖으로 나갔더니, 와아! 이런 데가 있었군요. 넓은 잔디밭, 가운데 분수가 있고 주변에 빈티지 버스, 트레일러, 야자수, 파라솔, 테이블과 의자, 인디언 텐트 등이 있습니다. 그 풍경이 아주 근사합니다. 청량한 미국 인디 음악이 울려 퍼집니다. 넓은 공간이지만 곳곳에 스피커를 두어 어디를 가든 비슷한 볼륨으로 들립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음료를 마십니다. 아이들이 뜁니다. 고장 난 버스와 트레일러를 개조해 조성한 작은 동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건전한 히피들이 마약 대신 봉사활동을 하며 모여 사는, 맥주와 직접 만든 음식을 나누고 춤추며 노래하는 그런 동네, 같았습니다.
이 버스에서 저 버스로 이 테이블에서 저 트레일러로 옮겨 다니며 우리는, 음료를 마시고 눈을 맞추고 어깨를 내어 주었습니다. 캐치볼을 하고 술래잡기를 하고 숨바꼭질을 하고 무궁화 꽃도 여러 번 활짝 피었습니다. 캠핑을 하지 않아도 반나절 이상은 넉넉히 머물 수 있는 곳입니다. 홈페이지에는 7개의 카페를 한 곳에서 경험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데, 확연히 '아 다른 카페에 왔구나!' 하고 느껴지는 곳은 3개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고 실망스럽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그 세 가지 공간으로도 충분히 이상하고 만족스러웠습니다. 공간마다 눈으로 보이는 풍경뿐 아니라 음악도 다 달랐는데요, 그래서인지 장소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시간도 달라지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놓치면 영영 못 보게 될까 봐, 서로의 손을 꼭 챙겨 쥐었습니다. 인디어라운드가 그런 곳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