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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장들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by 소기


10년 전, 서른다섯 살의 선배는 책에 이렇게 적었다.

ㅡ내가 바다를 건너는 수고를 한 번이라도 했다면 그건 아버지가 이미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쉬운 말 같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처럼 단순한 말들을 어렵게 이해해가는 과정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요즘 나는 '우리는 누군가와 반드시 두 번 만나는데, 한 번은 서로 같은 나이였을 때, 다른 한 번은 나중에 상대의 나이가 됐을 때 만나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중략)


오래전 나는 '좋아하는 소설 속 인물'로 신애를 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녀를 어떤 인물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신애는 '쪼그려 앉은' 여자다. 한밤중, 수도꼭지 앞에 웅크려 앉아, 간절히 낙수를 기다리는 여자. 난장이를 믿는 여자. ...... (중략) ...... 파이프에서 꾸르륵꾸르륵하는 기척이 나고, 곧이어 쪼로록- 수돗물이 떨어졌을 때, 나도 모르게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 (중략) ...... 그러니 누군가 신애를 왜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리라. 그녀가 지금, 거기, 쪼그려 앉아 있기 때문이라고.


요 며칠 방에 혼자 있을 때면, 신애의 웅크린 뒷모습이 계속 아른댔다.

사실 난 신애가 좀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 그녀 곁에 다가가 나란히 쪼그려 앉아보려 한다.

그러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옆얼굴을 보며, 작은 못소리로 물어볼 생각이다.

당신, 대체, 거기서

무얼 그리 열심히 보는 거냐고.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으세요?

전혀요. 절대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부정하고 혐오하기까지 했던, 작고 약한 '쪼그려 앉은' 나에게 사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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