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을 만든다.
가장 먼저, 최소한의 요소들로 기본적인 문장을 만든다. 뜻이 통하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이때, 꾸미는 말은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패러디는 쥐약이다. 이를테면, '문장이 먼저다'라고 (그 유명한 말을 흉내 내) 문장을 만들었다 치자. 한 문장을 만드는 것으로 글쓰기를 시작한다는 말인지, 문장이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인지, 그 뜻이 모호해진다.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함은 물론, 글을 쓴 자신조차도 정확히 어떤 의도로 그렇게 썼는지 헷갈리게 된다. 그 상태로 글을 확장시켜나가면 출발할 때는 부산에 가려고 했는데, 내려보면 해남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이게 '패러디의 저주'다. 의도가 중심을 잃고 형식을 따라가버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최대한 간명한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먼저 한 문장을 만든다.
방향을 잡기 시작한다. 의도의 핵심은 '가장 먼저 하나의 문장을 만드는 것'이므로 '먼저'를 넣어 글이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해준다.
먼저 공들여 한 문장을 만든다.
이 한 문장은 글 전체를 한 마디로 요약한 것, 읽는 이에게 가장 먼저 눈에 띄고 가장 먼저 마음에 콱! 박히는 킬러 메시지, 글을 완성시켜주는 내비게이션이자 자동 운전 시스템, 그리고 곧 글쓴이 그 사람이다. 이 한 문장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글 전체를 쓰는 에너지의 80% 이상을 쏟아야 한다. 그래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죽을힘을 다해, 전체 글을 쓰는 힘의 80% 이상으로, 사활을 걸고, 이 한 문장으로 게임 끝이라는 마음으로, 정성껏......'의 의미를 더해준다.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들을 하나씩 넣어 소리 내어 읽어보고 가장 알맞은 단어를 찾는다. 글을 잘 쓰는 능력은 '좋은 단어를 고르는 안목'이기도 하다.
먼저 천천히 공들여 한 문장을 만든다.
절대 서두르면 안 된다. 이 한 문장만 만들면 글 전체의 반 이상을 쓴 것이나 다름없다. 여유를 가지고 써야 한다. 대충 쓰고 넘어가면 안 된다. 주어진 시간의 반 정도는 써도 괜찮다. 그래서 '천천히'를 더했다.
먼저 한 문장을 천천히 공들여 만든다.
글을 만들고 고치는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방법은 '소리 내어 읽는 것'이다. 어려운 문법이니 논리적 구조니 따지지 않아도 소리 내어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어색한데?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데? CD가 튀듯(판이 튀듯이라고 하려다 젊어 보이려 고쳤으나 역시 나이는 못 속인다) 틱틱 걸리는 부분이 있다. 바로 거기가 고쳐야 할 곳이다. 이때는 단어를 바꾸어 보거나 조사를 바꾸어 보거나, 단어의 순서를 바꾸어 보거나 해서 잘 읽히도록 만들면 된다. 여기서는 '한 문장'을 강조하기 위해 앞으로 데려왔다.
먼저 한 문장을, 천천히 공들여 만든다.
문장 기호는 형광펜 쓰듯 적절히 쓰는 것이 좋다. 공부 못하는 애들 노트를 보면 휘황찬란하게 꾸며져 있어 예쁘기는 하나, 정작 뭐가 중요한지 알 수 없다. 정말 중요한 내용만 형광펜으로 표시해야 효과 있다. 문장 기호도 마찬가지다. 너무 많이 쓰면 강조도 안 되고 읽기도 어렵다. 역시 소리 내어 읽으면 된다. '한 문장을' 다음에 잠시 쉬고 읽으면 매끄럽게 잘 읽히고 강조도 된다. 바로 그 자리에 쉼표를 찍는다.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 지침〉 中에서)
먼저 한 문장을, 천천히 공들여 만든다.
소리 내어 읽으며 고치고 또 고친다.
그걸 확장시키면 한 편의 글이 된다.
에세이든 보고서든 그 한 문장에서 시작되고,
그 한 문장이 '격'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