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그렇게 말하고 누룽지를 한 숟갈 떴다. 숟가락에 담긴 동그란 누룽지가 흐트러지지 않게 숟가락을 그릇에 걸쳐 놓은 다음, 젓가락을 들어 양파 장아찌를 골랐다. 먹기 좋은 크기와 빛깔의 양파 장아찌 한 조각을 조심스레 집어 숟가락 위로 옮겨 놓고는 젓가락을 다시 내려놓았다.
ㅡ 사월 삼십일에 가면 되잖아.
그러고는 누룽지와 양파 장아찌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먹었다. 그 일련의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도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제 내가 대답할 차례였다. '양파 장아찌가 짜지 않고 아삭하니 맛있군.' 하는 톤으로 말했지만, 그것은 일종의 '선언'이었다. 거절은커녕 타협의 여지도 없음을 준엄하게 말하고 있었다.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고 휴가도 써야 했지만, 다른 대답은 허락되지 않았다.
ㅡ 그래, 가자.
씨ㅡ익. 아이가 길게 웃었다. 사월에 부산에 가는 것이 결론이고, 아이의 '씨ㅡ익'이 이유이자 근거다. 충분하다. 이제 가는 일만 남았다.
KTX 광명역
기차다. 이 만한 게 또 없다. 크고 빠르고 안전하다. 무엇보다, 공룡보다도 더 좋다. 틈만 나면 (영화, 뮤지컬, 야구, 축구, 바다, 호랑이 말고) 기차 보러 가자던 아이다. KTX와 함께 사진을 찍고는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 아이에게는 기차가 BTS고 캐리 누나며 '사랑을 했다'이다. 그 안으로 들어서는 것 자체가 판타지 월드로 입장하는 것이다. 기차는 낮에 떠나 저녁에 도착했다.
멀리 광안대교
숙소에서 광안대교가 보였다. 밤의 광안대교는 일정한 시간마다 다른 색으로 빛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진을 보니 죄다 보라색이었으므로 이건 당시의 기분이 만들어낸 착각이)다. 그때마다 하늘과 바다도 같은 색으로 바뀌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다리를 건너면 다른 차원의 세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형색색 눈부시고 화려한 세상. 동시에 별로 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함, 편안함, 안도감은 여기에 있었다. 풍경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
해운대
봄 바다는 신선했다. 바다는 여름이 제철이라는데 이견은 없지만, 봄의 바다는 조금 덜 익은 과일을 그 해 처음 먹을 때처럼 청량했다. 다시 바다를 먹게, 아니 가게 된다면 여름이 아니라 봄에 가겠다. 바람이 좀 차긴 했다. 바람은 겨울을 보낸 것이 아쉬웠지만 이내 인정하는 듯했다. 체념하기보다는 즐기고 있었다. 주로 차가웠지만 때로는 상쾌하고 이따금 보드라웠다. 풋풋한 바다에서 한참을 놀았다. 야구를 하고(야구를 보려고 예매해 두었었는데 아이가 '보는 게 좋은 게 아니라 아빠랑 야구하는 것이 좋아'라며 고집을 부려 끝내 예매를 취소했다. 결과적으로 아이가 '현명했다') 걷다가 뛰다가 다시 걸었다. 가만히 앉아 바람을 맞기도 했다. 그 시간은 소란한 가운데 고요했지만 매우 짧았다(하여간 아들놈들이란...). 그곳에서 무엇을 하든 좋았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참 고마웠다.
송도 해상 케이블 카와 스카이... 뭐더라?
공룡과 케이블 카라니, 기획자를 모셔오자! 심심할 뻔했는데 공룡이 나타나서 재밌는 곳이 되었다. 효도 관광과 '이너 피스'의 대명사가 될 뻔했는데 온 가족(최소 삼대) 나들이 코스가 되었다. 엉뚱한 결합에서 신선한 작품이 나왔다. 케이블카는 꽤 길었다. 높이서 보니 더 많이 멀리 보였다. 바닥이 투명하고 더 비싼 케이블카도 있는데 딱히 메리트는 없다. 워낙 높고 사방이 투명해서 굳이 바닥까지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인다. 공룡은 꽤 정교했다. 게다가 움직인다! 걷거나 뛰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을 놀래킬 정도는 된다(발차기를 하고는 줄행랑). 여기도 바람이 많이 불었고 야구를 했다.
돌아오는 길엔 늘 두 가지 마음이 따라온다. 더 있다 가고 싶은 마음과 얼른 현관문을 열고 우리 집 냄새를 맡고 싶은 마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한 마음이 다른 한 마음보다 커지는 시점도 명확했다. 아이가 친 공이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가 고운 모래밭에 폭, 떨어질 때 며칠 더 있고 싶었다. KTX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아이가 잠이 들어 배낭을 메고 아이를 안았을 때 정말 집에 가고 싶었다. 이미 집으로 가고 있었지만 더 격렬하게 집으로 가고 싶었다. 어쨌든 무사히 돌아왔다. 여행을 다시 가고 싶게 만드는 이유야 수천 가지겠지만 나는,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의 안도감, 노곤함이 큰 이유인 것 같다.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그밖에
환화리조트 해운대: 중간에 파티션으로 침실과 거실을 구분한 독특한 구조(원룸 같은). 아이는 담장이 있어(좌익수 뒤로 좌익수 뒤로 담장을, 넘어갑니다!) '양말공'으로 야구하기 좋은 곳으로 매우 만족.
SEA LIFE 부산 아쿠아리움: 인어(진짜 사람)쇼가 인상적. 규모가 크지만 아기자기한 재미도 쏠쏠.
코모도호텔 부산: 부산항 대교가 한눈에 보이는 시원한 뷰. 역사와 전통을 그대로 살린 건축물. 편의시설 없고, 직원들이 그닥 친절하지는 않았음.
이재모 피자: 피자가 크고 치즈가 어마어마한데 가격은 착함. 치즈 씹다가 턱이 아플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