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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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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골 Oct 12. 2022

<As the Last I May Know>

S. L. Huang (2019)


1.

 핵무기 같은 것은 낡은 무기가 되어버린 가까운 미래, 나이마의 나라는 전쟁을 겪고 있다. 열 살배기 소녀 나이마는 제비뽑기로 선택된 ‘운반자’이다. 낡은 무기를 사용하려는 자는 그녀의 심장에서 암호가 들어있는 캡슐을 직접 꺼내야 한다. 새로 선출된 대통령 한은 이러한 법을 집행하는 교단을 야만적이라고 비판해 보지만 다른 방법은 없다. 그는 항상 나이마를 곁에 두고 시중을 받아야 한다.


복숭아꽃 이파리 흩날린다
분홍 눈처럼 화사하게
손을 뻗어 한 줌 쥐어본다
내 마지막 기억 삼아


 나이마는 시인이다. 언제든 희생될 수 있는 위태로운 삶 속에서도 그녀는 시를 피워낸다. 교단의 장로 테지는 그녀를 설득해 그녀의 시를 책으로 펴낸다. ‘탑에 사는 소녀’라는 가련한 이미지를 덧씌워 여론전의 무기로 삼으려는 속셈이다. 그러나 전략 거점이 무너지고 포격이 수도까지 이르자 한은 단검을 꺼내 들고 나이마를 호출한다.


2.

 한과 테지는 대립하지만 둘 중 누구도 절대 악은 아니며, 그렇다고 누구의 입장이 쉽게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이는 트롤리 딜레마와 유사하다. 자국민을 희생시키지 않으려면, 나이마의 심장을 대가로 치르고 적의 나라에 사는 수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낡은 무기’로 죽여야만 한다. 여기에 정답은 없지만, 중요한 것은 나이마의 말처럼 선택을 “어려운 일로 만드는 것”. 그것은 우리와 같은 일반 시민이 할 수 있는 전부이기도 하다.


3.

 우크라이나 전쟁이 수개월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나이마의 나라처럼 침공받은 나라도 아닌데 ‘핵’이라는 단어를 뉴스에 올리며 여론전을 펼친다. 러시아에는 나이마가 없기에 우리는 그가 자신의 선택에 어떠한 무게를 느끼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바라건대 이 소설이 “어려운 일로 만드는 것”에 조금이라도 더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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